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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각교실

篆刻의 역사와 이해(교수신문)

 

한치의 돌에 새겨내는 方寸의 예술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 篆刻의 역사와 이해(上)

교수신문  

 

전각은 보통 사방 한 치 크기의 돌에 문자를 새겨내는 작업이기 때문에 方寸의 예술, 방촌의 美라 부른다. 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고 문자미의 독특한 아름다움을 압축해 표현하는 것이 전각의 예술적 매력이다.

전각이란 말은 인장이 예술적 형태로 발전하여 서화의 한 영역에 포함될 무렵인 明末, 淸初에 생긴 이름이고,  전에는 계급과 신분에 따라 사용되는 인장의 명칭이 각각 다르게 불려졌다. 인장은 상고시대부터 사용되면서 그것의 제도, 형식과 연혁은 시대에 따라 끊임없이 변천해 왔다.

印의 기원은 고대 제후가 확장된 영토의 통치를 위해 분봉해 나갈 때, 중앙으로부터 새로 지어주는 성씨를 하사 받고 하사 받은 새 성씨는 청동인으로 주조하여 頒賜物로 내려준 데서 비롯되었다. 그 印은 새 영토의 관할권과 통치자의 信標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 청동인의 성씨는 그때부터 새 종파의 祖宗이 되려니와 새 封地의 소국명이 되었다.

印자는 손톱조(爪)와 병부절(節)의 합성자이다. 손톱은 적으로부터 자기를 방어하는 원초적 무기이기 때문에 손톱과 어금니(爪牙)는 무기 또는 임금을 호위하는 병사를 일컫게 되었다. 병부절은 符節 곧 믿음의 표시이므로 인이란 것은 무기를 가진 사람, 곧 집정관이 가지고 있는 信標를 뜻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인의 역사는 한사군 시대부터 사용되었던 실물이 낙랑 유적에서 출토되었다. 거기서 나온 봉니와 청동인이 있으며 삼국시대에도 漢과 晋에서 변방 민족에게 내려준 일종의 蠻夷印이 몇 점 전해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단군신화의 천부인 세 개를 우리나라 인의 기원으로 보기도 하나, 그것은 후대인이 기록한 상징적 의미로 해석함이 옳을 듯하다.

고대에 계급·지위·신분·인격에 합당한 信標로 사용되던 印은 대부분 官印이었으나, 唐 이후부터 차츰 私印이 등장하여 보편화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원나라 말 通儒의 한 사람이었던 王冕은 부드럽고 새기기 쉬운 石印材를 개발하여 서화가와 문인들이 문자의 개성과 예술적 정취를 살린 전각을 직접 할 수 있게 함으로써 발전을 급속도로 가속화하기에 이른 것이다. 왕면이 개발한 석인재는 젖빛 색깔에 꽃무늬 반점이 있는 花乳石으로 약간 투명한 凍石類였던 것이다. 그 이후 아름다운 석인재의 개발은 더욱 박차를 가하여 田黃石, 鷄血石을 비롯한 유명 美石類가 꼬리를 물고 등장하여 오늘날은 석인재의 산지 및 감별과 品等을 위한 전문서적이 여러 권 출간되고 있다.

 

전각은 명나라 때의 유명화가인 文徵明과 그의 아들 文彭 부자가 古印을 수집 연구하면서 예술적 가치의 대상으로 인식, 발전시켰다. 특히 文彭은 그의 제자 何雪漁와 함께 전각의 유파를 형성, 문인 취향의 금석기를 드러내는 각법과 전각한 작가의 이름을 옆에 새겨넣는 방각(또는 측관)을 창안함으로써 전각 발전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래서 두 사람을 文何로 병칭하고 전각의 開祖로 삼는다. 방각은 때로는 印身의 사면에 돌아가면서 새겨 넣는데 전각을 할 때의 감상기와 촉각한 사람과의 인연기 등을 기록해 인보에 일일이 탁본해 놓음으로써 예술사적 자료의 성격을 지닌다.

 

전각의 역사상 가장 큰 발전을 이룬 시기는 淸代이다. 淸代는 고증학의 발달로 金石學과 서예는 秦, 漢의 篆書와 隸書에 대한 考究와 표현에 주력하던 시기이다. 따라서 전서와 관계 깊은 전각의 발전은 자연스런 현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이때에 출현한 齊完白은 전서와 전각의 대가로서 그 문하에서 많은 제자들이 배출되었으며, 그들은 또 수많은 제자들이 人脈을 형성하여 개성적인 印風을 수립함으로써 전각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다.

 

등완백의 인풍을 계승한 유명 전각가로서는 조지겸, 오창석, 제백석 세 사람이다. 이들은 모두 시·서·화 삼절에 전각까지 겸비, 탁월한 근세 작가들로서 중국은 물론 한국과 일본의 서화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쳤다. 소위 현대의 작가치고 이들 삼인의 작품을 모방해 보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시피 할 정도이다. 이중에서 "학습의 대상이 되는 사람은 오창석과 제백석인데 吳의 각풍은 石鼓文에서 득력한 독창적 장법으로 氣息이 寫意的인 전각예술을 전개하여 문자의 조형적 형식미와 내용적 意境이 뛰어나다. 齊風은 두 번 칼을 대지 않는 단도직입에 의한 각법으로 조작이 없는 野趣가 횡일한 멋이 있어 특유의 현대미가 넘친다. 오창석은 1904년 서령인사를 절강성 항주에 창설하여 오늘날까지 중국 전각의 메카가 되게 하였다. 

