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사군자의 멋

수필 四君子의 멋

  <?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도정 권상호

서양에서는 紳士요, 동양에서는 君子라. 君子란 본래 학식과 덕행이 높은 사람을 가리킨다. 그래서 동양인이면 누구나 군자가 되기를 흠모해 왔고, 文人墨客들은 삶의 지표를 군자가 되는 것에 두고 있다.

그런데, 식물 중에서도 인간의 훌륭한 덕성을 지니고 있는 것들이 있는데, 자연을 무척 사랑했던 동양 사람들은 이들 식물에게조차 ‘君子’란 명칭을 붙이고, 이를 소재로 더러는 그림으로 그리고 때로는 시를 지어 감상하곤 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네 가지 곧 梅, 蘭, 菊, 竹을 특별히 ‘四君子’라 하여 文人과 高士들은 문학과 회화의 소재로 애호해 왔다. 그러던 것이 오늘날에는 書藝의 한 영역, 아니면 아예 藝術의 한 장르로서 자리잡고 있다.

梅花는 百花에 앞서 엄동에 홀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발산하므로 그 淸淨無垢(청정무구)한 품격이 세속에 물들지 않는다 하여 志操 있는 사람을 상징한다. 그리고 겨울에 피어 봄을 예고한다는 점에서 先驅者(선구자)를 상징하기도 한다. 봄이 왔기에 매화가 피는 게 아니라, 매화가 피었기에 봄이 온다고 믿고, 매화를 가리켜 報春[봄을 알림] 또는 春信[봄의 소식]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선인들의 詠物詩(영물시)를 통하여 매화의 본성을 알아본다.

 

백설이 자진 골에 구루미 머흐레라.

반가온 매화 어늬 곳에 픠엿고.

석양에 홀노 서 이셔 갈 곳 몰라 노라.

 

이 시조는 매화를 소재로 쓴 고려 유신 李穡(이색)의 시조인데, 여기의 매화는 志操人을 상징하고 있다.

 

지금 눈 내리고

매화 향기 홀로 아득하니

내 여기 가난한 노래의 씨를 뿌려라.

 

이 시는 李陸史의 ‘廣野(광야)’라는 시의 마지막부분인데 여기의 매화는 先驅者를 상징하고 있다.

 

蘭草는 깊은 산 그윽한 골짜기에 홀로 피어 있으며 香氣를 멀리 보내지만 자랑하지 않으니 隱逸志士(은일지사 - 숨어사는 절의 높은 선비), 또는 幽美人(유미인 - 뽐내지 않으면서 겸손하고 그윽한 미인)이라고 불리어졌다. 텅 빈 계곡에서 최고의 향기와 상서로운 빛을 발하고 있으니 어찌 墨客이 지나쳐버리겠는가? 거기에다가 뿌리조차 깨끗한 모래 틈에만 내리고 있으니 그 속마음은 얼마나 정결하랴.

 

빼어난 가는 잎새 굳은 듯 보드랍고,

자줏빛 굵은 대공 하얀 꽃이 벌고,

이슬은 구슬이 되어 마디마디 달렸다.

 

본디 그 마음은 깨끗함을 즐겨 하여,

淨(정)한 모래 틈에 뿌리를 서려 두고,

微塵(미진)도 가까이 않고 雨露(우로) 받아 사느니라.

 

이 두 수는 李秉岐(이병기)의 ‘蘭草’라는 연시조의 일부인데 난초의 귀한 모습에다 청정한 본성을 노래하고 있다.

 

菊花는 늦가을에 서리를 무릅쓰고 동편 울타리 밑에서 맑은 향기를 피우므로 傲霜孤節(오상고절 - 서리를 업신여기는 외로운 절개), 또는 東籬佳色(동리가색 - 동편 울타리 밑의 아름다운 빛)으로 불리고 있다. 봄바람에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무더운 여름에 의연히 일어나, 온갖 꽃들이 무서리에 다 지고 난 뒤에, 국화 홀로 늦가을의 향기를 토하니, 그 자태는 文人을 머물게 하고, 墨客의 붓을 꿈틀거리게 한다.

 

국화야 너는 어이 三月東風 다 보고

落木寒天에 네 홀로 픠엿다.

아마도 傲霜孤節은 너인가 노라.

 

이 시조는 조선 숙종 때 李鼎輔(이정보)의 節義歌인데, 국화를 의인화하여 단순히 풀로 보지 않고 높은 절개를 지닌 군자로 보고 있다.

 

대는 속은 비우고 줄기와 마디는 견고하며 四時로 푸른 잎을 지니고 있어서 虛心堅節(허심견절 - 마음을 비우고 절개를 굳힘) 또는 北窓閒友(북창한우 - 선비 방의 한가로운 동무)라 불린다.

봄철에 죽순이 부쩍 자라나 클 만큼 자라고, 餘生은 속을 비우고 걷과 마디를 단단히 하는 데에 온 정성을 쏟는다. 맑은 날엔 옥빛을 띠고, 바람 부는 날엔 노래하니 군자의 興이 이에 더할까? 森羅萬象은 모두 한 때가 있거늘 오직 대나무만은 4계절에 한 빛을 잃지 않고 한결같다. 문을 열자 바람은 대를 흔들고, 댓잎은 소리 내니 친구가 오는가 하고 의심했다는 선현의 이야기도 있다. 군자가 세속의 욕심을 버렸으니 속을 비운 대와 같고, 대는 언제나 한 빛으로 굽힐 줄 모르니 어지러운 세상의 忠臣烈士와 하나이다.

 

눈 마자 휘어진 대를 뉘라셔 굽다턴고.

구블 節이면 눈 속에 프를소냐?

아마도 歲寒孤節(세한고절)은 너인가 노라.

 

이 시조는 여말 선초의 元天錫의 시조로 대나무의 곧은 본성을 志士의 절개에 비유하고 있다.

봄에는 매화, 여름에는 난초, 가을에는 국화, 겨울에는 대나무, 이런 식으로 계절마다 그에 어울리는 君子를 대비시키고 그때그때의 흥취를 부렸다. 널찍한 화선지를 평면으로 생각지 않고 무한한 우주 공간으로 인식하여, 四君子를 칠 때에는 언제나 마음속에 이미 이루어진 君子의 형상을 입체적으로 표현하였다.

四君子를 觀照하다가 보면 저절로 筆興이 생기게 마련이고, 붓을 굴려서 화선지를 쓸다가 보면 자연히 詩情이 발동하게 되며, 다 쳐진 그림에다 단숨에 詩 한 수를 題하게 된다. 그럼에 四君子는 詩․書․畵 어느 것 하나도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으며, 이 세 가지를 두루 갖추어야 의연한 사군자를 친다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사군자를 접하려면 먼저 군자다운 德性을 기르고, 自然에 대한 애착을 가지며 특히 梅蘭菊竹에 대한 각별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소음 속에서 바쁘기만 한 현대인에겐 群衆을 벗어나 조용히 혼자서 자신을 돌아볼 줄 아는 여유가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붓을 잡을 수 있고 나아가 四君子를 칠 수 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밴드로 보내기
  • 네이버로 보내기
  • 텀블러로 보내기
  • 핀터레스트로 보내기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