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한국문학신문> 칼럼 66 - 희망영월 동행김립(希望寧越同行金笠)

희망영월 동행김립(希望寧越同行金笠)

 

도정 권상호

영월(寧越) - 그곳은 안식(安息)과 문화(文化)의 고장이다. 그곳에 가면 사람도 자연의 일부가 되고 만다. 이번의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 공연은 강원도 영월군의 ‘김삿갓문화제’에서 실시하기로 했다.

지난여름 아들이 입대한 이후 나도 나만의 공간인 부휴실(浮休室,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다가 거침없이 돌아와 쉬는 방)에서 박사논문을 쓴다는 빌미로 입소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영월군청에서 출연요청 전화가 왔다. 올해만은 두문불출(杜門不出)하기로 마음먹고 잘 실천해 왔는데, ‘김삿갓’이라는 말에 마음이 흔들리고 말았다. 몸이야 마음 따라가는 법. 23일의 행사이지만 하루만 비우기로 결심했다. 더구나 김삿갓은 평소에 흠앙(欽仰)하던 인물이 아니던가.

도우미도 경합(?) 끝에 마음 편한 분들로 선정했다. 왕복차표가 없는 인생길에 하루를 함께하기로 한 우리 일행은 모두 6()로 국제키와니스 한국지구 부총재인 김민섭 오마니 사장, 한국투자신탁 연도대상을 수상한 바 있는 이길영 IRS 대표, 세계적인 컨설팅 전문가 채길섭 서울테크 대표, 그리고 문화행사 마니아 서울 강북구청 문화체육과 서형남 팀장, 역시 건설관리과 주임이자 제자인 장태환 등이었다.

영월군 김삿갓면 김삿갓묘소까지는 생각보다 먼 길이었다. 서울에서 쉬지 않고 꼬박 4시간이나 액셀을 밟아야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행사 장소가 강원도의 최남단, 그것도 깊은 두메산골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풍 행락객들이 많은 10월의 주말에다 다양한 문화행사까지 겹쳐 있으니 일찌감치 예견된 교통체증(交通滯症)이었다. 요즈음은 모든 남성들이 따를 수밖에 없는 길도우미(내비게이션) 아가씨의 안내대로 가다가 보니,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운전병 출신의 김민섭 사장의 숨 막히는 곡예 운전으로 가까스로 행사 10분전에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허걱.

지방 길을 다닐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다. 강은 핏줄이요, 길은 신경조직이라고... 강이 막히면 어혈(瘀血)이 생기고, 길이 막히면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중에 ‘탈()나다’, ‘무탈()하길 바란다’에서 ‘(탈날 탈)’ 자를 보면 ‘탈났다’라는 말은 ‘두뇌 회전[]이 멈춘[]’ 상태임을 보여주고 있다. ~.

내리자마자 박선규 영월군수와 인사를 나누고 명함을 교환했다. 놀랍게도 영월의 모든 것은 영월군수의 명함에 있었다. 그렇구나. 영월군수는 영월의 이동 홍보 간판이었다.

자연 만족, 행복 만점인 영월은 볼거리가 많아서 즐겁다. 수려한 절경의 청령포는 오늘도 애환의 역사를 품에 안고 눈물을 삭이며 흐르고 있다. 자연이 그린 동양화 선돌과 4억년의 신비 고씨동굴은 절묘한 음양의 조화이고, 단종의 한과 넋이 서린 장릉의 솔숲은 지금도 읍하고 있는 신하처럼 지키고 서 있다. 강과 절벽의 조화를 이룬 동강 어라연은 어디메오, 신선이 노닐던 요선암과 요선정은 여기로다. 김삿갓 계곡을 오르다가 보면 계곡 물소리가 사죽(絲竹)이 되니, 그 반주에 노랫가락을 허공에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얼쑤.

“죽장에 삿갓 쓰고 방랑 삼천리~

문화 만족, 교육 만점인 영월은 박물관, 미술관의 도시이다. 비록 산골 도시이지만 배울 거리가 끝없이 펼쳐져 있다. 방랑시인 난고 김삿갓문학관, 조선민화박물관, 호안 다구박물관, 화석박물관, 세계민속악기박물관, 별마로천문대, 동강사진박물관, 단종역사관, 영월동굴생태관, 영월종교미술박물관 등 24개의 각종 박물관, 미술관 등이 산재해 있다.

오감 만족, 스릴 만점의 영월에는 즐길 거리가 많다. 단종문화제(4), 동강축제(7), 계곡축제(8), 옥수수축제(8), 소나무축제(8), 삼굿축제(9), 김삿갓문화제(9~10), 포도축제(9), 꼴두바우축제(9), 사계절 농촌체험(연중) 등의 다양한 잔치가 세속에 찌든 속인에게 유혹의 손짓을 보내고 있다. 영월은 이처럼 때로는 사랑방처럼, 때론 정원처럼, 때론 도서실처럼, 때론 처가처럼 편안하게 다가온다.

