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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예최고위과정

파주 문화유적 답사기 - 홍우기

坡州文化遺跡踏査記


의석 홍우기



며칠 전부터 당일 비가 온다는 예보에 마음을 졸였다. 아니 밤새도록 컴퓨터 앞에 앉아 기상청 홈페이지를 들락거렸다. 혹여나 날이 궂으면 이 무슨 낭패란 말인가? 270명이라는 많은 서예가들이 참여한다 했으니 이제는 포기하거나 미룰 수도 없다. 이렇게 애가 타는 심정은 경험해본 사람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답사도 답사려니와 점심식사는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한꺼번에 들어갈 만한 장소가 없어 야외에 뷔페로 준비했는데…. 그러나 비소식이 조금씩 당겨지더니, 전일엔 오후들어 주룩주룩 비가 내렸다. 기분이 좋다. 내일이면 맑은 공기를 마시며 구름을 일산삼아 다닐 수가 있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알긴 했지만, 이를 걱정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모두의 간절한 마음에 하늘도 감복하여 좋은 날을 만들어주었는가 보다.


이날 답사에는 무림 김영기․죽봉 황성현․농산 정충락․백암 강사현선생과 부산․전주․대전으로부터 조상래․서홍식․조태수선생을 비롯한 몇몇 임원분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특히 전라금석문연구회에서 고문인 이용엽선생과 회장인 김진돈선생도 참여하였는데, 그들은 요즘 추사선생의 미발견 필적을 탁본하여, 주요일간신문을 비롯한 연합통신 등에서 큰 비중을 가지고 보도가 되고 있는 분들이다. 차를 타고 가며 덕암선생이 넌지시 말한다. “우리나라 곳곳에는 문화유적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그 가치를 모르고 있죠. 투망을 던져 물고기를 잡듯 찾아 나서기만 하면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는데…. 나는 이제 공모전과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도 산적해 있는데, 왜 그런 따분한 일에 매달립니까?” 맞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중국의 문화․중국의 역사․중국의 서예…… 에 젖어있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이제는 우리의 것을 찾아 나서야 한다. 그리고 우리 선조들이 써놓은 좋은 비문을 찾아서 적극적으로 배워야 한다. 우리의 서예역사나 서예이론도 재정립해야할 것이고, 그것을 우리가 계승발전시키고 선양하여야 할 것이다. 물론 중국 것에 대하여 배타적이어서도 안되지만 종속적이어서도 안된다. 실기만 있고 이론이 없는 서예는 대중들에게 설득력이 없다. 예술작품을 앞에 놓고 절대적인 논리를 따질 수는 없으나, 이론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한다면 글씨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없어질 것이니, 심사에 자연 친밀관계를 떠날 수가 없다.


이제는 깊고 폭넓은 연구를 하고 그러한 결과물들을 발표하며, 재능있는 후학들을 사심없이 길러내는 단체의 역할이 필요하다. 실제로 한국서도협회에서는, 서울경기남부지회에서 주최하는 ‘제1회 한남서도대전’을 필두로 논문분야를 신설하여 전국지회로 확대할 것이며, 내년에 실시하는 ‘제11회 서도대전’부터 논문분야를 추가하기로 했다. 그것은 서예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을 뽑아 그들이 마음껏 활약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할 것이다. 답사 역시 이러한 운동의 일환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파주는, 계유정난(1455년)을 일으켜 즉위한 세조가, 정변중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세조비 파평윤씨와 할머니 여흥민씨의 고향을 ‘파주(坡州)’와 ‘여주(驪州)’로 승격시키는 과정에서 얻어진 이름이다. 파주는 지세가 좋은지 저명한 분들의 묘가 많다. 황희․이이․신사임당․윤관선생 등을 비롯하여, 얼마 전에 드라마에서 인기를 누렸던 동의보감의 저자 허준, 그리고 신라최후의 왕으로 비운에 울었던 경순왕, 이이와 한 시대를 살며 사단칠정에 논쟁을 벌였던 우계 성혼, 영조의 가족 공순영릉․윤원형․정난정․황보인묘가 있고, 보광사․용미리석불․파주향교․교하향교․적성향교․파산서원․용주서원․두루뫼박물관 등이 있으며,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는 임진각․통일전망대․제3땅굴․판문점 등 일일이 열거할 수조차 없다.


