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국어(상)4-(3) 글다듬기

 

● 다음 글 두 편을 읽은 뒤, 느끼고 생각한 바를 한 편의 글로 써 보자.

 

아버지의 손

 작품 개관 학습

 

아버지의 손은 유별나게 투박하고 힘이 셌다. 맨손으로 과일 나무를 전지(剪枝)하고, 아무리 고집센 당나귀도 아버지 손에 잡히면 안장을 써야만 했다. 자[尺]도 없이 판자 위에 정확한 사각형을 그렸다든지, 맨손으로 문에서 쇠 돌쩌귀를 뜯어 냈다는 등 아버지의 손에 얽힌 얘기가 많았다. <중 략 >

 재주가 많고 힘이 센 아버지의 손

 

아버지는 글을 몰랐다. 문맹자가 거의 없는 오늘날 아버지가 겪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중 략 >

 글을 몰라 고통을 당하신 아버지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심장병 때문에 여러 차례 입원도 했다. 늙은 의사 그린 씨가 매주 진찰을 하고 약을 주었다. 그 가운데는 심장 마비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면 얼른 삼키라는 니트로글리셀린 알약도 있었다. <중 략 >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전보를 받았다. 예의 그 심장마비 때문이라고 했다.

 홀로 지내시다 심장병으로 돌아가신 아버지

 

장례식엔 나 혼자 돌아와 참석했다. 의사 그린 씨가 유감을 표했다. 그는 좀 괴로워하고 있었다. 그 날도 그가 처방을 써 줘서 아버지가 약국에 가 약을 지으셨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지껏 그 약병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는 그 니트로글리셀린 약만 있었다면 아버지는 도움을 청할 때까지 버틸 수 있어 돌아가시지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의사 그린씨의 말

 

장례식이 시작되기 한 시간 전, 나는 아버지가 쓰러지셨다는 마당가 바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슬픔이 북받쳐올라 나는 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그 땅을 손바닥으로 훑어 보았다. 내 손가락에 딱딱한 게 닿았다. 반쯤 묻힌 벽돌이었다. 나는 무심코 그 벽돌을 들어 팽개쳤다. 그랬더니 그 아래 부드러운 땅 속에 콱 박혀 있는 약병이 보였다. 뚜껑이 꼭 잠긴 채 알약이 가득 들어 있는 플라스틱 병이었다. 약병을 집어드는 내 눈엔 아버지가 뚜껑을 열려고 애를 쓰다 못해 필사적으로 벽돌로 약병을 깨려고 했을 장면이 떠올랐다. 아버지의 크고 따뜻한 손이 죽음과의 싸움에선 그토록 맥없이 패배한 까닭을 알고 나니 분통이 터져 미칠 지경이었다. 약병 뚜껑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던 것이다.

― 어린이 손이 닿지 않게 되어 있는 안전 뚜껑.

    눌러서 돌리셔야 열립니다.

나중에 듣고 보니, 약사는 바로 그 날부터 새로운 안전병을 쓰기 시작했다는 것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근본적인 원인

 

나는 어리석은 짓인 줄 알면서도 시내로 나가 제일 좋은, 가죽 표지의 사전과 순금 펜 세트를 샀다. 그리고 아버지의 명복을 빌면서, 따뜻하고 충실했던 손, 그러나 글자를 못 썼던 그 손에 그것을 쥐어 드렸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과 안타까움

- 오천석(편), ‘사랑은 아름다워라’에서

 

육십에 배운 한글

 작품 개관 학습

 

안녕하세요? 저는 육십이 넘은 할머니 김덕례라고 합니다. 뒤늦게 ‘동부 밑거름 학교’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는 나무반 학생이지요. 한글을 배운 지 2년이 넘었는데도 아직도 어려운 받침이 있는 글자는 다 틀리니 이 노릇을 어쩌면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자기 소개 및 한글 깨치기의 어려움

 

우리 연배들은 세상이 어려울 때 태어나서 못 배우기도 했지만 내가 어렸을 때에는 여자애들이 글자를 배우면 팔자가 세진다고 아버님이 절대 못 배우게 했어요. 그것이 두고두고 내 평생에 한이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우리 집 양반도 이제껏 아무 불편 없이 잘 살았으면서 왜 새삼스럽게 그런 걸 배우려고 하냐며 제가 한글 공부하는 것을 탐탁치 않게 생각했습니다.

 글을 배울 수 없었던 이유

 

그 설움은 아무도 몰라요(진짜, 며느리도 몰라요). 혹시나 누가 글씨라도 쓰라고 할까 봐 사람 많이 모인 데는 가지 않았고 은행에 가서 돈 한 번 찾아보지 못했습니다. 한 마디로 눈 뜬 장님이었지요. 어떤 아줌마가 은행에 갈 때마다 일부러 손에 붕대를 감고 가서 다쳐서 글씨를 못 쓰는 것처럼 다른 사람에게 글씨 부탁을 했다는 피눈물 나는 그 얘기는 바로 제 심정과 똑같았지요. 그러나 지금 전 세상 사는 게 재미있고 행복합니다. 이제 거리를 다녀도 제가 아는 글자들이 많이 있으니 겁날 것이 없고 은행 가서 돈도 척척 찾습니다. 글을 안다는 게 이렇게 좋은 건지 몰랐습니다.