영월(寧越)의 ‘寧(편안할 녕)’ 자에는 편안함의 조건이 숨어있다. 진정한 편안함이란 ①집 밖에 나가도 집 안[]에 있는 듯해야 하고, ②마음[]에 거리낌이 없어야 하며, ③먹거리[]가 있어야 하고, ④무엇보다 몸이 건강해야[] 한다. 영월의 주거 여건과 딱 들어맞는 말이다. ‘越(넘을 월)’ 자는 월남(越南), 월동(越冬), 월장(越牆), 월척(越尺)이라고 할 때의 월() 자이다. 뛰어넘기 위해서는 도움닫기[]가 필요하다. 그런데 넘어야 할 대상은 무서운 도끼[]이다. 난관을 뛰어넘어야 월등(越等)해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다. 이는 마치 辛(매울 신)을 뚫고 나가야 幸(행복 행)을 만날 수 있는 이치와 같다. 영월에 접근하기란 그리 쉽지 않다. 하지만 어려운 고비를 넘어야 희망의 땅, 행복의 땅 - 영월에 다다를 수 있다.

일찍이 희망의 땅, 행복의 땅 - 영월을 찾은 이가 있으니, 바로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김삿갓]이었다.

김병연은 1807 6세의 어린 나이로 어머니의 손에 이끌려 고향인 평안도 선천을 뒤로하고 집을 떠났다. 1811(순조 11) 홍경래의 난 때,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조부 김익순(金益淳)이 홍경래에게 항복하여 연좌제의 의한 멸문(滅門)의 화를 입었기 때문이다.

가족이 찾아 나선 곳은 정감록에 십승지(十勝地)로 기록된, 바로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 어둔이었다. ‘김삿갓면’이란 명칭은 2009년에 ‘하동면’에서 바뀐 것이다. ‘어둔(於屯)’은 격암 남사고가 피난처로서는 천하에 둘도 없는 명당이라 일컬은 곳이다. 바로 김삿갓의 집터가 있고 ‘난고 김삿갓문학관’이 있는 곳이다. 워낙 옴팡진 골짜기인지라 ‘어둔하기’ 짝이 없다.

가족은 후에 사면(赦免)을 받고 김병연은 과거에 응시하여 김익순의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으로 답을 적어 급제하였다. 그러나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라는 사실을 알고 난 후에는 집을 버리고 20세 무렵부터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하늘을 볼 수 없는 죄인이라 생각하고 항상 큰 삿갓을 쓰고 다녔기에 이때부터 ‘김삿갓[金笠]’이라는 별명이 생겼다. 전국을 방랑하면서 지은 즉흥시 180여 수를 남겼는데 시 중에는 권력자와 부자를 풍자하고 조롱한 내용이 많아 ‘풍자와 해학의 시인’으로 불리고 있다. 그의 <김립시집(金笠詩集)>은 일본 등의 해외에서도 출판될 정도로 인기를 더하고 있다. 흔히 욕설시 등의 예를 들어 김삿갓의 시를 술안주 정도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의 시 중에는 정격의 훌륭한 시도 많이 남기고 있음을 헤아려야 한다.

김삿갓 묘에는 상석도 비석도 혼유석까지 모두 자연석으로 갖다 놓았다. 비문에는 ‘시선 난고 김병연지묘(詩仙蘭皐金炳淵之墓)’라고만 적혀 있다. 유랑 시인으로 전국을 떠돌아다니다가 57세에 전남 화순에서 객사한 그는 둘째 아들의 도움으로 이곳에 와 묻혀 있지만 올해로 탄생 205주년을 맞는 그는 이제 더 이상 외롭지 않다.

라이브 서예 내용으로 고심하다가 ‘희망영월 동행김립(希望寧越同行金笠)’이라 썼다. 희망의 영월에서 김삿갓과 동행하고 싶다는 내용이다. 실제로 참가자 수백 명이 김삿갓 복장으로 만추의 비경을 감상하며 쓰고 읊고 하는 행사가 있었다. 낙관은 ‘임진년 가을에 영월 지날 손이 우연히 김립 선생을 만나다.’라고 썼다.

이번 김삿갓 축제에서는 많은 문인들을 친견할 수 있었던 소중한 자리였다. 노벨문학상 후보였던 고은 시인, 김삿갓의 후손 김을동 국회의원, 전남 고흥 출신의 송수권 시인 - 그는 詩仙 김삿갓의 문학적 업적과 시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김삿갓문학상’ 수상자였다. 상금 천만원은 天滿원만큼이나 크게 보였다. 강희근, 김후란 시인도 오셨다. 적어도 영월에는 군수이하 군의회 의장, 문화원장 등 모두가 시인처럼 말씀을 잘 했다.

 

‘일일청한일일선(一日淸閑一日仙)’이란 말이 있다. 하루만이라도 생각이 맑고 몸이 한가하면 그날은 신선이라는 말이다. 행사를 마치고야 우리 일행은 비로소 신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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