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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최고위과정

전서란? - 한문서예실기리포트 -



*전서 (篆書): (전자 전)- '대나무'와 그 잎의 모양을 본뜬 글자.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대죽(
)와 음을
                                    나타내는
(단)의 전음()이 합하여 이루어짐 .


* 개요 :  가장 오래된 한자 서체. 


   넓은 뜻으로는 예서 이전에 있던 서체로, 중국 은(殷 BC1800~1100년경). 주(周 BC1100~256) 시대의 귀갑과 수골에 새긴 갑골문자와 청동기시대의 금문, 전국시대(BC403~221)와 진(秦 BC221~206)나라 시황제 때의 석각문자도량형기의 각문(刻文), 한(漢 BC202~AD220)나라 때의 그릇과 인장에 새긴 문자등 오랜 시대에 걸친 고대 서체의 총칭이다.


   좁은 뜻으로는 대전(大篆)과 소전(小篆)이 주축을 이룬다.


(1) 갑골문 (甲骨文)


   은(殷 BC1766~1122년경)나라 때 점술에 쓰이던 신탁용 갑골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상형문자 원본이다.


1900년경 허난성 샤오툰이라는 마을에서 거북의 등딱지와 수소의 견갑골에 명문(銘文)이 새겨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지금까지 10여만 편 총 4,600개 정도의 다른 글자가 출토,  현재 식별 된 것 만도 2000여개 쯤 된다. 
 이는 은대후기 270여년간의 정치, 경제, 문화 상황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문자들은 먼저 뼈위에 붉은 색 또는 검은색 잉크를 칠한 다음 날커로운 도구를 써서 새긴 것으로 보인며, 붓으로 쓴 것도 있다.
그 다음에 뼈나 껍질에 열을 가해 금이 가도록하여 거기에 나타난 모양에 따라 앞으로 일어날 일을 점쳤다.


문자구조는 단순한 것에서 합성된 복잡한 것으로 변화를 보이고 형성자(形聲字)가 많이 나타나고 부호와의 정도가 높다
원본의 문자들은 크기나 구조 면에서 일관성이 없고 보통 꼭대기부터 밑부분까지 새겨져 있다.
뼈의 껍질의 윤곽에 따라서는 일관성이 없게 배열되어 있으며, 때로는 일정하지 않은 형태로 배열되어있다.


글자의 풍격은 전 후 2기로 나눌 수 있다.
전기 : 큰 글자가 많고 글자가 웅장하고 기이하다.
후기 : 작은 글자가 많고 글자의 풍격이 아주 정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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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갑골문>

 (2) 금문 (金文)  


   예전에는 금문을 '종정문'(鐘鼎文)이라 불렀는데, 실제로 은. 주. 춘추전국시대의 (BC1800~206) 종(鐘). 정(鼎솥). 준(尊술그릇).작(爵 참새부리모양의 술잔).병기(兵器). 전폐(錢幣돈) 등의 청동기 위에 새긴 모든 글자를 포함한다.


 1) 서법의 풍격


  ㄱ) 은대에서 서주(BC1100~770)초기 까지는 갑골문자와 비슷하여 각지게하여 꺽어쓰는 방필용절(方筆用折)이었으며 대우정(大盂(바리)鼎)이 대표적이다.


  ㄴ) 서주 중엽 이후 동주(BC770~256)초기에는 붓을 둥글게하여 돌려쓰는 원필용전(圓筆用轉)으로 바뀌었으며 산씨반(散氏盤(소반))과 모공정(毛公鼎)이 대표적이다.


  ㄷ) 그후 춘추시대(BC770~403)에 이르러서는 을 사용하게 되어 글자체가 점차로 가늘면서도 힘이 있었다. 제나라의 중강박(仲姜鎛(종, 금그릇))이 대표적이다.


  ㄹ) 전국시대(BC403~221)에 이르러서는 시대가 혼란하여 금문 자체(字體)도 혼란스럽고 기이하게 변하여 알아볼 수 없는 것도 있다. 고대 문자는 이 때에 이르러 분열 현상을 보인다.


 2) 저명인 : 금문서법은 청대(AD1644~1911)중엽 때도 모사하는 사람이 차츰 늘어나서 저명한 사람으로는 장정제 오대징 이서청 등이 있다.
이서청은 "석고문에서 팔분체(八分體)를 습득하고 금문에서 전서를 습득했다"라고 말했다. 그는 거친 붓을 사용하여 힘차면서도 변화가 있어 독특한 풍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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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문탁본>                  <산씨반>     <괵계자백반><하버드박물관금문사진>



 (3)대전 (大篆)  


   주문(k7C40_s13.gif 文) 또는 주서(k7C40_s13.gif書)라고도 하는데 <사주편(史k7C40_s13.gif篇)>에 기록된 데서 생겨난 이름이다.


주나라(周BC1100~770) 선왕 때 태사 주(k7C40_s13.gif)는 갑골. 금석문 등 고체를 정비하고 필획을 늘려 대전의 서체를 만들었으며, 주 왕실이 동쪽으로 천도한 후 진(秦)이 주 땅에 자리 잡음으로써 춘추전국시대(BC770~221)에 진나라에서 통용되었다.


대전 역시 광의와 협의의 2가지 뜻이 있다.
협의로는 단지 주문만을 가리키고, 광의로는 앞서 말한 갑골문, 금문, 주문과 춘추전국시대에 각 국에서 통용되던 문자를 두루 가리킨다.


