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제9강> 중국 서예사

 

   (2) 중국 서예사

 

  중국은 우리와 이웃한 나라로서 역사상 문화 전반에 걸쳐서 맥락을 같이해 왔다. 따라서 중국의 서예의 흐름을 앎은 우리 서예를 재인식함은 물론 새로운 창조를 위한 밑거름이 되리라 믿고 왕조별로 간단히 적어 본다.

 

○ 결승(結繩) : 노끈을 묶어 자신의 의사를 전달

○ 복희씨(伏羲氏) 팔괘(八卦) 사용 : 건(:)·태(:)·이(:)·진(:)·손(:)·감(:)·간(:)·곤(:)을 말한다. 괘()는 걸어 놓는다는 괘()와 통하여, 천지만물의 형상을 걸어 놓아 사람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그 구성은 음효(陰爻:- -)와 양효(陽爻:―)를 1대 2, 또는 2대 1 등의 비율로 셋이 되게 짝지어 이루어진다.

 

[음양의 변화과정]

태극

태극

음양

양 (陽)

음 (陰)

사상

태양 (太陽)

소음 (小陰)

소양 (小陽)

태음 (太陰)

팔괘

건(乾)

태(兌)

이(離)

진(震)

손(巽)

감(坎)

간(艮)

곤(坤)

천(天)

택(澤)

화(火)

뇌(雷)

풍(風)

수(水)

산(山)

지(地)

 

 

○ 서계(書契) : 나무 따위에 글자 모양을 새김

○ 皇帝 때의 史官이었던 창힐(倉頡) : 조적(鳥跡)을 보고 문자를 처음 제정(制定)

 

  ① 은(殷, B.C.1120경)의 글씨는 거북의 등이나 짐승의 뼈에 새겨진 갑골문(甲骨文)이다. 확실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5천여 자 중에서 천여 자는 해독 가능하다. 은허(殷墟) 발굴. 直多曲少. 獨體에서 合體로 이행. 白陶 조각 위에 墨書 ‘祀(제사 사)’자를 보면 이미 모필을 사용하였다.

 

  ② 주(周, B.C.1120-B.C.222)의 글씨는 청동기 문화의 발달로 종이나 솥에 주조된 종정문(鐘鼎文, 金文이라고도 함)과, 북 모양의 돌에 새겨진 석고문(石鼓文)이 있다. 청동기 하나에 20~50자 정도를 썼으며 어떤 것은 그림과 같은 ‘圖象文字’롤 표현된 것도 있다. 春秋時代의 금문은 대부분 서주의 문자형태를 그대로 이어받았으나 戰國時代 秦나라 석고문은 고박하고 풍만한 필획으로 서체상 대전(大篆)이라 한다. 서주 말기의 금문은 글자의 모양이 고정되어 있고, 주요 작품으로는 散氏盤(350자), 毛公鼎(497자), 石鼓文 등이 있다.

 

  ③ 진(秦, B.C.221-B.C.206) 시대에는 대전을 정리·통일하여 소전(小篆)을 만들었는데, 전서의 완성형으로, 전아, 장중, 원만하며 좌우 대칭적 결구가 특징이다. 주요 작품으로 태산각석, 낭야대각석 등이 있다.

 

  ④ 한(漢B.C.202-A.D.220) 시대는 예서(隸書)로 대변되는데 필의와 속도감이 붙은 방형이 특징이다. 전한· 후한으로 나누어 살펴보면, 전한 때에는 전서가 실용에 불편하였으므로 점획이 생략되고 곡선이 직선으로 변한 소박한 고예(古隸)가 나타났고, 후한에 와서는 세련미와 파책의 미를 강조한 팔분예(八分隸)가 나왔다. 주요 작품으로는 예기비, 을영비, 사신비, 조전비, 장천비 등이 있다.

 

  ⑤ 위(魏), 오(吳), 촉(蜀)의 삼국 시대(A.D.220-A.D.280)에는 해서, 행서, 초서가 등장하여 글씨가 비로소 생활 서체로 이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⑥ 진(晉A.D.280-A.D.420) 시대에 와서는 이상적인 행·초서가 정리되어 온화하고 유려한 서풍이 나타났으니 난정서로 유명한 왕희지는 서성(書聖)의 칭호를 얻었고, 그 아들 왕헌지도 유명하다.

 

  ⑦ 남북조(南北朝) 시대(A.D.420-568)의 남조의 글씨는 왕희지의 영향으로 온화, 세련된 행서를 위주로 하고, 북조는 굳세고 질박한 필치의 해서를 위주로 하고 있다. 북조의 대표적 작품으로는 장맹룡비, 용문조상기 등이 있다.

 

  ⑧ 당(唐, A.D.618-A.D.907) 시대에 이르러는 서예의 전성기를 맞이하여 모든 서체가 완성되자 서체의 변천은 종식되고, 서풍의 변화만 있게 되었다. 엄정한 구양 순의 서풍과 웅혼·풍만한 안진경의 서풍이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구양 순의 구성궁예천명, 저수량의 안탑성교서, 안진경의 안근례비 등이 있다.

