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안진경<근례비>에 대하여

안진경 <근례비>에 대하여


   해서의 창안자인 안진경은 중국 산동성의 사람으로 호는 응방(應方)이고 字는 淸臣이다. 그리고 안근례는 안진경의 증조부로서 字는 敬이다. 안진경은 정원(貞元) 원년(元年 785) 77세때 사망하였는데, 晩年에 이르러서는 그 서의 명성은 더욱 높아지고 心手가 다함께 丹熟(단숙)했을 것이니만큼 그러한 것을 보고자 하는 기대는 컸었다. 그런데 지금으로부터 약 半世紀(반세기) 前인 民國 11년(1922)에 長安의 舊藩(구번)해고, 즉 布政使(포정사) 소속의 창고 뒤 쪽 땅속에서 顔碑 一基가 발견되었다. 이것이 안근례비이다.


   안근례비는 안씨가묘비와 더불어 안진경 해서의 2대 역작중의 하나이다. 비가 세워진 연도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비문 중에 기재된 사실로 미루어 입비(立碑)는 안진경 말기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비는 사각면이나 셋째 면은 갈아 없어졌고, 약 천 육백여 자가 새겨져 있다. 비의 자획이 온전하며 특히 삼면의 글씨는 원필이며, 강, 유가 잘 조화되어 있다. 장봉의 표현이 세련되어 있으며 그의 해서 중에서 가장 우수한 기교 표현 작품이라 한다. 안진경의 필법은 구양순의 경우와 다른 바 없으나 구법(歐法)보다도 약간 붓을 세우며 안서(顔書)의 가로획은 우상향세(右上向勢)의 기법을 사용한다. 구(歐)의 배세(背勢), 안(顔)의 향세(向勢)라 부르는 이 상대적인 조형수법은 해서 기법의 양극을 보여 준다고 할 수 있다. 이 비의 내용은 안진경이 그의 조부이 안근례의 일대기를 써 놓은 것이다.

    

   안진경<근례비>는 그 필세의 변화와 결자형세의 변화가 서로 결합된 가운데 전서와 주문 안에 함유된 본질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그 모양은 마치 ‘이왕’ 첩학의 풍요롭고 다양한 변화와, 여기에 다시 고졸하고 그윽한 비학의 의취를 더하였다. 그러므로 첩학과 비학을 집대성한 당나라 해서의 규범을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근례비> 서예는 결자에서 힘이 충만하면서 웅대한 형세를 표현하고 있다. 가장 분명하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은 대칭과 평형을 이루는 가운데 동적인 느낌과 그 경향성의 세력 균형의 처리를 가장 순리적으로 하여 전체를 완성하였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글자에 의하여 자태를 내고 자태로 말미암아 형세를 얻는 선을 강하게 표현함으로써 그 풍격화의 예술적 개성을 분명히 나타내었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는 이런 종류의 예술 처리 가운데 시종 엄밀하게 대칭과 평형을 준수하였으며, 또한 형세를 따르는 풍부한 느낌의 표현을 이치와 순서에 맞도록 하였다. 때로는 가로획과 세로획이 서로 중첩되고 삐침과 파임이 서로 합하기도 하였으며, 때로는 가로로 향한 필세를 일으키고 끝내는 배열로 말미암아 좌우로 기운 형세를 밖으로 뻗게 하며, 시각적으로도 평형을 유지하도록 하였다. 이는 정말 감성, 이성, 개성, 공통성이 고도로 묵계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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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두 학기 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