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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비문학이란 무엇인가

구비문학이란 무엇인가(1)


1. 구비문학의 개념

구비문학(口碑文學; oral literature)은 곧 말로 된 문학이다. 그것은 글로 된 문학인 기록문학(記錄文學)과 상대되는 문학의 기본 영역이다. 구비문학 이외에 민속문학이라는 용어도 많이 쓰이는데, 전자가 문학의 측면을 중시한 개념이라면, 후자는 민속의 측면을 중시한 용어라 할 수 있다.
구비(口碑)는 대대로 전해오는 말이라는 뜻으로 구전(口傳)과 뜻이 통한다. 곧 구비문학은 구전문학과 유사한 용어인데, 현재 전자가 학술용어로 정착돼 있다. 어의(語義)에 집착할 경우 말로 된 문학 가운데도 대대로 전승돼 온 것만이 구비문학이 되는 셈이지만, 일시적․현재적으로 창조․향유되는 것들까지도 한데 포괄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할 수 있다.
특정의 말이 구비문학이 될 수 있으려면 문학으로서의 요건을 갖추어야 한다. 곧 미적으로 형상화되어 흥미와 감동을 줄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 과연 말로 된 문학이 온전한 문학성을 갖출 수 있는가 하는 논란이 한때 없지 않았으나, 이는 이미 해소된 지 오래다. 구비문학이 가져다주는 재미와 감동은, 그 편폭이 기록문학보다 더 넓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기록문학이 대중적으로 보편화되지 않았던 전통사회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2. 구비문학의 전반적 성격

현장의 문학

구비문학은 기록문학과 달리 현장에서 살아 숨쉬는 문학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얼굴을 맞대고 호흡을 나누는 바로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 자리는 노동의 현장일 수도 있고, 놀이의 현장일 수도 있으며, 의식(儀式)의 현장일 수도 있다. 삶의 현장에는 어느 곳에나 구비문학이 있어 생활의 일부를 이루었다.
현장의 문학인 구비문학은 현재적이고 일회적이다. 구비문학에는 어떤 고정된 텍스트가 없다. 그것은 가능태로서 잠재해 있다가 구체적 현장에서 현재적으로, 일회적으로 실현이 된다. 다시 말해, 구비문학 텍스트는 현장 속에서 그 성격이 규정된다. 누가 구연하고 누가 들으며 분위기가 어떠한가에 따라 텍스트의 성격이 크게 달라지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구비문학 분야에서는 현지조사에 입각한 연구가 강력히 요구되고 있다.
한편, 구비문학은 현장의 문학임으로 해서 흔히 복합예술(또는 종합예술)로서 존재한다. 언어 이외에 노래나 몸짓(간단한 동작, 춤, 연기, 노동, 의식 등)이 함께 결부되곤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복합예술적 성격은 구비문학을 더욱 생동감있게 만드는 역할을 한다. 
 
공동작의 문학 구비문학은 공동적으로 창조, 전승, 향유된다. 구비문학 텍스트는 어느 한 작가의 배타적 작업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익명의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전승에 참여하면서 그 형태나 내용을 변개시켜 나간다. 그 모든 사람이 구비문학의 실질적인 작가이며, 그리하여 구비문학은 공동작의 문학이다.
그러나 구비문학이 순전히 공동작인 것만은 아니다. 개별 구비문학 텍스트는 그 전승에 참여한 모든 이의 것인 동시에 그 텍스트를 구연한 특정 개인의 것이기도 하다. 공동의 것으로 전승돼 온 기존 요소에 구연자의 개성적 요소(개성적 요소는 뒤에 다시 공동의 것으로 포용된다)가 만나는 지점에서 개별 구비문학 자료의 성격이 결정된다. 결국, 구비문학은 엄밀히 말하여 공동작인 동시에 개인작인 문학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록문학에 비하여 공동의 요소가 훨씬 강하다는 점에서 공동작의 문학이라는 규정은 여전히 유효하다.
구비문학에 수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느낌이 한데 얽혀 있다는 것, 이는 절대 만만히 볼 일이 아니다. 일견 단순하고 유치해 보이는 구비문학 자료라 하더라도 그 이면을 세심히 살펴보면 깊고 다양한 의미가 층층이 새겨져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구비문학은 가까이 다가갈수록 경애감을 불러일으키는 연구대상이다. 

민중적․민족적 문학 
 
구비문학은 민중의 문학이다. 기록문학이 주로 지배층이나 지식인층에 의하여 독점돼 온 데 비하여, 구비문학은 민중 자신에 의하여 창조되고 향유돼 왔다. 그 속에는 민중의 삶의 표정이 절박하고 진실하게 담겨 있다. 물론 지배층이나 지식인층이 창조․향유한 구비문학도 있고 민중의식에 반하는 내용을 담은 구비문학도 적지 않지만, 그것은 민중적 구비문학이라는 큰 물줄기의 지류(枝流)에 지나지 않는다.
구비문학은 민족의 문학이다. 대다수 민족 구성원이 주체가 되어 가꾸어온 문학이 구비문학이다. 민족의 생활은, 그리고 정신은 구비문학 속에 온전하게 담겨 있다. 상층의 기록문학이 민족적 성격을 상실하고 변질될 때도 구비문학은 민중적․민족적 성격을 꿋꿋이 유지하면서 우리의 문학을, 삶을 지켜왔다. 오랜 세월 변함없이 구비문학은 건실한 민족문학의 기름진 토양이었다. 

* 현대 구비문학의 특성

위와 같은 특성을 지니고 있었던 우리의 구비문학은, 현대에 들어와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다. 구비문학의 기반이었던 농촌공동체가 붕괴되면서 전통적 구비문학 양식이 전면적으로 약화 내지 해체되기에 이르렀다.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현대의 구비문학은 구비문학 본연의 건강성과 주체성을 제대로 지켜내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이제 구비문학은 민중적이라는 수사 대신 대중적이라는 꼬리표를 붙이고 다녀야 할 처지가 되었다.
이와 같은 구비문학의 변화는 심각한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우리 문화의 건실한 기반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주체적이고 건강한 구비문학의 재창조는 우리에게 절박한 현실적 과제로 주어져 있다. 이 과제를 제대로 감당하기 위해서는 전통적 구비문학에 대한 폭넓은 관심과 깊은 이해가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리고 그 바탕 위에서 오늘날의 문제를 진지하게 점검해 나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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