서체 중에서 가장 초기의 형태로 나중에 예술적으로 근접한 형태의 전서로 발전햇으며 당시에 통행하던 서체로서의 자리를 빼앗긴 후에도 오래도록 계속해서 도장을 새길 때 쓰였기 때문에 대전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고, 원래는 붓에 먹이나 옻칠을 묻혀 목간이나 죽간 또는 비단위에 썼다.


이 서체는 고문과 비슷하여 고른 두께로 이어지다가 뭉툭하게 끝나는 직선과 곡선의 엄격한 균형이 특징이다.


현존하는 석고문이 바로 이 글자체의 대표적인 것이다.


최초의 석고는 현재 베이징 구궁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데 이것은 중국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석각문자이며 역대로 그 서법의 예술성이 높이 평가되어왔다.
당대(唐 AD618~907) 초기에 산시성 천흥면에서 발견되었으며, 석고는 모두 10개 였는데 각 돌마다 모두 4언시 1수 씩 새겨져 있었다.


10개의 석고는 각각 오거(吾車). 견면(c54e7.gif). 전거(田車). 칙홀(勅來).영우(c5ddc.gif雨). 작원(作原). 이사(師而). 마천(馬薦).오수(吾水).오인(吳人)으로 나누어진다.


석고문이 만들어진 시대는 여러 주장이 있으나 1931년에 마형이 <석고위진각석고>를 지은 후 비로소 진나라 때의 석각 문자 임이 공인 되었다.


석고는 2000여년 이상의 세월을 지내는 동안 표면이 많이 벗겨지고 부서져나가서 지금은 그 위에 새겨졌던 글자가 하나도 남아있지 않다.
오래전에 떠 둔 탁본이 매우 진귀하게 남아있으며 현재 북송(AD960~1126) 때의 탁본이 있다.


근대의 서화가 우창숴(AD1844~1927)가 이 글자에 정통했는데 웅건, 소박하면서도 다채롭고 기백이 웅대한 풍격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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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석고문탁본 >


(4) 소전 (小篆)


소전은 대전에 대립되는 호칭으로 진전(秦篆)이라고도 한다.


이는 주문의 기초위에 발전하여 형성된 것으로 진의 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BC221),  승상 이사(BC280~208) 등이 진나라 문자를 기초로하여 표준 글자체로 전국 문자를 통일, 각 지역의 이체자를 모두 추려내어 규격에 맞지않는 자체는 제거하고 각각의 문자는 구조상으로 가상의 정사각형 안에 꼭 들어맞게금 규범화하여 개정했는데 이것이 바로 소전이다.


고대문자 대전을 규격화 단순화시킨 형식으로 이 서체는 모든 선의 굵기가 고르고 곡선과 원이 상대적으로 두드러진다.


서체는 둥글고 가지런하며 획이 약간 굵으면 옥저전이라하고 가는 것은 철선전이라한다.


소전으로 쓴 문구는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들을 행과 열을 맞추어 균형있고 짜임새있게 배치해 놓은 모양으로 보인다.


이 문자를 쓸 때는 털이 긴 붓의 끝 부분 만을 사용했다. 

 이사가 쓴 것으로 전해지는 <낭아대각석>  <태산각석>(BC219)이 남아 있는데 역대로 소전서법 예술의 최고 본보기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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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산각석>


한, 위(BC202~AD280) 이후 예서, 팔분체가 성행한 이래 예서와 팔분체의 서법으로 소전을 쓴 것이 많은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삼국시대(위. 촉. 오AD220~280) 오(吳)의 <천발신참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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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발신참비>


북조(AD439~589)와 당(唐AD618~907)초의 비석머리에도 역시 소전은 팔분체와 같은 체제로 많이 썼다.


성당(盛唐)에 이르러 이양빙이 나와 팔분체의 기세를 모두 없애고 이사를 종(宗)으로 삼은 이후 1000여년간 소전 서법의 명가로 대개 이들 두 이가(이사와 이양빙)을 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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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의 전서>


(淸AD1644~1911) 중, 말기의 등석여, 윤병수, 조지겸등이 측필로봉(側筆露鋒)을 사용함으로써 비로소 새로운 풍격이 출현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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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석여의 전서>                    <조지겸의 전서>    <제백석의 전서>


(5) 우리나라의 전서 


   단군시대의 옛 비로 전하는 황해도 구월산의 '고전비(古篆碑)'가 중국에서 창힐의 필적으로 전하는 것과 같아서 연구 대상이 되고 있으며,


<신라태종무열왕릉비>는 오(吳)나라의 <천발신첨비>의 전과 비슷한 예봉필법(銳)으로 되어 있어 정방형의 특색을 보인다.


또 신라말기 학자인 고운 최치원(AD857~?)의 필적인 <진감선사비>의 전액(篆額)인 <당해동진감선사지비>의 9자는 예봉필법으로 초전의 맛이 짙어 중국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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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감선사비>   <진감선사비 두문 탁본>  <최치원 영정>     <최치원 친필>    



     또 조선 중기의 문신이며 학자인 미수 허목(AD1595~1682)은 초전의 특색을 살린 독특한 전서를 쓴 것으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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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목의 수고본>          <허목의 초상>    <허목의 광풍세월>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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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한중 전서에 대한 공부가 깊었군요. 이론과 실기를 두루 갖춘 실력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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