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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칼럼] 주면서 살자 [중앙일보]

“당신 멋져.”

들어도 들어도 정말 멋진 건배사다.

당당하게 살자.

신나게 살자.

멋지게 살자.

져주면서 살자.

이명박 대통령 시대가 열렸다. 새 시대에는 정말 우리 국민 모두가 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살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져주면서 살 수 있으면 더욱 좋겠다.

슬쩍 욕심이 더 생긴다. ‘져주면서 살자’에서 한 글자만 떼어 내면 ‘주면서 살자’다. 집안 살림도 펴지고, 나라 살림도 좋아지면서 마음도 넓어져서 ‘기부’를 생활화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가수 김장훈씨나 프로골퍼 최경주씨는 우리가 잘 아는 ‘기부 천사’들이다. 이들은 기부의 기쁨을 아는 사람들이다. 전 재산을 학교나 자선단체에 기부하고 돌아가신 할머니·할아버지의 사연은 언제 들어도 가슴 찡하다. 이름도 알리지 않고 뒤에서 몰래 조용히 기부에 동참하는 ‘이름 없는 천사’들도 많다.

하지만 이들이 기준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기준이 너무 높으면 따라 하기 힘들다.

 아이들에게 위인전을 읽히지 말자는 움직임이 한때 있었다. 보통사람이 모범을 삼기에는 너무나 위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고 오히려 좌절하거나 자조적인 성격이 될 수도 있다는 노파심에서였다.

중국 춘추시대 이야기다. 제나라의 환공이 인재등용을 위해 재주 있는 사람을 기다렸으나 1년 동안 한 명도 오지 않았다. 하루는 시골 사람이 면회를 신청했다.

“그대는 어떤 재주가 있는가.”

“구구단을 잘 외웁니다.”

“구구단을 재주라 할 수 있는가.”

“재주 있는 사람들이 오지 않는 이유는 대왕이 워낙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구구단 정도를 대우하게 되면 정말 재능 있는 사람들이 속속 찾아올 것입니다.”

‘그 말이 참으로 옳다’고 생각한 환공은 이 사람을 대우했고, 그 이후 인재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기부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어떤가.

대기업들이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수십억원씩 내도 반응은 “그것밖에 안 내나”든지 “그 정도는 당연히 내야지”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기부는 최소한의 체면치레용이 될 수밖에 없다. 성금을 내고 신문이나 방송에 얼굴을 내미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비난 일색이다.

“기부는 조용히, 자기를 드러내지 않고 해야지.”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해야지.” “‘노블레스 오블리주’도 모르느냐.”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니다. ‘주는 사람’이 좋은 소리 못 듣고, ‘받는 사람’이 고마움을 모른다면 ‘기부 친화적인’ 사회를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가 천사가 아닌 한, 기부는 ‘기부 앤드 테이크’에서 시작해야 한다. 기부를 하면 세금을 깎아주고, 기부를 하면 특혜를 주고, 기부를 하면 이름을 내세워 주는 것이다. 그래서 기분 좋게 기부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줘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기여입학에도 찬성한다. 몇 명을 입학시켜 주고 받은 기부금으로 학교 시설도 확충하고, 등록금도 낮추고, 장학금도 늘린다면 그게 실용주의다. 기여입학으로 다른 학생이 피해를 본다고? 그건 ‘정원 외 입학’ 등의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길은 많이 있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의식이 바뀌기만 한다면. 새 시대에는 기부문화가 정착되기를 바란다. 액수의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주는 기쁨을 누리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개와 경주하지 마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기면 ‘개보다 더한 X’이요, 지면 ‘개보다 못한 X’이요, 비기면 ‘개 같은 X’이기 때문이란다.

기부는 강요로 될 일이 아니다. 그러나 기부문화가 확산되어 ‘개나 소도’ 기부하는 세상이 된다면 ‘개보다 못한 X’이 되기 싫어서라도 기부하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을까.

우리는 태안 원유유출 사건을 통해 대한민국의 무한한 가능성을 봤다. 연인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추운 겨울날, 태안 바닷가를 찾아 기름을 닦았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에서 우리 국민의 위대함을 발견했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리에게는 기본적으로 ‘측은지심’이 있다. ‘주면서 사는’ 새 시대가 열리길 기대하는 이유다.


손장환 기획취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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