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사상(中國思想)의 여명기인 선진시대(先秦時代) 이래 유가(儒家)와 함께 중국 철학의 두 주류를 이루었던 학파. 도가라는 일컬음은 이 사상의 개조(開祖)라 할 수 있는 노자(老子)가 우주 본체를 설명하면서 사용한 도(道)와 덕(德)의 개념에서 비롯되어 도덕을 논하는 일련의 학자들을 도덕가라고 호칭하다가 뒤에 이를 약하여 도가로 부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호칭이 선진시대부터 나타난 것도 아니며, 전한대(前漢代) 유흠(劉歆)과 사마 담(司馬談) 부자가 중국사상의 내원(來源)을 설명하는 가운데 구가(九家) 또는 육가(六家)로 분류한 데서 일반화되었다. 〈도가의 연원(淵源)과 사상〉 도가라고 할 때, 넓은 뜻으로는 노자를 교조(敎祖)로 하여 뒤에 성립하는 종교형태인 도교(道敎:Taoism)도 포함하지만, 일반적으로는 도교와 구별하여 노자·장자(莊子)·열자(列子)·관윤(關尹) 등이 중심이 되는 철학파를 가리키며, 좁은 뜻으로는 노장철학(老莊哲學)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리고 시대적으로 보면 노자와 장자,양주(楊朱)·열자를중심으로한선진도가(先秦道家)뿐만 아니라 위진시대(魏晉時代)의 왕필(王弼)과 향수(向秀)·곽상(郭象) 등을 주로 하는 현학파(玄學派)와 명리학파(名理學派)도 도가에 속한다. 도가사상은 노자에서 비롯하였기 때문에 그 연원도 노자사상을 이해하면 될 것이다. 반고(班固)의 《한서(漢書)》 <예문지(藝文志)>에 보면 “도가자류(道家者流)는 사관(史 官)에서 나왔다”고 한 것 또는 《사기(史記)》에서 “노담(老聃)은 주(周)나라의 수장실지리(守藏室之吏)였다”고 한 것처럼 노자는 사관 출신이었고, 사관은 역사와 전통적인 학술사상과 지혜를 이어받은 해박한 지식인이었다. 그러므로 노자는 한편으로는 서주(西周)의 예악제도(禮樂制度)와 그 문화에 대하여 철저하게 이해하고 있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당시의 전화(戰禍)와 도덕의 붕퇴(崩頹), 사상의 분란 및 정치적인 암흑상황을 가장 심각하게 감지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영일(永逸)의 방법을 구하되 눈앞의 고통을 제거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가져온 근원으로서 서주문화자체를비판적으로검토해서,본래상태로돌아가려는‘반박귀진(反樸歸眞)’의 사상을 이루게 된 것이 도가이다. 도가는 이러한 배경을 가지고 부정적 사변법(思辨法)을 사용하여 유가(儒家)의 가치도덕과는 본질적으로 다른 존론적 본체관념(本體觀念)으로서 ‘道’와 ‘德’의 이론을 제시하였다. 도가의 도덕은 인위조작(人僞造作)하지 않으면서도 어김없이 전개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며, 이에 따라 인생론에서도 무욕과 허무의 방법 등 부정적 방법을 통하여 자연대도(自然大道)에 순응하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제시하였고, 지식과 가치의 문제에서는 시비(是非)가 양행(兩行)하는 상대주의(相對主義)와 반지주의(反知主義)를 주창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장자(莊子)의 개체(個體)의 절대자유·절대평등의 사상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