 문맹의 고통과 글을 아는 것의 즐거움

 

사실 그 동안 우리 집 양반한테랑 딸아이한테 ‘기역, 니은…….’ 정도는 배웠는데 하도 구박을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바람에 그만두고 말았지요. 그러다가 딸아이가 전봇대에 붙어 있던 한글 배울 학생 모집 포스터를 보고 적어 왔다며 전화 번호 하나를 제게 주더군요. 그게 바로 ‘동부 밑거름 학교’였어요. 당장에 적힌 대로 전화해서 등록하고는 때때로 손자를 데리고 다니면서도 하루도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본격적으로 글을 배우게 된 계기

 

아침부터 와서 월급 한 푼 안 받고 일자무식인 우리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는 선생님들이 고마워서라도 포기하지 않으렵니다. 열심히 해서 여든이 되든 아흔이 되든 검정 고시를 볼 생각입니다. 이제 다른  세상을 알게 되었고, 옆에서  도와 주는 고마운 분들이 계시는데 못 할 것 없지요. ‘배우는 고통은 잠깐이지만 못 배운 고통은 평생이다.’는 말이 있습니다. 한글을 모르고 사는 아주머니, 할머니들! 망설이지 말고 이 참에 용기내서 한글을 배워 보세요. 이 늙은이도 배우는데 다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새롭게 인생을 사십시다.

 앞으로의 포부, 글 배우기를 권유

- 김덕례, ‘육십에 배운 한글’

 

● 다음은 앞 글을 읽고 쓴 학생글이다. 읽고, 다음 물음에 답해 보자.

 

 작품 개관 학습

 

나는 글 쓰는 일을 별로 즐겨 하지 않는다. 학교에서도 작문 시간에 항상 졸기만 하고, 남의 것을 베껴 내기까지도 하는 정도다. 작문 시간이 너무 싫다. 그러나(→ 글을 쓰는 것은 즐겨하지 않으나) 글을 읽는 것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소설이나 만화를 보는 것은 나의 취미이다. 그러나(→ ①문맥상 적절치 않음 : 그런데) 오늘 ‘아버지의 손’과 ‘육십에 배운 한글’을 읽으면서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고 글자나 글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되었다. 서두 : 두 글을 읽고 새로운 생각을 함. (→ ②단락이 바뀜)첫째로, 말을 하는 것과 글을 아는 것이 이처럼 다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의 손’에 나오는 아버지와 ‘육십에 배운 한글’의 할머니를 보면, 자신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큰 어려움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생각을 말로 표현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으나) 글을 몰랐기 때문에 여러 가지 불편함을 겪었다. ‘아버지의 손’의 아버지는 글자를 몰라서 죽음에까지 이르렀다. 글 속의 아버지는 유난히 투박하고 힘센 손을 가지고 있었지만 약병 하나를 열 수 없었다. 그것은(→ 약병을 열 수 없었던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약병을 여는 안내문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육십에 배운 한글’의 할머니도 글자를 몰라 온갖 설움과 고통을 받았다. 본문 1 : 글자를 몰라서 당하는 고통

둘째로, 글자를 아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자를 알면 약병의 설명서, 반가운 편지, 거리의 간판을 읽을 수는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글을 읽을 수 있다고 해서) 내가 할머니처럼 감명 깊은 글을 쓸 수는 없다. 나는 글자를 잘 알지만 외할머니께 편지 한 장을 쓰는 일조차 잘 하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 때(→ ③앞의 문장이 모호해서 지시 내용이 분명하지 않음 :외할며니께 좋은 편지 쓰기를 실패한 때 ) 굉장히 멋진 글을 써서 외할머니를 기쁘게 해 드리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보니(→ 생각만 하다보니) 생각이 뒤섞여 갈피를 잡지 못한 듯하다. 할머니의 글을 읽어 보면, 이제까지 겪은 설움과 기쁨을 우리 앞에서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해하기 쉽고 자연스럽다). 그것은(→ 감명 깊은 글을 쓰는 것은) 할머니의 생각이 뚜렷했기 때문일 것이다.본문 2 : 감명 깊은 글은 뚜렷한 생각을 가지고 써야 함 (→ ④문단이 바뀜)나는 두 편의 글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글자 때문에 아버지를 여읜 아들의 슬픔과 눈 뜬 장님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살아오신 할머니의 설움에 마음이 아팠고, 뒤늦게나마 글을 깨쳐 자유로운 세상을 만난 할머니의 인간 승리에 손뼉을 치고 싶었다. 무엇보다도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의 소중함과 뚜렷한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⑤앞의 내용과 일관성이 없음 : 무엇보다도 글을 아는 것의 소중함과 뚜렷한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맺음말 : 생각을 글로 표현하는 일의 소중함과 뚜렷한 생각이 있어야 글을 쓸 수 있음을 깨달음


김희의 우리말 길잡이 참조

http://cafe.naver.com/heesaeng.cafe?iframe_url=/ArticleRead.nhn%3Farticleid=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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