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미술의 이해/ 정효찬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미술의 이해/ 강사 : 정효찬/ 성남아트센터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미술학과 졸업

동 대학원 졸업

미술의 이해 강의 -경북대

유쾌한 이노베이션 - 한양대

한양대, 경북대 출강

*--- 예술과 외설은 어떻게 구별할 수 있을 것인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는 정의를 상징하는 위대한 상징물이다.

이 작품은 적나라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부분 부분이 자세히 묘사되어있다.

영국여왕이 ‘다비드’를 보기위해 이탈리아에 왔을 때, 우피치 미술관의 사람들은

영국여왕에 대한 예우로써 30Cm 크기의 나뭇잎을 제작하여 다비드의 거시기를 가렸다.

그들은 그것이 예우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힘든 시간 내서 이탈리아까지 왔던 여왕은

정말 보고 싶었던 미켈란제로의 다비드를 모자이크처리 한 것에 안타까워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정의로운 사람은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최소한 위대한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시스티나 성당의 ‘최후의 심판’에서 예수님을 누드로 그렸다가 음란물로 지적당하고

그림이 삭제될 뻔하기도 했다.

임시방편으로 예수님에게 팬티를 입혀놓음으로 삭제되는 재앙은 피할 수 있었다.


자유롭고 정의로운 사람들은 부끄러울 필요가 없다. 부끄러울 필요가 없는 것과 부끄러움을 모르는 것...

이것이 예술과 외설을 경계 지을 수 있는 단서가 아닐까?

예술과 외설, 창조와 표절, 사랑과 사기....

이 모든 것은 양심에 달려있지만 세상은 양심을 평가하는 잣대가 불분명하다.

고흐는 양심껏 모든 것을 걸고 그림을 그렸지만 세상은 그의 양심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가 죽은 후 사람들은 그의 그림에다 그의 인생을 붙여서 전설을 만들어냈고,

우리는 그의 전설에 천문학적 가치를 입혀 찬양하고 있다.

시대를 앞서는 위대한 예술들을 알아 볼 수 있는 해안이 있다면 정말 축복 받은 것이다.

하지만 불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천재가 아닌 일반사람인 우리들은 그저 예술 앞에서 솔직해 지고, 그렇게 자아를 인식하고,

내가 만들고 있었던 아우라를 확인해 보는 것...

이것이 우리 삶에 있어서 예술과의 관계가 아닐까 생각해 보자.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