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 봄 여름 겨울 계절 낙엽 추수
【어록】
[1]가을은 과일의 아버지다. 《호라티우스/서정시집 抒情詩集》
[2]풀잎이 가을을 만나면 빛을 바꾸고 나무가 가을을 만나면 이파리를 벗는다. 그러므로 가을은 형관(形官)이라 하고, 때에 따라서는 음(陰)이 되며, 오행(五行)에 있어서는 금(金)이 되고, 그리고 병(兵)을 상징하는 것이다.《구양수 歐陽修/추성부 秋聲賦》
[3]가을은 차고 이지적이면서도 그 속에는 분화산(噴火山) 같은 정열을 감추고 있어서 그 열정이 이지(理智)를 이기고 기어이 폭발하는 수도 있고 이지 속에 여전히 싸늘하게 숨어 있는 수도 있다. 열정과 이지가 무섭게 대립하여 폭발의 일선을 위해롭게 비치고 있는 것이 가을의 감정이요 성격이다. 《이효석 李孝石/인물(人物) 있는 가을 풍경(風景)》
【시·묘사】
[4]좋은 날씨가 계속되는 가을이거니
오랫동안 마음에 살고 있던
행복한 생각도 서러움도
이제 먼 곳 향기에 녹아 사라졌다.
잔디풀 태우는 연기 들에 나부끼고
그 부근에서 노는 마을 애들
지금은 나도 끼어 노래 부른다
노래하는 애들을 따라 소리를 맞춰. 《H.헤세/가을》
[5]가을 바람에 나무는 흔들리고
촉촉히 밤은 야기(夜氣)에 젖고 있다.
……
바람은 나뭇잎에 떠들썩거리고
전나무는 가만히 속삭이며 말한다. 《H.하이네/가을 바람에》
[6]주여, 어느덧 가을입니다.
지나간 여름은 위대하였습니다.
태양 시계 위에 당신의 그림자를 눕히고
광야로 바람을 보내 주시옵소서.
일 년의 마지막 과실이 열리도록
따뜻한 남국의 햇볕을 이틀만 더 베풀어 주십시오.
과실이 익을 대로 잘 익어
마지막 감미가 향긋한 포도주에 깃들일 것입니다.
……
지금 혼자만인 사람은
언제까지나 혼자 있을 것입니다.
밤중에 눈을 뜨고 책을 읽으며
긴 편지를 쓸 것입니다.
나뭇잎이 떨어질 때 불안스러이 가로수가 나란히 서 있는 길을
왔다갔다 걸어다닐 것입니다. 《R.M.릴케/가을》
[7]나뭇잎이 떨어집니다. 아슬한 곳에서 내려오는 양
하늘나라 먼 정원이 시든 양
거부하는 몸짓으로 떨어집니다.
그리하여 밤이 되면 무거운 대지가 온 별들로부터
정적 속에 떨어집니다.
우리도 모두 떨어집니다. 여기 이 손도 떨어집니다.
그대여 보시라, 다른 것들을 만상이 떨어지는 것을
하지만 그 어느 한 분이 있어 이 낙하(落下)를 무한히 다정한 손길로 어루만져 주십니다. 《R.M.릴케/가을》
[8]황금빛으로 병든 가을아
버들 강변에 청풍 일 적이면
너 가을아, 너는 죽으리라.
능금밭에 백설이 찾아올 때면……
가엾다 가을아
너 백설 흰 빛깔 속에 죽을지어다.
풍성한 과일의 성숙 속에
하늘 속
솔개 돌고
꿈꾸는 처녀인 양
초록머리 소나무 위에
머얼리 노루가 운다.
검은 숲가에서
계절이여
사람도 없는데
떨어지는 과실과
몸으로 우는 수풀과 바람을
나는 사랑한다.
흐르는 눈물-낙엽이여!
짓밟히는 낙엽이여!
기울어 가는 기차여!
흘러가는 목숨들이여! 《G.아폴리네르/병(病)든 가을》
[9]근심스러운 구름이며 가을 바람
내 홀로이기에 나는 헤매 다닌다.
고목에는 새도 노래하지 않고-
아아 고요함이여, 쓸쓸함이여!
죽음의 추위에 겨울은 가까이 온다.
지금은 어디 있느냐, 수풀의 기쁨
어찌하였느냐. 그 전날 들판에
물결치던 금빛 벼 이삭들
해 저물자 날이 추워졌다.
