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최고위과정

국어(상) 8-(1) 동국신속삼강행실도

(1) 동국신속삼강행실도

◇ 삼강(三綱)

  - 군위신강(君爲臣綱)

  - 부위자강(父爲子綱)

  - 부위부강(夫爲婦綱)

◇ 오륜(五倫)

  - 부자유친(父子有親)

  - 군신유의(君臣有義)

  - 부부유별(夫婦有別)

  - 장유유서(長幼有序)

  - 붕우유신(朋友有信)

◎ 작품 이해

○ 갈래 : 고전 수필, 전기문

○ 성격 : 교훈적, 예찬적, 서사적

○ 표기상 특징

  ① 방점이 사용되지 않음

  ② 어두 자음군의 사용(,  등)

  ③ 모음조화 현상의 약화

  ④ 끊어적기와 이어적기, 거듭적기가 함께 사용됨

  ⑤ ‘(아래 아)’의 사용

  ⑥ 각자병서(ㅃ, ㅆ 등)가 쓰임

  ⑦ ‘ㅣ’ 모음 앞에 ‘ㄷ, ㅌ’이 구개음화되지 않음

  ⑧ ‘’의 모멸


◆ 경명 충렬(敬命忠烈)

○ 주제 : 고경명의 충성심(忠)

○ 핵심어 : 튱분

○ 주제와 관련 한자

   ⇒ 충(忠)

      군신유의(君臣有義)

      갈충보국(竭忠報國)

      위국충절(爲國忠節)


○ 본문에 나타난 신기한 현상

  * 얼굴빛이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 긴 무지개가 무덤 옆에서 일어났다.

○ 교훈

  * 나라를 위해 충성하는 마을을 갖자.

  * 고경명의 충성심을 본받자.

 

<현대어 풀이>

  참의 고경명(高敬命)은 광주 사람이니 임진왜란에 의병을 일으켜서 금산의 왜적을 치다가 패하여 아들 인후와 막하에 있던 유팽로(柳彭老), 안영(安瑛과) 함께 죽었다. 장자인 종후가 원수를 갚으려 군을 일으켰다가 진주에서 죽었다. 처음에 경명의 주검을 거두어 금산 산중에 가만히 묻었다가 사십여 일이 지난 뒤에 처음으로 염습하니 얼굴빛이 살아 있는 사람 같았다. 안장하니 긴 무지개가 무덤 옆에서 일어나 빛이 특이하여 사람들이 이르되 충성과 의분에 감동한 바라 하였다. 소경 대왕께서 명하여 정문(旌門)을 세워 표창하시고 광주에 사당을 세워 이름을 포충(褒忠)이라 하시고 관원을 보내어 제사를 지내게 하시고 좌찬성의 직위를 내리셨다.


◆ 이보할지(李甫割指)

○ 주제 : 이보의 지극한 효성(孝誠)

○ 교훈

  * 간절한 효심은 어떤 병도 이길 수 있다.

  * 이보의 효심을 본받자.

  *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 효(孝)와 관련된 한자성어

⇒ 풍수지탄(風樹之嘆)

    망운지정(望雲之情) : 타향에서 고향의 부모를 그리워하는 마음

    혼정신성(昏定晨省) : 아침, 저녁으로 부모의 안부를 물어서 살핌

    부위자강(父爲子綱) : 아비는 자식의 본보기다. 

    호천망극(昊天罔極) : 부모의 은혜가 하늘처럼 크다.

    반포지효(反哺之孝) : 까마귀는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

    왕상이어(王祥鯉魚) : 한나라 왕상은 두꺼운 얼음장을 체온으로 녹여 잉어를 잡아 병상에 있는 계모 주씨에게 바쳤다

    맹종동순(孟宗冬筍) : 맹종은 어머니가 겨울에 죽순을 먹고 싶다고 하므로, 맹종은 대나무 밭으로 달려가 울면서 애원하니 눈물이 떨어진 자리에서 별안간 죽순이 솟아났다. 맹종은 그것을 잘라 가지고 어머니께 달려가 공양하였다 한다.


<현대어 풀이>

  이보(李甫)은 용안현 사람이니 그 아버지 태방(台芳)이 고치기 힘든 병[악질(惡疾)]을 얻어 죽게 되니 구완하여 치료해도 효험이 없어 밤낮으로 울고 있는데, 꿈에 어떤 중이 일러 말하되 산사람의 뼈를 먹으면 나을 수 있을 것이라 했다. 이보가 즉시 놀라서 깨어 손가락을 베어 약을 만들어 드리니 아버지의 병이 즉시 나았다.


◆ 최금타적(崔今打賊)

○ 주제 : 열녀 최금의 절개(烈, 節)

○ 교훈

   * 최금의 절개를 본받자.

   * 가족에 대한 최금의 사랑을 본받자.

○ 정절(貞節) 관련 한자

⇒ 불경이부(不更二夫)   출천열녀(出天烈女)

    일부종신(一夫終身)

    백주지조(栢舟之操) : 편백나무의 지조라는 뜻으로 과부의 굳은 정조, 곧 남편을 잃은 처가 정절을 지키는 것.

<현대어 풀이>

  양민 여자 최금(崔今)은 옥과현 사람이니 사노(私奴) 구억진(具億進)의 아내였다. 정유왜란에 그 지아비를 따라 두 아들을 거느리고 산중으로 왜적을 피하였는데, 왜적이 갑자기 이르러 그 지아비를 먼저 죽이고 또 두 아들을 죽이거늘 최금이 돌을 가지고 돌진하여 왜적 하나를 죽이고 살해당했다. 지금 임금께서 정문을 내리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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