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글쓰기(사회계열) -5월 12일. 과제 입니다.



 이주노동자에 대한 프랑스의 테러는 결코 남의 상황이 아니다.우리나라에 있는 가난한 이주자들의 集團居住地는 프랑스 사태의 폭발지 방리유와 닮았다. 이주노동자들의 問提와 더불어 자연히 불법체류자의 문제도 불거졌다.
 2003년 8월 정부는 '외국인근로자의고용등에관한법률'을 公布하면서 이법에 의해 23만여명의 불법체류 외국인에세 合法적인 체류 자격을 주기로 했다고 선심을 베푸는 듯이 발표했다. 그러나 이법은 합법화 신청을 할 수 있는 외국인의 체류기간을 까다롭게 規定하고 있을 뿐더러 그들이 取業 할 수 있는 업종도 嚴格하게 制限하였다. 간단히 말하면 한국인이 취업을 기피하는 거칠고 힘든 일자리만 외국인에게 許容하되, 그들이 이 땅에 영구히 정착할 꿈을 꾸지 못하도록 일정기간 부려먹고 내쫓겠다는 것이 법의 의도이다. 그 결과 일부는 자진출국 하거나 잠복하는 길을 택했고 일부는 스스로 목숨을 끊기까지 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내국인과 동등한 법적지위를 갖는 것이 옳은지 그른지, 또 그들의 存在가 우리 경제에 어떤 肯定的 역할 내지 不定的 효과를 발휘하는지를 되짚어 보아야 한다. 이러한 상황발생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대에 사람을 자연히 움직이게 하는 것은 돈이다. 따라서 돈벌이가 되는 곳으로 사람이 모여드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 점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농촌 붕괴와 중앙집중-도시 과밀화-은 국가 목표로서의 산업화 정책의 필연적인 결과이다. 시작과 다른 점이 있다면 힘들고 드센 일에 이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 하게 우리 민족도 굶주림을 벗어나기 위해 중국,러시아, 일본,미국등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현재 6백만명에 이르는 해외 한민족의 숫자는 유태인을 제외하면 인구 비율상 세계제일이라고 한다. 우리는 우리 이주민들의 학대와 차별이 담긴 미디어를 보면서 분노하고 무력한 국가를 질책하며 우리보다 경제적 강대국들에 대하여 반감을 표시한다. 최근 주로 동남아인들 40여만명이 한국으로 노동이주를 했다고 한다. 이 수치는 우리 민족의 해외이주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에게 외국인 노동자를 억압하고 추방할 권리가 있는가.
 어째서 우리는 人權保障을 외치며 자신에게는 관대하고 타인에게는 差別을 適用하려 하는가.

 게다가 험한 일에 종사하던 숙련된 외국인 노동자들이 출국하거나 잠복함으로써 중소기업 사업장은 지금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었다고 아우성이다.심지어 불법체류를 이유로 협박해 다른 사업장으로 勞動者를 빼돌리는 브로커도 성행하고 있다.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직장을 구하지 못한 수십만의 청년실업자들이 넘쳐나고 있는 상황이다. 대체 왜이런 모순된 현상이 발생하는가.
 
 이것은 우리나라에서 노동이 천시되고 차별 당하고 있음을 입증한다. 빈곤의 세습이 제도화되어가고 그것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敎育이라고 인식되는 현실에서 대졸 실업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모순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주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자신들의 나라사람도 한국인도 아닌 집시같은 존재라고 표현한다. 언제 돌아갈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빚도 갚아야 하고 고향에 돌아가서 살려면 더 많이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고용허가제 이후 매년 3만 명의 이주노동자가 유입되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불법체류자 신분을 택해 한국에 남는다. 과거 불법입국-불법체류의 경로에서 庫庸許可制 이후 합법입국-불법체류의 경로를 밟는 차이뿐이다. 게다가 여전히 입국-취업 브로커들의 이주노동자착취가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불법신분에도 한국에 있길 희망하는 노동자가 늘어난다는 점이다.

 최근 외국인노동자 관련단체들이 추진중인 귀환프로그램도 논란이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온 이유는 돈을 벌어가기 위해서 이다. 이들에게 고향에 가서 쓸 수 있는 기술를 가르친다는 것은 현실적용에 문제가 있다. 이들중 대다수는 고국에 돌아가서 적응하지 못하고 술집은 전전하거나 심지어 성매매업자가 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이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노동비자를 발급받아 자유롭게 입출국하는 것이다.
  
 根本的인 것은 지금 한국에서 일을 하며 犯罪者 취급을 받는 노동자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歸國을 도와 준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을 뿐더러 고용자, 노동자 모두에세 피해를 줄 뿐이며 노동착취의 결과를 낳을 뿐이다. 국민전체의 認識도 바뀌어야 한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백인에게 부러움을 표하고 유색인종을 무시하는 태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이주노동자들이 우리에게 유색 인종이듯이 우리도 백인들의 국가에선 우리가 무시하는 유색인종이 될 수 밖에 없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프랑스 사태는 우리나라에도 멀지 않은 이야기다. 우리나라 이주노동자의 역사가 벌써 20년이나 되었다. 20여년간 우리 사회는 안에서 곪고 있다. 이런 差別과 閉鎖가 계속 되는 한 언제도 그 분노는 비록, 아무도 원하지 않을지라도 폭발하게 마련일 것이다. 프랑스 사태에 이주노동자들은 '미래가 없는 사람들의 복수'라고 표현한다. 미래가 없기는 프랑스나 한국의 이주노동자나 마찬가지이다. 法務部의 한 관계자가 프랑스 사태를 한국과 연관짓는 건 매우 과도한 발상이라고 일축한 것과 비교하면 정책과 현실이 괴리가 얼마나 극심한지 알 수 있다. 지금 한국사회는 무방비 상태나 다름없다. 근본적인 해결책도 없고 마련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임시방편의 대안들은 오히려 社會의 불안을 초래한다. 인권탄압에 가까울 정도다. 이쯤 이정도면 가진자의 횡포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물론 몇몇 공존의 공간도 존재하지만 그 그늘엔 엄연히 시한폭탄 같은 갈등의 요소 또한 숨어있다. '團束과 追防'만을 외치는 한국의 국가권력이겐 이 시한 폭탄의 뇌관을 제거할 수 있는 아무런 장치가 없다.  다가오는 多人種 사회, 한국은 준비돼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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