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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살아 숨쉬는 '아시아 예술혼'
   게재일 : 2003년 11월 05일   기고자 : 후쿠오카=신예리 기자


오랜 시간 유럽의 변방으로 치부돼 온 아시아. '서구화'가 현대화와 동의어로 쓰였던 아시아 지역의 현대 미술은 과연 서구의 그것과 어떻게 차별화될까. 이런 의문을 가진 사람이라면 한국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자리잡은 일본의 후쿠오카(福岡)를 한번 찾아볼 일이다. 17세기부터 항구 도시, 교역의 도시로 잘 알려진 이 곳엔 1999년 3월에 설립된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이 있다. 이름에서 느낄 수 있듯 이 곳에 소장된 1천2백여점의 미술품은 모두 아시아 작가들의 것이다. 전 세계의 미술관 중에서 아시아의 현대 미술에 특화된 곳은 여기가 최초다.

근대 이후 해바라기처럼 서구의 스타일을 동경했던 일본이 90년대 들어 아시아적 가치와 입맛으로 눈길을 돌리면서 탄생한 기념비적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야스나가 고이치(安永幸一) 관장은 "미술관 건립은 예부터 일본에서 아시아 문화의 첫째 수용지였던 후쿠오카의 위상을 재확립하는 의미가 있다"면서 "컬렉션의 원칙도 서구의 가치나 시각과 구별되는, 아시아인의 독창적인 예술혼이 발휘된 작품들만 고르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그의 말처럼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 구석구석을 돌다 보면 뭐라 표현하긴 힘들어도 한눈에 아시아적 정체성을 알아챌 수 있는 작품들과 마주치게 된다. 인도네시아의 대표적 추상화가인 그레고리우스 시달타가 나무와 아크릴, 가죽을 이용해 만든 '우는 여신상(1977년작)'만 봐도 그렇다.

충분히 모던한 여신상이지만 얼굴과 손 모양은 인도네시아 전통 인형의 장식 스타일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거기다 여신의 발 밑에 피어오른 불길은 외세의 영향을, 여신의 눈물은 외세에 밀려 사라져가는 전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현했다는 게 작가의 말이다.

한국 작가 중 김환기·김창열·조덕현 등과 함께 이 미술관에 컬렉션된 여성 작가 윤석남의 '족보'(1993년작)도 눈에 띈다. 대형 족보를 배경으로 목 매달아 죽은 여인의 모습을 형상화했다. 작가는 족보로 상징되는 가부장적 가치관에 짓눌린 그 옛날 여인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요즘 한국 여성의 현실은 어떠하냐고 넌지시 묻고 있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중국 작가 슈빙은 첨단 기술을 활용한 프로젝트 '당신의 이름은?'(1999년작)을 통해 영어 알파벳과 한자의 만남을 시도한다.

관람객이 영어 알파벳으로 자신의 이름을 입력하면 한자체로 재구성된 묘한 문자가 컴퓨터 화면에 나타난다. 영락없이 한자어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별 알파벳의 절묘한 조합에 불과하다는 걸 깨닫곤 누구나 무릎을 치게 된다.

후쿠오카 아시아 미술관의 '아시아적' 예술에 대한 관심은 이 같은 컬렉션의 면면에만 그치는 게 아니다. 미술관 측은 3년마다 트리에날레를 개최해 젊은 아시아 예술가들의 작품 제작활동을 지원하고, 그 결과물을 미술관에 전시토록 한다. 미술을 통해 아시아의 화합과 소통에 기여하겠다는 취지다.

99년 개최된 1회 트리에날레 때 필리핀 작가 알프레도 아퀼리잔이 출품한 '존재와 부재'는 트리에날레의 취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이 곳에 체류하는 동안 후쿠오카 시민 5천여명으로부터 각자가 쓰던 칫솔을 수집해 대형 유리상자에 담아냄으로써 독특한 설치 미술을 탄생시켰다.

'후쿠오카와 아시아 사이의 간극을 좁혔다'는 평가와 함께 미술관 한편에 전시 중인 이 작품을 보면서 문득 '가장 아시아적인 예술이 가장 현대적일 수 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후쿠오카=신예리 기자
shin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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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권상호
지난 소식이지만 참고가 될듯하여 옮겨 놓는다.

'청년작가 韓.中.日 교류展' 일본 서예계에 신선한 충격 
 [중앙일보 1997-07-08 00:00]
 
지난 3월15일부터 4월13일까지 예술의전당 서예관에서 열린'청년작가 한.중.일 국제교류전'이 일본 서예계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요미우리(讀賣),마이니치(每日)신문등 일본의 유력지들이 일제히 문화면에서 이 행사 소식을 크게 보도했으며 유명한 서예평론가 다미야 분페이(田宮文平)는 오는 13일로 예정된 제49회 마이니치 서도전(書道展)기념강연에서“일본 서예계는 한국을 본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말을 할 예정이다.

일본최대 서예전문 잡지'스미(墨)'기자출신으로 현재 서예평론 활동을 펴고있는 다이몽 코지(大門孝司)는“지금의 일본 서예계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라며 이번 교류전을 평가했다.

일본 서예계가 한국에서 열린 국제서예전을 놓고 이처럼 떠들썩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다이몽씨는 서예전에'청년'과'국제'라는 두 요소를 과감히 도입한 한국의 유연성을 지적했다.

원로들이 판을 치는 일본의 서예계에서는 30,40대의 젊은 서예가들이 참가하는 국제전을 열 분위기가 못된다는 것. 패전후 재편된 일본 서예계는 닛텐(日展).마이니치텐(每日展).요미우리텐(讀賣展).산케이텐(産經展)등이 난립해있는 상태.각 서예전은 원로 심사위원 파벌에 따라 극히 폐쇄적으로 운용돼 폭넓은 신인등용을 가로막고 있다.

한 일본 서예관계자는 자국 서예계에 대해“60대도 어린이 취급을 받을 정도”라며 철저한 원로중심 체제를 비난했다.

이번'청년작가 한.중.일 국제교류전'만하더라도 30.40대 서예가를 중심으로 출품자를 선정해달라는 한국측의 요청을 받은 일본 서예계에서 선정작업에 애를 먹었다는 후문이다.

현대서(書)에 관한한 일본이 한국과 중국의 서예현대화에 상당한 역할을 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의 신세대 서(書)는 개방적인 자세때문에 급속히 현대화되고 있는 반면,일본의 신세대 서예가들은 원로들의 두터운 벽에 부딪힌 채 제자리 걸음만 계속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도쿄=김국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