 

  ⑨ 송(宋, A.D.910-A.D.1279) 시대에는 행서와 초서가 주류를 이루고, 당의 엄격한 형식의 서법에서 벗어나 개성적 서풍이 일어났다. 주요 작가로는 채양, 소식, 황정견, 미불 등이 있다.

 

  ⑩ 원(元, A.D.1271-A.D.1368) 시대에 이르러는 고전의 존중과 개성적 서풍이 병행하였고, 송설체(松雪體)가 유행하였으며, 조맹부가 일가를 이루어 우리 나라에 까지 그 영향을 기쳤다.

 

  ⑪ 명(明, A.D.1368-A.D.1644) 시대에는 서법의 형식을 중시한 고전파와 창조적 변화를 중시한 개성파가 병행하였다. 고전파로는 축윤명, 문징명, 동기창 등이 있고, 개성파로는 장서도, 왕탁, 부산 등이 있다.

 

  ⑫ 청(淸A.D.1644-A.D.1912) 시대에 와서는 고증학의 영향으로 금석학이 발달하였고, 전서, 예서가 부흥되고, 전각이 융성하여 서예의 혁신을 가져 왔다. 고전 금석문 위주의 비파(碑派)와 법첩 중심의 첩파(帖派)로 나누어 지며, 등석여, 이병수, 오양지, 옹방강, 완 원, 하소기, 조지겸, 오창석, 제백석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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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서예

중국의 연원(淵源)은 문자의 발명과 동시에 있었을 것이나 원초(原初)의 것은 남아 있지 않아 알 수 없고, 다만 BC 14∼BC 12세기의 것인 은대(殷代)의 복문(卜文)을 새긴 갑골문(甲骨文)이 있고, 또 은(殷)시대의 금문(金文), 이른바 종정문(鐘鼎文) 즉 제기(祭器) ·무기(武器) ·악기(樂器) 기타에 새긴 명문(銘文)이 있어 알 수가 있다. 앞의 것은 귀갑(龜甲) ·수골(獸骨)에 칼로 글자를 새겼기 때문에 직선(直線)과 절선(折線)이 많다. 뒤의 것은 틀[鑄型]에 글자를 써서 새기고 이 틀에 금속을 녹여 부어서 주조(鑄造)한 것이므로 필사체(筆寫體)이다.

 

이것이 주(周)나라에 계승되었다. 주나라는 서주(西周:BC 1122∼BC 770)와 동주(東周:BC 770∼BC 222)로 구분하고, 동주는 또 춘추시대(BC 770∼BC 481)와 전국시대(BC 480∼BC 222)로 구분한다. 서주시대는 전대의 것을 지켜왔으나, 춘추시대를 거쳐 전국시대에는 자체(字體)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으며 지방적 특색을 갖게 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석문(石文)으로 석고문(石鼓文)이 있으며, 북처럼 만든 10개의 돌에 글자를 새겼기 때문에 이렇게 부른 것이다. 이 글 자체를 주문(文)이라고 하며, 매우 정정(整正)하며 전아한 풍취가 있다. 진통일(秦統一) 이전 즉, 선진(先秦) 시대의 글자를 고문(古文) · 고주(古) ·대전(大篆) 등 여러 명칭으로 부르고 있으나 고전 ·대전으로 부르면 된다. 석고문의 제작시대에 관하여는 이설(異說)이 많아 단정하기 어려우나 출토(出土)된 지점으로 보아 진(秦)나라 것이라고 하는 것이 옳다.

 

시황제(始皇帝)가 천하를 통일(BC 221)한 후 그 이전의 복잡한 문자를 통일 ·간이화(簡易化)하기 위하여 이사(李斯)에게 명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었으며, 진대에 이루어졌다고 하여 진전(秦篆)이라고 하며 그 이전의 복잡한 대전에 비하여 소전(小篆)이라고도 한다.

 

전한시대에는 진(秦)나라 때부터 싹트기 시작한 직선(直線) 위주의 예(隷)체가 이루어져 상용문자로서 사용되었고 점차 발전하여 말기에는 파책(波)이 생기고 후한에는 완성된 예서의 많은 비(碑)를 남겨 후세의 모범이 되었다. 파세(波勢)가 없는 전한의 예를 고예(古隸)라 하고 파세가 있는 후한의 것을 팔분(八分)이라고도 한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장천비(張遷碑) ·예기비(禮器碑) ·조전비(曹全碑) ·공우비(孔宇碑) 등이 있다. 이밖에 간쑤성[甘肅省] 등 서방지역에서 육필(肉筆)의 목간(木簡) ·죽간(竹簡) 등이 많이 출토되어 예(隸) · 장초(章草) 등이 상용(常用)되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초서의 명가인 장지(張芝)는 정사(正史)에 이름을 남긴 최초의 인물이었다. 후한에 와서 채륜(蔡倫)에 의하여 종이가 발명되어(105) 문자의 표현이 자유롭게 된 것은 문화사상 큰 변혁이었고 서예 발달을 크게 촉진하였다.

