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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의 예술적 표상

 

霞月 李康旭


 소식의 '봄 저녁 한 시각은 천 냥에 값하나니, 꽃에는 맑은 향기, 달에는 그늘(春宵一刻値千金 花有淸香月有陰)'이라고 한 시구 그대로다. 어느 것이 달빛인지 어느 것이 꽃빛인지 분간할 수도 없이 서로 어리고 서려 있는 봄밤의 정취란 참으로 흘러가는 생명의 한스러움을 느끼게 할 뿐이다. 

달빛과 꽃, 새울음과 달빛, 벌레울음과 달빛, 제월(霽月), 곧 비 갠 뒤의 달, 텅 빈 산속을 비치는 달, 눈을 비치는 달, 물그림자와 달빛, 구름 낀 서리의 달, 안개에 가린 달, 가인(佳人)과 달, 달과 피리(거문고)소리 등은 시조가 가장 즐겨한 전통성 짙은 시재(詩材)들이다.


〔달의 예술적 표상〕


 달은 우주적인 생명력의 전형으로 간주되고 동시에 땅 위의 삶을 위한 생명의 원리로 간주되면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들 전통사회의 신앙과, 농경을 위주로 하였던 현실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달은 한국인의 정서적 체험 내지 심미적 체험 속에서도 매우 큰 몫을 담당해왔다.


달의 시, 달의 그림, 달의 노래, 그리고 달의 서정 등에 걸쳐 우리들에게는 분명하게 달의 예술, 달의 미적 범주가 존립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은 천상의 백옥경(白玉京)이라 부르고 그 속의 월궁 항아를 이야기하면서 우리들은 신비주의의 여운으로 감싸인 달의 미학을 이루어왔던 것이다. 미술의 기본적인 의장(意匠)으로 누구나 원근법과 명암법을 손꼽는다.


동양화는 다행스럽게도 이 두 가지 기법에 걸쳐 서구와는 다른 강한 개성을 가꾸어왔다. 산영(山影)들과 물이 어울린 원(遠) · 중(中) · 근(近)의 삼분법이 심천(深淺) 및 후박(厚薄) 아니면 중경(重經)의 느낌과 더불어서 구도의 기본을 이룩한 점에 있어서, 우리들의 전통화는 서구의 그림을 앞지르고 있었거니와, 그 같은 깊음과 얕음 내지 두텁음과 엷음이 따르는 원근의 삼분법은 우리 전통화의 강한 개성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이와 함께, 우리 전통화의 명암법을 이야기할 때, 종국적으로 그것이 음양의 대극성의 표현이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것으로 우리 전통화에 달빛의 명암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태양의 음양법과는 사뭇 다르다. 태양의 명암은 구별과 대조의 명암법이다.


‘ 암(暗) ’ 은 다만 ‘ 명(明) ’ 을 한층 더 뚜렷하게 드러내는 소극적 구실을 다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달빛의 명암법은 조화와 융합의 명암법이다. 그것이 가령, 본질적으로 대조법에 속한다고는 해도, 상보적인 대조법을 이루고 있는 것, 그것이 곧 달의 명암법이 지닌 강한 개성이다.


달빛의 명암법은 종국적으로 넓은 여백감이라고 할만한 여유 있는 개방적인 공간감을 빚어내고, 동시에 은은한 암시적인 분위기를 자아내게 한다. 그것은 미처 화면에 표현되지 않는, 숨어 있는, 깊이 가려져 있는 잠재적인 심층을 넌지시 시사하게 된다. 그것이 시나 음악에 있어서의 절제된 표현, 음악의 침묵 및 여운 등에 호응하고 있음은 말할 나위도 없다.


이와 같은 달의 명암법이 신윤복 ( 申潤福 )의 작품에 잘 나타나 있거니와, 종국적으로 달빛의 명암법은 하월(霞月)이나 애월을 더 사랑하게 된다. 이내(저녁나절에 멀리 보이는 푸르스름한 흐릿한 기운)나 안개가 낀 달빛이 더욱 선호된다는 뜻이다.


장가계

 빽빽하게 늘어선 기봉군들의 雄壯 함은 숨이 막힐 정도다.

특히 雲濤, 月輝, 霞月, 冬雪의 四大 名觀을 지녀서 變化가 無窮無盡 한곳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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