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톡톡 튀는 예술가들의 삶의 뒷얘기
(작가와 작품의 뒷얘기를 살피는 것도 삶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뒷골목의 삶이 진실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움베르토 에코는 출판사에 근무하는 여자친구로부터 추리소설을 쓸 것을 권유받고 <장미의 이름>을 2년 반 만에 썼다.
사실주의 화가, 쿠르베(Courbet)는 천사를 그려달라는 부탁에 “천사를 데려오라.”고 거절하며 "나는 눈에 보이는 것밖에 그리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무용가, 이사도라 던컨은 머리에 빨간 스카프를 길게 늘어뜨리는 것을 좋아했다. 차를 타고 달릴 때 이 스카프의 끝자락이 차의 뒷바퀴에 휘감겨 목뼈가 부러져 죽었다.
헤밍웨이는 배고픈 시절, 파리 룩상부르그 공원의 비둘기를 잡아먹은 적이 있다.
다재다능했던 홍난파는 음악활동 외에 잡지에 시와 소설, 수필 등을 선보였다. 어느 날 시인 수주 변영로가 "너는 도대체 음악이나 하면 됐지, 주제 넘는 소설은 다 무엇이냐!"고 충고를 하자 집에 돌아와 창작집 원고를 불사르고 음악에만 전념을 했다.
소설가 신경숙은 커피 컵을 좋아했는데, 소설 <깊은 슬픔>을 쓸 때 여덟 개의 커피 컵 중 여섯 개를 깨뜨렸다.
소설가 이인화는 <인간의 길>을 자신의 필생의 작업이라 하였다. 심지어 그 대작이 1억 부나 팔릴 것이라고 호언장담하다가 부인에게 미쳤다는 얘기까지 들었다고 한다.
마르케스는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기 위해 우체국에 갔으나, 우편요금이 모자라자 그는 원고를 반으로 잘라서 반만 부쳤다. 그리고 아내의 헤어드라이어를 팔아서 나머지 원고를 부칠 수 있었다. 이때의 작품은 <백 년 동안의 고독>이다.
조지훈이 명동에서 노기남 주교가 지식인들은 의지가 박약하다고 하자. 그렇지 않다며 반론을 폈다. 그래도 믿지 않자 성냥개비 여섯 개를 움켜쥐고 자기 왼손 등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불을 붙이고 다 탈 때까지 끄떡도 하지 않았다.
나폴레옹은 피난 중이던 괴테를 소환했다. 나폴레옹 40세, 괴테는 60세였다. 대담이 끝난 후 나폴레옹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거야말로 인간이다.”
조정래는 소설 <태백산맥>을 쓰기 위해 자료조사와 구상에 2년을 소비했다. 원고는 1만 6천장으로 쌓아두면 자신의 키만큼의 높이라 한다.
파블로 피카소는 태어나자마자 죽을 뻔 했다. 그를 사산(死産)이라 생각한 어머니는 버리려 했다. 그러나 옆에서 담배를 피우던 그의 삼촌이 담배연기를 입김에 불어넣자 이것 때문에 아기가 울어서 산 것을 알았다.
흔히 자화상에 집착하는 화가는 불안한 영혼의 소유자다. 렘브란트, 고야, 고흐가 그랬다.
고흐가 임종할 때 호주머니에서 동생 테오에게 보내는 마지막 메시지가 있었는데 내용은 이랬다. “정말이지 우리는 그림으로써 밖에는 그 아무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화가 세잔과 소설가 에밀졸라는 죽마고우였다. 세잔이 뒤늦게 화가의 길을 들어선 것은 졸라의 권유에서였다. 이들 30년 우정은 졸라의 소설 <작품>으로 인해 끝났다. 왜냐하면 이 소설에 묘사된 실패한 천재가 세잔 자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후 세잔과 졸라는 영영 만나지 않았다.
헤밍웨이가 1961년 7월 2일 자살할 때 사용한 도구는 영국제 2연발식 산탄총이었다.
섬진강 가에 살았던 황현은 매화를 좋아해서 호를 매천(梅泉)이라 했다.
홍명희는 평생 동안 소설은 <임꺽정> 한 작품만 발표했다.
이상과 김유정은 동반자살하기로 약속했으나 김유정의 반대로 무산되었다.
‘풀’, ‘폭포’라는 시로 유명한 김수영은 술에 취한 상태에서 길을 걷다가 인도를 넘어온 좌석버스에 치여 사망했다.
포크너에게 “왜 작가가 되었느냐.”는 질문에 “연필과 종이 그리고 약간의 담배만 있으면 되는 게 작가인데 이 간단한 직업을 내가 왜 선택하지 않았겠느냐.”고 대답했다.
러시아 시인 푸쉬킨은 미인과 결혼했으나 그녀를 좋아하는 사관에게 참지 못하여 총결투를 신청하여 결국 결투에서 치명상을 입고 사망했다.
시인 한용운은 본부인과 아기를 버렸고, 재혼을 한 후 승려도 결혼해도 된다고 주장했다.
희곡작가 및 시인 브레히트는 생전에 헤겔의 묘지 옆에 묻히고 싶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되었다. 생전에 창 너머에 헤겔의 묘지가 있었다.
톨스토이는 아내의 잔소리가 싫어서 82세 때에 가출하였다. 그렇게 길거리에서 방황하다가 11일 후에 기차역에서 객사했다.
베토벤은 나폴레옹을 생각하고 [영웅]을 만들었으나 그가 황제에 오르자 버렸다.
소설가 이외수는 가수 임지훈의 목소리를 듣고 ‘포유동물이 낼 수 있는 가장 슬픈 목소리’라 했다.
브라암스는 불에 타죽은 어린 아이를 위해서 ‘자장가(Lullaby)’를 작곡했다.
로댕의 조각 작품 ‘생각하는 사람’의 모델은 시인 단테이다.
고흐는 면도칼로 자신의 귀를 잘라 성냥갑에 넣어 그 지방 매춘부에게 보냈다.
헤로도투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집트의 한 왕이 아이가 처음 내뱉는 단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언어 접촉 없이 관찰케 했다. 결과는 베코스(Bekos), 이 말은 프리지 단어로 ‘빵’이다.
불교설화에 의하면 선(禪)의 비조인 달마가 정진을 위해 자신의 눈썹을 밀어 버렸는데 거기서 차나무가 생겼다고 한다.
천상병이 죽고 조의금이 걷혔는데 그의 장모는 큰돈을 어디다 숨길까 하다가 도둑이 찾기 어려운 아궁이 속에 깊숙이 넣었다. 다음날 시인의 아내는 아궁이에 불을 지폈고 이 때 일부의 돈이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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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