안개는 자욱이 목장을 덮고
벌거숭이의 숲으로 몰려간다.
향수여, 모든 것이 달아나는구나. 《N.레나우/만추 晩秋》
[10]가지에서 가지로 건너는 바람은
명랑한 여름과 어두운 날이
검은 부엉새와 흰 비둘기 우는
노목의 가지 끝을 흔든다.
나무 잎새에 뚝뚝 지는 빗소리의
조용하고도 울적함은
떠도는 몸에 한 걸음 한 걸음
슬픔의 흐느끼는 소리로 들리지 않는가.
파랑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빨강으로
또 황색에서 황금의 빛으로
나무마다 가지가 늘어지면
나는 가을에서 가을로 지는 내 과거를 생각한다. 《H.레니에/가을》
[11]지금은 가을, 가을은 네 마음을 찢는다.
날아가라! 날아가라!
태양은 산을 향해 기어 올라가며
발걸음마다 쉬곤 한다.
아, 이 세상은 이처럼 시들어 빠졌는가!
시달려 늘어진 줄 위에 바람은 그 노래를 켠다.
희망마저 달아났다.
바람은 그것을 애석해 하며 탄식한다. 《F.W.니체/가을》
[12]말 한 마리 오솔길 한가운데 쓰러진다.
그 위에 나뭇잎이 떨어진다.
우리의 사랑이 오열한다.
그리고 태양도. 《J.프레베르/절망(絶望)이 벤치 위에 앉아 있다》
[13]안개와 무르익은 열매의 계절이여. 《A.A.밀른/영추사 迎秋辭》
[14]잘 개고 살갗에 찬기가 스며들며 아침마다 서리를 볼 수 있는 때라도 되면, 자작나무는 동화 속의 나무들처럼 온통 황금빛으로 빛나고 코발트빛 하늘에 아름답게 부각된다. 태양은 나지막이 걸려 있어, 이미 따스한 빛을 던지지는 않지만 여름의 해보다 더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백양나무의 작은 숲은, 옷을 홀랑 벗어 버린 것이 즐겁고 경쾌한 일이기나 한 것처럼 온통 투명하게 반들거리고 있다. 《I.S.투르게네프/사냥꾼의 수기(手記)》
[15]가을바람 불어와 흰 구름 날아가네.
초목은 황락(黃落)한데 기러기는 남쪽으로
난초가 빼어났다 국화도 향그럽네.
가인(佳人)을 부여잡네 잊지 못할 건 정이어라.
배를 띄워 저 하수를 건너자.
중류(中流)에 비꼈네 출렁이는 소파(素波)여.
피리 불고 북 쳐 도가(棹歌)를 불러라
환락(歡樂)은 극에 달해 풍덩 애정(哀情)으로 바꿨구나
젊었을 때 언제던가 늙는 걸 어찌할까. 《한무제 漢武帝/추풍사 秋風辭》
[16]이슬 치는 가을밤 홀로 거닐면
시름에 싸이는 나그네 마음
멀리 배에서는 등불이 새어 오고
초승달을 두들기는 다듬이 소리.
露下天高秋氣淸
空山獨夜旅魂驚
疎燈自照孤帆宿
新月猶懸雙杵鳴 《두보 杜甫/밤》
[17]빈방에 홀로 앉았으면 늙어감이 서러웁다.
이경(二更)――. 밖에서는 찬비가 내리고
어디선지 산과일이 떨어지는 소리
……무엇일까?
벌레가 방 안에 들어와 운다.
獨坐悲雙函
空堂欲二更
雨中山菓落
燈下草蟲鳴 《왕유 王維/추야독좌 秋夜獨坐》
[18]오동에 바람 이니 벌써 가을인가.
꺼져가는 등불 밑에 귀뚜라미 눈물을 짜개질하는 밤
누군가? 나의 서러운 한 권의 시집을 소중히 읽어 벌레 먹지 않게 할 이.
삶은 애처로워 창자 곧추서는데
차가운 비 타고 찾아오는 어여쁜 얼아!