 

위 ·진시대는 전대를 계승한 예서와 해서에 볼 만한 것이 있으나 그 후의 해서로 옮아가는 과도기였다. 남북조시대에 진(晉)나라가 강남으로 천도(遷都)하여 동진(東晉)이 되고 강북은 혼란이 계속되다가 120년 뒤 북위(北魏)에 의해 통일되었다. 남북조시대는 문화도 각각 특색 있는 것으로 형성되었으며 서예에 있어서도 북비남첩(北碑南帖)이라 하여 북의 소박하고 힘찬 해서와 남의 전아 우미한 해(楷) · 행(行) ·초서(草書)가 특색이 있다. 동진시대에는 고래로 유명한 서성(書聖)이라 칭송되는 왕희지가 나와 귀족적이고 향기 높은 해서 ·행서 ·초서의 각체를 완성하여 예술로서 서예의 위치를 확립하였다. 이는 전대에서는 볼 수 없는 참신하고 완성된 서풍으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법의 전형으로 거의 절대적인 것이 되어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악의론(樂毅論)》 《십칠첩(十七帖)》 《난정서(蘭亭序)》 《집자성교서(集字聖敎序)》 등이 있다. 강남의 귀족적이고 전아한 서풍에 비하여 강북의 북위는 강건한 서풍이고 석문(石文)으로 많이 남아 있다.

 

수시대는 남북의 서풍이 혼연(渾然)융화되어 세련된 해서가 이루어져 당나라로 옮아가는 교량이 되었다. 당시대는 초당(初唐) 삼대가(三大家)인 구양 순(歐陽詢) ·우세남(虞世南) ·저수량(遂良)이 나와 각각 특색 있는 해서를 대성하여 해서의 규범이 되고 있어 이 시대는 서예의 황금시대라 할 수 있다.

 

대표작품으로는 구양 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화도사비(化度寺碑)》, 우세남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 저수량의 《맹법사비(孟法師碑)》 《안탑성교서(雁塔聖敎序)》 등이 있다. 그 후 손과정(孫過庭)이 나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초서의 규범으로 삼는 서보(書譜)의 작품을 남겼다.

 

중당시대는 왕희지 이후의 제일인자로 치는 안진경(顔眞卿)이 나와 새로운 서풍을 개척하여 전의(篆意) 섞인 해서를 썼으며, 이를 노공체(魯公體)라 한다. 《근례비(勤禮碑)》 《안씨가묘비(顔氏家廟碑)》 《제질고(祭姪稿)》 《쟁좌위첩(爭坐位帖)》 《제백부고(祭伯父稿)》 등의 유명한 작품을 남겼다. 당말(唐末)에는 유공권(柳公權) ·배휴(裴休) 등이 일가를 이룬 사람들이다.

 

송나라 초기 100년 동안에는 복고주의가 일어났으나 왕희지풍이 흠모되어 태종 순화(淳化) 3년에 칙명으로 순화각법첩(淳化閣法帖)이 완성되었다. 그러나 북송(北宋) 후기에는 채양(蔡襄) ·소식(蘇軾) ·황정견(黃庭堅) ·미불(米) 등 4대가가 나와 종래의 무기력한 서풍에서 벗어나 주관주의 ·개성주의 강한 작품들이 나왔다.

 

원시대에는 조맹부(趙孟: 松雪)가 나와 복고주의를 표방하여 왕희지의 글씨를 조종(祖宗)으로 하는 전아 우미하면서 격조 높은 서풍이 풍미(風靡)하였으며 고려 말 이후 한국 서예에 끼친 영향은 매우 크다.

 

이 시대에는 명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축윤명(祝允明) ·문징명(文徵明) ·동기창(董其昌) 등이 대표 작가들이며 말기에는 자유분방하고 표현에 개성미가 강한 서가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특히 서위(徐渭) ·황도주(黃道周) ·예원로(倪元) ·장서도(張瑞圖) ·왕탁(王鐸) ·부산(傅山) 등이 있다. 이들은 대폭에 행 ·초서로서 리드미컬하고 정열이 약동하는 듯한 훌륭한 작품을 많이 남겨 후세에 크게 영향을 끼쳤다.

 

청조 강희제(康熙帝)가 동기창을 좋아하였으므로 그의 서풍이 널리 퍼졌다. 일면 개성이 강한 서가들인 정보(鄭) ·김농(金農) ·정섭(鄭燮) 등이 있지만 대체로 법첩을 주로 하는 첩학파(帖學派)가 많았다. 유용(劉鏞) ·양동서(梁同書) ·왕문치(王文治) ·성친왕(成親王) 등이 그러하며 금석학의 영향으로 전예(篆隸)가 유행하였던 시기이다. 특히 등석여(鄧石如)는 전예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전무후무한 탁월한 서가였다. 후기에 들어 완원(阮元)이 남북서파론(南北書派論) ·남첩북비론(南帖北碑論)을 제창하였다. 그 요지는 한 ·위(漢魏) 이래에 서예의 정통은 번각을 거듭하여 본래의 모습을 잃은 법첩으로 인하여 쇠잔하고 오히려 북위 이후의 비각(碑刻)에서 정통을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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