문인화교실

우리 옛그림

 

우리 옛그림

우리의 옛그림은 본래 실물처럼 묘사하여 착각을 노리는 그런 그림이 아니다. 아무리 극진한 사실적 수법으로 표현된 것이라 해도 실제라는 환상을 불러일으키지는 않는다.

우리가 옛 산수화 한 폭을 감상한다고 하자. 산과 계곡, 물위의 안개와 정자,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러나 이 그림 앞에 서서 산과 계곡과 정자가 실제로 거기에 있고, 몇 걸음 걸어가기만 하면 정자에 앉아 있는 인물을 만날 수 있으리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실제로 작품의 틀 속에 있는 대상은 현실과는 전혀 별개의 그 무엇인 것이다. 산과 계곡 물과 정자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산과 계곡, 물과 정자의 ‘그림’이 현존하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옛화가들은 자연계의 󰡐그것󰡑을 모사(模寫)한 것이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마음󰡑을 그렸다. 다시 말하자면, 그림의 본의는 마음속에 형성된 자연과 인간의 조화, 인간의 욕망이나 기대의 상징형으로서 사물을 묘사하는 데 있었다.

옛그림 속에 보이는 모든 것은 심상(心象)을 표현하는 매개체요 상징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화폭에 존재들이 얼마나 실제와 닮았느냐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소재들을 통해서 화가가 그리고자 했던 마음의 묘처(妙處)가 어디에 있었던가를 이해하고 공감해 보는 일이다.

옛 그림을 통해 이 점을 찾아 공감한다는 것은 곧 선조들이 지향하던 정신세계를 이해하는 길이 되며, 또한 그것은 한국인의 마음 저변에 깔려 있는 민족정서를 재발견해 내는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생각에서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많이 알려진 옛 그림을 대상으로 그 내용과 상징적 의미, 그리고 필요에 따라서는 그림에 얽힌 일화 등도 함께 살펴보고자 이 강의를 개설한다. 단지 40여 점에 불과하지만 이 강의에서 다룬 작품들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다른 유사한 작품들도 이해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문화재의 가치는 단지 오래 되고, 희귀하고, 값비싸다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다. 문화재의 참된 가치는 선조들의 정신과 생활철학 내지는 미의식을 대대로 전해 주는 전통 계승의 매개체 구실에 있다. 그래서 문화재의 배후 세계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곧 문화유산의 가치를 올바로 향유하는 일이 된다. 특히 옛그림은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생활철학이 보다 높은 밀도로 용해되어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지금까지 우리의 옛 그림에 대한 이해는 양식사(樣式史) 위주로 이루어져 왔기 때문에, 개별 작품의 배후에 숨은 정신세계에 대한 고찰이 소홀하였다. 그런가 하면, 광복 이후 서양식으로 제도화된 미술교육이 우리의 옛그림에 대한 이해의 길을 방해하고 차단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 결과 선조들의 체취가 배어 있는, 정신 문화의 보고(寶庫)인 우리 옛그림들이 제 가치를 발휘하지 못한 채 골동 취향의 대상물로만 취급되기 일쑤였고,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나 멀고 생소한 대상으로 남아 있었다.

고궁이나 사찰 등 옥외의 문화 유적을 찾아다니는 것도 좋은 일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소외되었던 옛그림 앞으로 가깝게 다가가 그 속에 스며 있는 선조들의 정신세계와 생활철학을 음미해 보는 일은 더욱 의미있는 일일 것이다. 은연중에 우리들 머리 속에 잠재해 있는 서양식 사고방식을 털어 버리고, 우리의 옛그림 앞에 조용히 서 보자. 그리고 옛그림을 느껴 보자. 느낌이 있으면, 이번에는 옛그림을 쉽게 뜻으로 풀어쓴 글들을 읽으면서 그림에 숨어있는 동양 특유의 회화관과 한국적 정서를 이해하고, 화폭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자.

이번 강의에서는 일반인들에게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 중에서, 가능한 한 화의(畵意)가 중복되지 않는 것으로 정통 회화 30점, 민화 10점을 선정하였다. 작품 설명에서 어떤 경우는 여러 가지 정황과 화제(畵題), 또는 간접 자료들을 참고로 하고, 거기에 직관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어떤 결론을 내린 경우도 적지 않다. 만약 누가 이런 부분에 대하여 확실한 증거를 대라고 한다면 할 말이 없겠으나, 그림의 내면적 형식이나 상징적 의미라는 것이 수학의 공식처럼 어떤 값을 대입하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지도 않다.

이 강의가 여러분 각자에게 큰 의미로 다가가길 바란다.

강사는?

홍익대학교 대학원에서 한국미술사를 전공하여 석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책임편수연구원, 문화체육부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우리문화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있다.

논문으로는 〈서양화법의 동전(東傳)과 수용〉․〈한국인의 기질과 미의식〉․〈한국인의 미의식과 그 표현의 특질〉 등이 있으며, 저서로는 《전통미술의 소재와 상징》․《고궁산책》․《전통문양》․《뜻으로 풀어 본 우리의 옛그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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