첫 번째 답사코스인 반구정(伴鷗亭)에 대한 설명은 본회 부회장을 맡고 있는 이촌 김재봉선생이 맡았다. 반구정은 고려말기와 조선초기의 문신이며 명상(名相) 청백리의 대표적인 인물인 방촌 황희(黃喜 1363∼1452)선생께서 관직에서 물러나 갈매기를 벗삼아 여생을 보내던 곳이었으나, 애석하게도 한국전쟁때 모두 불타버렸다. 그 뒤 이 일대의 후손들이 부분적으로 복구해 오다가 1998년 유적지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반구정과 앙지대등을 목조건물로 개축하였다. 이촌선생은 한명회의 압구정(狎鷗亭)과 황희의 반구정(伴鷗亭)을 들어가며 친압할 압(狎)에서 풍기는 이미지와 짝할 반(伴)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비교해가며 백성들을 대했던 그들의 통치방법과 인간미를 비교하였는데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맞은편으로는 황희정승 동상이 서있고 동상아래 좌우에는 연면초(連綿草)로 이루어진 5언절구 두수가 있다.


靑山臨黃河 푸른 산이 황하곁에 서있는데

下有長安道 아래로는 장안으로 가는 길이 있구나

世上名利人 세상에 명리를 구하는 이들

相逢不知老 서로 만나도 늙음을 알지 못하네

 


 

觀風樓

軒高能却暑 처마가 높으니 더위를 물리치고

簽豁易爲風 집이 넓으니 바람이 이는구나

老樹陰垂地 큰나무는 땅에 그늘을 드리우는데

遙岑翠掃空 먼 산은 푸른 빛으로 하늘을 쓸어낸다


탁본은 처음에 본회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백산 이동성선생이 맡아서 하기로 하였는데 일이 있어 참석을 못하였던 관계로, 탁본전문가인 덕암선생과 후암선생이 맡았다. 반구정에서 내려와 탁본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사람들은 궁금한 것이 많은 모양이다. “무슨 종이를 사용한 것이냐?” “방망이 안에 들어있는 것이 무엇이냐?” “방망이는 왜 두개가 필요하냐?” 고 묻더니, 몇몇 사람들이 모여 다음 언제 날을 잡아 탁본을 해보자는 얘기들을 한다. 서예계에 앞으로 이런 행사가 많았으면 좋겠다. 학술세미나도 하고, 탁본여행도 하고, 모여서 함께 글씨도 써보고, 밤을 새워가며 토론도 해보고…… 이제는 그냥 공모전을 하고 거기서 입상을 하고 초대작가를 만들어주고 하는 것이 협회의 단순한 임무가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느 단체건 초대작가전을 둘러보다 보면 가끔 듣는 소리가 있다. 자기네들끼리 수군대는 소리지만, 나는 그 수치스런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이거 초대작가전 맞아?”

“정말, 실망! 실망이야!”

“몇 달만 해도 저 정도는 될 것 같지 않아?”


나 역시도 글을 잘 쓰는 형편이 못되지만 이런 말을 들을 때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 글이란 그렇게도 힘든 것이고 쉽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불다마는 것이 바람이고, 살다마는 것이 사람이고, 쓰다마는 것이 글씨”라고 했던가? 그러나 뒷소문으로 얼마 얼마가 오고갔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그것이 대중매체를 통해 보도가 될 때면 아예 서예를 그만두고 싶다. 무슨 놈의 상이 그렇게도 중요하단 말인가? 서로 상을 가져가려고 신경전을 벌이는 광경을 보면 차라리 가증스럽다. 고집을 피우고 있는 작품들이 얼핏 보기에도 좋은 작품이 아니라면 더욱 그렇다. 저따위 작품에 그런 상을 주려고 왜 저렇게 공을 들인단 말인가? 자신이 직접 구상하여 자신의 글씨로 쓴 작품도 아니며 자기작품이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작가에게 별의별 화려한 수식을 동원하여 대상 우수상이란 멍에를 씌워주고 초대작가라는 명칭을 부여해준다면, 결국 공모전의 의미는 무엇이란 말인가? 우리는 무엇을 위해 서예를 한단 말인가? 많은 사람들의 행렬 사이에 끼어 이런 저런 생각을 하였다.


조선초기의 융성은 황희정승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6년간을 좌우의정을 역임했고, 19년간이나 영의정에 있으면서도 천장에서 빗물이 샐 정도로 가난했던, 그러한 ‘안빈낙도(安貧樂道)’의 정신이 그 찬란한 치적을 이루는데 큰 공헌을 했을 것이다. 우리 서예계도 부흥을 원한다면 바로 이 황희정승과 같은 청렴이 있어야 한다. 임원부터 몸소 바르게 하고 공정하게 하려는 굳은 마음이 있어야 한다.


