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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

[동아일보]◇김충열 교수의 노자강의/김충열 지음/435쪽 2만원 예문서원

 

簡分千古謎(간분천고미) 초나라 무덤에서 나온 죽간(竹簡) 천고의 수수께끼를 풀었고

帛說居間情(백설거간정) 백서(帛書) 갑을본(甲乙本)은 아득한 시절의 사정을 말해준다.

誰除使得乎(수제사득호) 누가 이를 풀어 본래의 모습으로 돌려놓을까

老蠶殘燭夜(노잠잔촉야) 늙은 누에, 촛불이 꺼져가는 적막한 밤에

吐盡夢方淸(토진몽방청) 실을 다 토해내니 꿈길마저 가벼워라

 

  이 한시는 저자(고려대 명예교수)가 60여년간에 걸친 노자(老子) 연구에 하나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지은 것이다. 이 책은 시에서 밝힌 바와 같이 초나라 무덤에서 나온 초간(楚簡) 노자와 한나라 무덤에서 나온 백서의 갑을본을 해석하고 그 의미를 강의한 뒤, 노자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읽어야 하는 왕필(王弼·226∼249)의 노자 주석을 교석(校釋)하고 강의한 것이다.

초간 노자의 경우 원문 해석 요의(要意)로, 왕필 노자주의 경우 원문 교석 의역 강의로 이루어져 있어 이 책을 읽으면 노자사상의 전모를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노자’라는 책에 대한 단순한 판본의 대조 비교보다는 ‘노자’를 그 시대의 사상으로 보는 입장이 더 중요하게 인식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책 끝에는 보너스 격으로 노자의 전체 사상을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노자의 철학을 도본(道本·본체론), 도적(道迹·우주론), 도덕(道德·가치론), 체도(體道·수양론), 행도(行道·정치론)로 정리해 놓아 책 읽는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다.

저자는 기존의 노자에 대한 다양한 연구결과를 정리분석하면서 초간 노자와 현행본 노자는 하나의 책에 대한 두 개의 판본임을 밝히고 있다. 즉, 초간 노자는 공자(孔子)가 예(禮)를 물었다는 노담(老聃)의 저작이고 현행본 노자는 전국시대 중엽의 태사담(太史담)이 초간 노자를 정리하면서 새로 쓴 저작이라는 것이다. 초간 노자는 형이상학적 용어가 없고 정치적이거나 권모술수적인 용어도 없으며 유가의 도덕규범을 비판하거나 부정한 글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가 오늘날 말하는 현행본 노자와 매우 다르다.

노자 제1장의 “道可道 非常道(도가도 비상도·도를 도라고 이름지어 부를 수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도가 아니다)”를 포함한 형이상학적 사유를 담고 있어 노자다운 맛을 가장 잘 담고 있는 노자는 태사담의 저작이라는 것이다.

책의 제목을 굳이 ‘노자강의’라고 붙여 ‘강의’란 표현을 강조한 것은 저자가 60년 동안 노자를 읽고 느끼면서 체화된 자신의 목소리를 여과 없이 담아내고자 하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왕필 노자주를 강의하는 경우에도 왕필의 이해만을 분석하지 않는다.

여러 군데에서 오늘날의 문제점과 관련지어 노자사상을 이해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예컨대 9·11테러의 원인과 그에 대한 해결책을 ‘유약함이 강함을 이긴다’는 노자적 시각에서 분석한다. 이같이 우리는 저자의 강의를 통해 덤으로 21세기에 살아 있는 노자를 만나게 된다. 노자사상을 심도 있게 이해하고자 하는 사람은 물론 21세기에 노자가 왜 아직도 유효한지에 대한 답을 얻고 싶은 사람도 읽어 봐야 할 책이다.

조민환 춘천교대 교수·도가철학 jomh@dreamw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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