 

서화의 畵龍點睛…회화성 뛰어난 전서체 선호

어떻게 감상할 것인가 : 篆刻의 역사와 이해 下

교수신문

서화에서 말하는 낙관이란 落成款識의 줄임말이다. 款은 陰刻한 것을 말하고 識는 陽刻한 것을 가리키므로 관지는 곧 인장 그 자체를 뜻하는 것이다. 따라서 낙관이란 전각 그 자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니고, 관지를 작품속에 찍어 최종적으로 서화작품의 완결성을 낙성시킨다는 의미가 담긴 말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낙관은 외형적으로는 조그맣고 서화의 한 구석을 차지하여 숨어 있는 듯해서 이것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은 그 중요성을 대부분 간과하기가 쉽다.

그러나 그것은 전각이 지니는 독특한 양식미와 함께 화폭에 미치는 붉은색의 구조적 통일성을 몰각하기 때문에 그렇다.

전각은 서체중에서 조형감과 회화성이 가장 뛰어난 전서체를 고집한다.

전서체는 진시황의 문자통일시 태산을 비롯한 여러곳의 마애에 그의 공덕을 새겨놓은 이후, 서체중에서도 가장 권위적이고 존중되는 서체로 인식되어 왔다.

그뿐아니라 전서의 구조적 특징은 좌우가 대칭적이며 間架가 균등하여 공간적 균형감각이 고도로 발달된 서체이다. 그런데 이런 전서체를 포치하여 새길 때는 글자를 오므라들게도 하고 넓히기도 하여 전서가 지닌 형식적 조형미를 극대화시킨다. 부정적이면서도 긍정적인 획을 석인재에 새겨나갈 때, 칼의 충격에서 빚어지는 金不氣의 고졸한 맛은 전각이 아니고선 느낄 수 없는 쾌감이다.

 

말하자면 작은 창구멍의 불빛이 어두운 방안에 비추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할수 있다. 그러므로 전각작품이 낙관되어 졌을 때, 그 위치에 따라 그림의 포인트가 집중되기도 하도 분산되기도 하는 것이다. 또한 음각이냐 양각이냐 하는 것도 그 효과가 다르다. 화격에 어울리는 印文인가, 문자의 조형미는 참신한가. 刻法은 감정이 이입되었으며 굵고 가는 획질은 호소력을 띄고 있는가 하는 것들이 전각을 감상하는 요결인 것이다. 그래서 서화의 고급 감상자들은 전각을 감상할줄 알아야 하며 감상과 판독을 거쳐 작품의 眞僞까지 구분하는 鑑定力을 갖추어야 고급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서화의 여백에는 으레 역대 소장자들의 수장인과 감상인들이 유명한 작품일수록 빽빽히 찍혀 있는데, 이것을 판독하면 그 서화의 전래 경위를 대충 엿볼 수 있기도 하다. 수장, 감상인은 맨처음 우측 하단에서부터 시작해 다음 사람들은 차례차례 위로 올라간다. 또 음각(白文印)보다 선이 굵지 않은 양가(朱文印)을 많이 선호하는데, 그것은 印泥의 붉은색으로 인한 원화 감상의 영향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다. 수장, 감상인은 원화 감상의 장애물임에는 틀림없다. 그것은 동양화의 깊은 철학을 상징하는 여백을 채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많을수록 명화임을 증명하는 심볼이니 이쯤되면 원화가 우선인지, 유명인의 수장, 감상인이 더 중요한지 모를 지경이다.

전각의 실제에는 심법이 있다. 字法·章法·刀法이 그것이다. 자법은 篆法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것으로 선택된 印文에 어울리는 전서체를 사전에서 찾아 골라내는 것이다. 장법은 문장수효의 과다, 대소, 위치, 경중, 여백을 파악하여 획이 적은 문자는 넉넉하고 너그럽게 布字하고, 획이 많은 문자는 긴밀하게 配字한다. 전서의 조형적 결구를 미학적으로 계산하되 그 계산이 눈치채지 않도록 종이 위에 布置하는데 이것을 印稿라고 한다. 사실 인고에서 작가의 창작성이 발휘되게 마련인데 이것은 건축가의 설계도와 같은 전각가의 문자조형미의 표출이다. 여기에는 장법의 문자, 소밀, 경중, 변화, 호응, 교졸, 倚正(삐닥하여 기울고 쏠리는 것과 바른것)등이 고려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서법(전법)을 이해한 뒤, 형태의 변화와 문자간의 균형에 의한 비례의 공간처리등을 명가의 전각 작품을 끊임없이 모각해 보면서 반복 학습하는데서 길러진다.

마지막으로 도법은 서예의 필법과 같은 것으로 13도법이 있다. 13도법은 각 법에 따라 나뉘는데 굳이 도법의 분류에 구속될 필요는 없다. 조그만 전각은 서화에 낙관되어 전체 화폭을 지배하고 통어한다. '서화가가 자기 호와 이름을 멋지고 기운생동감 있게 쓸 줄 알며, 낙관관리의 적소를 찾아내는 눈을 가졌으면 이미 그는 훌륭한 작가'라는 말이 있다. 매 작품마다 반복되는 이 일을 매우 어렵게 생각하는 작가는 우리가 주목해 볼만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전각은 일본 사람들이 퍽 좋아하는 장르로서 그들의 각풍은 긴밀하고 구축이나 조작성이 많고, 중국은 느슨하고 삐닥하며 흐리멍텅한 자연스러움과 표정의 아름다움이 있다. 특히 왕용교수(북경 중앙미술학원)의 전각은 귀재란 평가를 받으며 빠르고 널리 유행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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