다음 답사지 화석정(花石亭)은, 율곡 이이(李珥)선생의 본향인 율곡리 임진강변에 위치하고 있다. 임진강은 고구려이후 표로하(瓢蘆河)로 호칭되었으나, 고려말 공양왕이 왕조신주(王朝神主)를 모시고 도망가다 도감포 아래 연못에 수장하였다 하여 ‘구연강(仇淵江)’ 또는 ‘신지강(神智江)’ ‘낙하(洛河)’ 등으로 개칭되었다. 그후 선조가 임진왜란(1592년)으로 인하여 의주로 파천하였다 환도를 하면서 이 강에 당도하여 위령제를 지냈다. 선조는 파천 당시 4월 그믐밤 폭풍우속에 화석정을 불태워가며 이 나루를 건너게 되었던 아픔을 떠올리며 “하늘의 도움을 받아 (天佑神助)이 나루에 다시 돌아오게 되었다”고 하였는데, 그러한 사연으로 임진강(臨津江)이 되었다고 한다. 


이 정자는 세종 25년(1443)에 율곡선생의 5대조부인 이명신(李明晨)이 세웠다. 율곡선생은 국사의 여가가 날 때마다 이곳을 찾았고 관직을 물러난 후에도 여생을 이곳에서 제자들과 함께 보내면서 시와 학문을 논한 곳이다. 현재의 화석정은 1966년 파주 유림들이 성금을 모아 복원한 것으로 건축양식은 팔작지붕 겹처마에 초익공(初翼工) 형태이다. 건물의 정면중앙에는 5․16혁명의 주인공 박정희 전임대통령이 쓴 "花石亭" 현판이 걸려있다. 박대통령 역시 우리 민족이 한번도 넘어보지 못했던 가장 험준한 고개였던 보릿고개를 넘겨준 위대한 인물이다. 최대의 결점 ‘유신개헌’이 있기는 하지만 그의 큰 공적은 숨길 수가 없다. 그 역시 청렴과 굳센 의지로 세종이래의 화려한 치적을 이루었던 것이다. 전임이거나 현임이거나 우리 대통령들도 당리당략에 치우치지 말고 개인적인 축재를 하는데 관심을 갖지 말고, 사심에서 벗어나 청사에 길이 남을 치적을 이루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화석정과 율곡선생에 관해서는 토우 강대희선생의 설명이 있었다. 전면에 걸려있는 화석정이란 시를 보면서 역시 한문을 전공한 시인답게 멋들어지게 번역한다. 감동을 하는 모습들이다. 다음에 소개하는 시는 그 율곡선생이 8세때에 지었다는 화석정이란 시이다.


林亭秋己晩 숲 속 정자에 가을이 깊으니

騷客意無窮 시인의 생각 한이 없어라

遠水連天碧 먼데 물은 하늘 닿아 푸르고

霜楓向日紅 서리맞은 단풍은 해를 향해 붉구나.

山吐孤輪月 산은 외로운 달을 토해내고

江含萬里風 강은 만리의 바람을 머금었다네. 

塞鴻何處去 변방 기러기 어디로 가는가?

聲斷暮雲中 저녁구름 속으로 소리가 사라진다. 


자운서원에 도착하여 우선 점심시간을 가졌다. 식사를 위해 길게 늘어선 장사진은 또 하나의 볼거리를 제공했다. 어느 정도 식사를 마치고 어수선한 분위기를 정리하는 겸 ‘필회(筆會)’를 가졌다. 남부지회장인 무곡 최석화선생, 북부지회장인 노정 박상찬선생을 비롯하여 무림 김영기․죽봉 황성현․고강 유병리․토우 강대희․시강 조상래․하산 서홍식․이촌 김재봉선생 등 그날 참석한 많은 이들의 휘호가 이어졌다. 그중에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농산 정충락선생의 도서(倒書)였다. 글씨를 왼손으로 그것도 거꾸로 쓰는 광경을 처음 본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매우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필회는 많은 사람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는 동시에 그동안에 궁금했던 것을 일시에 풀어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것은 여러 사람들의 다양한 붓놀림을 보면서 그동안에 어느 한 선생의 운필에만 매달려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발전과 변화를 이루어가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자운서원은 조선 광해군(光海君) 7년(1615)에 조선 중기의 대학자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방유림이 창건하였다. 효종(孝宗) 원년(1650)에 "자운(紫雲)"이라 사액을 받았으며, 그 뒤 숙종(肅宗) 39년에 그의 후학인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1548∼1631)과 현석(玄石) 박세채(朴世采 1632∼1695) 두 분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경내에는 율곡기념관이 있고, 그 위로는 묘가 있는데 율곡선생의 아들 경림, 부모, 형, 율곡, 부인이 역장(逆葬)의 형태로 잠들어 있다. 그 당시는 음양오행이 철저하게 지켜졌던 시기이고 풍수지리에 밝았던 시대라, 아무런 근거도 없이 이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하여, 덕수이씨종중회․파주문화원․자운서원․풍수지리에 일가견이 있다는 전문가들에게 물어보았으나, 모두가 대답이 달랐고 나 역시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그에 대한 말은 여기서 줄인다.


