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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 집은 창조의 공간

입력 : 2013-07-15 20:44:29 수정 : 2013-07-15 20:4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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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만들어 준 삶의 터전·휴식의 공간
한옥으로 대표되는 기와집·초가집
허물어도 고스란히 자연으로 돌아가
인간은 집이 만들어준 공간을 사용
우리말 ‘짓다’는 ‘무한 창조의 동사’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놀랍게도 딱 두 가지, ‘말’과 ‘짓’밖에 없다. 이를 유식하게 ‘언행(言行)’이라 하것다. 살다가 보면 생각이 말을 걸기도 하고, 말이 말을 걸기도 한다. 말과 대화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나간다면 주제넘은 말인가? 말에게 말을 걸며 세월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미와 의미에는 각각 맛을 뜻하는 ‘맛 미(味)’ 자가 들어있구나. 얼쑤. 주전부리 과자나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주신다면 감사할 뿐이다. 꾸우벅. 말이 넘친다 싶으면 일러 주세요. 말을 말면 되니까.^^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지. 혹시 누가 알리오. 그 속에서 앎의 맛과 삶의 멋까지 챙길 수 있을지…. 말은 흐르는 강이요, 글은 그 강물을 담는 바다이다. 시간과 공간이 떨어질 수 없듯이, 말과 글도 언제나 더불어 지낸다. 인간은 시간·공간에 붙어살고, 얼[정신]은 말·글에 붙어산다.

오늘은 ‘집’을 말거리로 삼아 볼까나. 점잖게 ‘집’을 화두로 삼자. 현대 도시인은 거의 집을 잃고 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분양받은 아파트가 방일 뿐이지, 어디 집이라 할 수 있남. 쪽방이라도 단층집이라면 하늘을 이고 대지를 밟으며 살아가는 건데…. 차라리 풍찬노숙이라면 신선처럼 보이기라도 하지…. 허걱.

우리의 전통 가옥, 즉 한옥으로 대표되는 집은 기와집과 초가집이라 하겠다. 기와집은 지체 높은 사람의 집이라 용마루와 추녀를 보면 하늘을 떠받드는 모양이고, 초가집은 서민의 집이라 지붕을 보면 대지를 가슴으로 안고 있는 형상이다. 절묘한 천지조화인지, 피치 못할 신분이 주는 숙명인지 모르겠다.

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움집을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면 땅 위로는 풀만 덩그렇게 보인다. 벼농사가 일반화되었을 때엔 아마 짚으로 지붕을 이었으리라. 볏짚·보릿짚·밀짚과 같이 ‘짚’은 비교적 긴 풀[초(草)]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된다. 고어에서는 ‘딮’으로 표기했다. 집터 가운데에는 돌을 둘러 만든 화덕자리가 있고 모서리에는 4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도리와 서까래로 지붕을 지탱한 후 짚을 그 위에 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움집의 재료로는 흙·돌·풀·나무가 전부라고 생각된다. 나중의 초가집과 기와집도 재료 면에서 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모두 친자연적인 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몽땅 허물어도 고스란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

‘집’이란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과 ‘불’, ‘옷’과 ‘밥’, ‘손’과 발‘, ‘너’와 ‘나’처럼 ‘집’도 1음절 단어인 걸 보면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옳지.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 ‘의식주’의 ‘주(住)→주택(住宅)’이 바로 집이로구나.

놀랍게도 황금집이든 나무집이든 돌집이든 흙집이든, 우리는 집의 형상 그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만들어 준 공간을 사용할 따름이다. 구태여 집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건축도 엄연한 조형예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다. 공간 활용을 위한 집이다. 집이 만들어 준 공간은 삶의 터전이자, 휴식의 공간이자, 창조의 공간이다.

‘집을 짓다’라는 말에서 보면 ‘짓다’는 ‘집’의 동사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짓다’의 출발은 ‘짓[몸놀림, 행위(行爲)]’에서 왔다고 본다. ‘손짓, 발짓, 눈짓, 몸짓’ 등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겠다. ‘행위’라고 말하면 점잖고, ‘짓’이라 말하면 버릇없게 보는 것은 언어사대주의의 결과이다. 모든 짓은 비언어적(非言語的) 표현으로 말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못된 짓, 미운 짓’처럼 나쁜 쪽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예쁜 짓, 고운 짓’처럼 아름답게도 사용하는 게 어떨까. ‘짓밟다, 짓이기다’에서의 ‘짓-’을 사전에서는 ‘마구’ ‘함부로’ ‘몹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풀이하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짓밟다’는 ‘짓을 밟다’에서, ‘짓이기다’는 ‘짓을 이기다’에서 온 말로 봐도 무관할 듯하다.

우리말 ‘짓다’라는 동사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매우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집을 짓다[세우다, 건축하다, build], 옷을 짓다[만들다, make], 밥을 짓다[cook], 글을 짓다[쓰다, 저술하다, write], 한숨을 짓다[sigh], 표정을 짓다[make a face], 약을 짓다[prepare medicine], 미소를 짓다[smile], 무리를 짓다[group], 농사를 짓다[경작하다, 재배하다, farm], 죄를 짓다[범하다, commit a crime], 매듭을 짓다[make a knot], 이름을 짓다[name], 짝을 짓다[pair up], 결말을 짓다[settle] 등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말의 ‘짓다’는 정녕 다양하게 사용된다. 영어의 ‘build’나 한자의 ‘건(建)’에 비하면 우리말 ‘짓다’는 삶의 전반에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단히 넓은 의미상의 네트워크를 가진 동사다. 그러므로 ‘짓다’라는 동사야말로 ‘무한 창조의 동사’로 볼 수 있다.

‘짓다’의 반대말은 ‘허물다’ ‘헐다’ ‘헐뜯다’ 등이 있는데, ‘빌 허(虛)’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허물어야 새로 지을 수 있는 법. 아무렴. 세상에 영원한 집은 없다. 집은 최대한 활용하고 난 뒤에 거침없이 허물거나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버리기 위하여 집을 짓는다고 하기엔 너무 서글프다.

예전에는 살기 위해 집을 지었지만, 요즈음에 팔기 위해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삶의 보금자리로서의 집이라기보다 투자 가치로서의 집을 생각하는 세태를 반영한 말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알맞은 크기로 짓고 그 안에서 먹고, 싸고, 일하고, 쉴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 도정(塗丁) 권상호(59) 문학박사는…?

경북대 사범대학과 경희대 대학원을 나와 신일고 국어교사·수원대 미술대학원 조형예술학과 서예 겸임교수·‘풍덩예술학교’ 교장으로 있다. 예술의 실천과 공유를 위하여 음악·무용 등과 함께 퍼포먼스를 하는 ‘라이브 서예’ 창시자로 유명하다. 최근 ‘유쾌한 먹탱이의 문자로 보는 세상’(푸른영토)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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