가을의 무덤 속, 나는 죽어 포조(鮑照)의 시를 외고 피도 한스러워 천년을 푸르리라. 《이하 李賀/추래 秋來》
[19]우물가에 오동잎새
바람에 나부끼고
옆집 다듬이 소리
가을이 분명코나
처마 밑에 홀로 누워
어렴풋이 조을 때
머리맡에 달빛이
소리없이 흘러든다. 《백거이 白居易/가을 밤》
[20]가을바람에 붉은 목서(木犀)꽃의 그윽한 향기가 불려오고, 달이 맑고 밝은 빛을 발사하며 별들은 하늘 가에서 반짝이면 아이들은 마당에서 그림자와 경주를 하면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 《사빙영/여병자전 女兵自傳》
[21]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이라고 써 있다. 초토(焦土)이다.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燈籠)」이라고도 써 있다. 「코스모스 무참」이라고 써 있다. 《태재치 太宰治》
[22]하늘은 높고 구름은 맑으며 대기는 약간 서늘한데
달은 희고 바람은 맑아 흥취가 절로 길다.
멀리 도연명(陶淵明)의 삼경(三逕)의 취미를 생각하면서
국화의 떨기 속에 누워 그 향기 맡아 보네.
(*三逕:隱士의 門庭)《기화 己和/함허화상어록 涵虛和尙語錄》
[23]강호(江湖)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소정(小艇)에 그물 실어 흘리띄워 던져 두고
이 몸이 소일(消日)하옴도 역군은(亦君恩)이샷다. 《맹사성 孟思誠/강호사시가 江湖四時歌》
[24]대조(大棗)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듯들으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사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황희 黃喜/사시가 四時歌》
[25]수국(水國)에 가을이 드니 고기마다 살져 있다
만경징파(萬頃澄波)에 슬카지 용여(容與)하자
어즐한 인세(人世)를 돌아보니 멀도록 더욱 좋다. 《윤선도 尹善道/어부사시사 추사이 漁父四詩詞 秋詞二》
[26]단풍(丹楓)은 연홍(軟紅)이요 황국(黃菊)은 순금(純金)이라
신도주(新稻酒) 맛이 들고 금은어회(錦銀魚膾) 더 좋아라
아이야 거문고 내어라 자작자가(自酌自歌)하리라. 《김수장 金壽長》
[27]가을 타작(打作) 다한 후에 동내(洞內) 모아 강신(講信)할 제
김풍헌(金風憲)의 메더지에 박권농(朴勸農)의 되롱춤이로다
좌상(座上)에 이존위(李尊位)는 박장대소(拍掌大笑)하더라. 《이정보 李鼎輔》
[28]머귀잎 지거야 알와다 가을인 줄을
세우청강(細雨淸江)이 서느럽다 밤기운이야
천리에 님 이별하고 잠 못 들어 하노라. 《정철 鄭澈》
[29]강사(絳紗)에 등 붉은 제 외로이 꿈을 깨니
조롱(鳥籠)엔 서리 차다 앵무새 탄식하네
오동잎 가을바람에 뜰을 덮어 날더라.
絳紗遙隔夜燈紅
夢覺羅衾一年空
霜冷玉籠鸚鵡語
滿階梧葉落西風 《이옥봉 李玉峰/가을 밤》
[30]우수수 갈바람에 산천이 쓸쓸한 제
달 밝은 사창 가엔 벌레가 우는고야
찬 자리 팔굽베개에 잠들 길이 없어라. 《억춘 憶春/가을도 깊어가고》
[31]가을빛 좋길래로 홀로 강루(江樓) 올라
맘 고이 갖은 풍경 고요히 구경할 제
술 들고 풍류 화객이 나를 찾아오더라.
四野秋光好
獨登江上臺
風流何處客
携酒訪余來 《계생 桂生/소견 消遣》
[32]비 뒤의 갈바람은 댓술을 휘젓는데
뚜렷이 밝은 달은 다락 위 덮었어라
벌레는 밤 새워 울며 남의 애를 끊나니.
雨後凉風玉簞秋
一輪明月掛樓頭
洞房終夜寒膽響
瘙盡中腸萬斛愁《계생 桂生/가을 밤》
[33]들마다 늦은 가을 찬바람이 움직이네.
벼이삭 수수이삭 으슬으슬 속삭이고
밭머리 해그림자도 바쁜 듯이 가누나. 《이병기 李秉岐/가람 문선(文選)》
[34]달이 지고
귀또리 울음에
내 청춘에 가을이 왔다. 《김상용 金尙鎔/가을》
[35]저녁노을이
하이얀 은지(銀紙)를
나의 가슴에 바르고
지나가던 날
구름을 향하여
한층 더 가벼워지는 지구에
실오리 같은
가을이 쏟아져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