사임당에 관해서는 아연 정숙모선생이 해설을 맡았다. 사임당이라는 당호는 중국 고대 주나라 문왕의 어머니인 태임을 본받는다는 뜻이다. 사임당은 조선 왕조가 요구하는 유교적 여성상에 굴하지 않고 독립된 인간으로서의 생활을 스스로 개척해 간 여인이다. 그림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중국풍의 그림과 사군자에만 매달려 있을 때에 사임당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초나 곤충 등에 관심을 기울여 특유의 초충도로 완성하였다. 사임당의 묘를 지나며 사임당이 남긴 시를 읊조려 본다.


   踰大關嶺望親庭 

   慈親鶴髮在臨瀛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 외로이 서울길로 가는 이마음

   回首北村時一望 이따금 북촌을 돌아다보니

   白雲飛下暮山靑 흰구름 저문산을 날아내리네

 


 

思親

千里家山萬疊峯 천리 내고향 첩첩 봉우리

歸心長在夢魂中 돌아가고 파 꿈속에도 그리웁구나

寒松亭畔孤輪月 한송정 가에 외로이 뜬 달

鏡浦臺前一陣風 경포대 앞에는 한바탕 바람

沙上白鷗恒聚散 모래위에 갈매기는 모였다 흩고

海門漁艇任西東 바다위 고깃배 오고가겠지

何時重踏臨瀛路 언제쯤 강릉길을 다시 찾아가

更着斑衣膝下縫 어머님 곁에 앉아 바느질할꼬



윤관장군에 관해서는 북부지회사무국장인 여천 박영기선생의 설명이 있었고, 능원묘의 석물에 관해서는 무곡 최석화선생의 재미있는 해설이 곁들여졌다. 고려 예종(睿宗)때 여진정벌의 공을 세운 명장 윤관(尹瓘)의 묘역은 규모가 상당히 크고 웅장하여, 실로 왕릉에 버금가는 분위기였다. 봉분정면에 상석(床石)이 놓여있으며 왼쪽에 묘비가 서있다. 한계단 아래에 양쪽으로 서있는 망주석 기둥 좌우에는 다람쥐처럼 자그마한 세호(細虎)가 오르내리고 있고, 상석 전면에는 사각의 장명등이 세워져 있다. 장명등을 중심으로 각각 양편에 동자석․문인석․무인석․석양․석마 등이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윤관장군 묘역 왼쪽으로 비석이 하나 있다. 이 자리에 비가 있을 자리가 아닌데, 혹여나 윤관장군의 옛 신도비인가 생각되어 확인해보니 심지원신도비였다. 곡장을 따라 돌아가 보니 심지원의 묘가 있는데 상을 차려놓고 절할만한 공간도 없다. 이 윤관장군의 묘가 그동안 실전이 되어오다가 영조 때에 확인되었기에 다시 비석을 세우고 석물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보니 윤관선생을 존경하는 마음보다는 야박하게 위세를 떠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제법 늦었다. 집이 여기서 가까운 사람들도 있고 먼 사람들도 있다. 우선은 여기서 헤어지기로 했다. 오랜 시간 돌아다니며 피곤했지만 그래도 즐거운 표정이다. 매년 이렇게 시간을 정해놓고 답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인사들을 한다. 별다른 과오없이 행사가 끝난 것이 고마울 뿐이다. 이 행사를 주도한 서울경기남북부지회장님을 비롯한 소암선생님과 무림․죽봉선생님, 그리고 각지회지회장님과 남북부지회 임원여러분과 참가해주신 모든 분들께 삼가 감사의 마음을 표한다. 끝으로, 궂은일 마다하지 않고 열심히 도와준 백산 이동성․효림 정문숙․효천 김은숙․유정 라현복님께 지면이나마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월간서예 2004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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