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조신몽(調信夢) 설화

삼국유사 탑상(塔像) 제4

옛날 신라가 서울이었을 때, 세규사(世逵寺)의 장원(莊園)이 명주 날리군(捺李郡)에 있었는데, 본사에서 중 조신을 보내서 장원을 맡아 관리하게 했다. 조신이 장원에 와서 태수 김흔공(金昕公)의 딸을 좋아하고 아주 반했다. 여러번 낙산사 관음보살 앞에 가서 남몰래 그 여인과 살게 해 달라고 빌었다.

이로부터 몇 해 동안에 그 여인에게는 이미 배필이 생겼다. 그는 또 불당 앞에 가서 관음보살이 자기의 소원을 이루게 하지 않았다고 원망하며 날이 저물도록 슬피 울다가 그리운 생각에 지쳐 잠깐 잠이 들어 버렸다. 문득 꿈에 김씨 낭자가 기쁜 낯빛으로 문에 들어 와서 반가이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일찍이 스님을 잠깐 보고 알게 되어 마음 속으로 사랑하여 아직껏 잠시도 잊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의 명에 못이겨 억지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가기는 했으나, 이제라도 부부가 되고 싶어 이렇게 왔습니다."
이에 조신은 매우 기뻐 그와 함께 고향으로 돌아왔다. 부부가 되어 40년을 같이 살면서 자녀 다섯을 두었다. 그러나 그의 집은 다만 벽뿐이요, 조식(粗食)조차 내지 못하는 형편이었다. 마침내 형세가 가난에 견디다 못해 서로 이끌고 사방을 다니면서 입에 풀칠을 하기에 바빴다.

이렇게 10년 동안 초야로 두루 다니니 옷은 여러 조각으로 찢어져 몸도 가릴 수가 없었다. 마침 명주 해현령(蟹縣嶺)을 지날 때 15세 되는 큰 아이가 갑자기 굶어 죽으매 통곡하면서 길가에 묻었다. 남은 네 식구를 데리고 그들 내외는 우곡현에 이르러 길가에 모옥(茅屋)을 짓고 살았다. 이제 내외는 늙고 병들었다. 게다가 굶주려서 일어나지도 못하니, 10세 된 계집아이가 밥을 빌어다 먹는데, 다니다가 마을 개에 물렸다. 아픈 것을 부르짖으면서 앞에 와서 누웠으니 부모는 목이 메어 눈물을 몇 줄이고 흘렸다. 부인이 눈물을 씻더니 갑자기 말한다.

"내가 처음 그대를 만났을 때는 얼굴도 아름답고 나이도 젊었으며 입은 옷도 깨끗했었습니다. 한 가지 맛있는 음식도 그대와 나누어 먹었고, 옷 한 가지도 그대와 나누어 입어, 집을 나온 지 50년 동안에 정은 맺어져 친밀해졌고, 사랑도 굳게 얽혔으니 가위 두터운 인연이 해마다 더해지고 굶주림과 추위에도 날로 더욱 닥쳐오는데 남의 집 곁방살이나 하찮은 음식조차도 빌어서 얻을 수가 없게 되었으며, 수많은 문전에 걸식하는 부끄러움은 산더미보다 더 무겁습니다. 아이들이 추워하고 배고파해도 미처 돌봐주지 못하는 데 어느 겨를에 사랑에 있어 부부간의 애정을 즐길 수가 있겠습니까. 혈색 좋던 얼굴과 어여쁜 웃음도 풀위의 웃음처럼 사라져 버렸고, 향기롭던 가약도 바람에 나부끼는 버들가지입니다. 당신은 나 때문에 더 근심이 되고 있습니다. 가만히 옛날의 기쁨을 생각해 보건대 그것이 바로 우환의 발단이었습니다. 뭇새가 모여 있다가 함께 굶어 죽기보다는 차라리 짝없는 난새가 되어 거울을 향하여 짝을 부르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추우면버리고 더우면 친하고 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못할 일이지만, 행하고 그치고 하는 것은 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며, 헤어지고 만나고 하는 것도 운수가 있는 것입니다. 청컨대 제말을 따라 헤어지도록 하십시다."

조신을 이 말을 듣고 크게 기뻐 하였다. 막 헤어져 길을 떠나려 할 때 깨어보니 한낱 꿈이었다.* 아침이 되자 머리털이 하얗게 새어 있었다. 조신은 멍청히 넋이 나간 듯, 세상 일에 뜻이라곤 전혀 없었다.

* 주제 : 인생무상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

권상호
관련작품
1. 김시습 [금오신화] <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
洪生이 평양에 놀러가서 기자왕의 딸인 묘령의 여인과 시로 話答
"몇 천년 흥망성쇠 뜬구름 된단 말인가 .... 숲속에 누은 비석 푸른 이끼 끼었구나 ...... 알괘라 그 옛날이 한바탕 꿈이러니 ..... 만고에 영웅호걸 한 줌 진흙인걸

2. <춘향전>
백옥같은 내딸 춘향 華容身도 부득이 세월이 장차 늙어져 紅顔이 백수되면 時乎時乎 不再來라. 다시 젊든 못하나니 무슨 죄가 珍重하여 허송백년 하오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