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7- 단오와 여름맞이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7
단오와 여름맞이

무한한 우주 속의 작고 푸른 행성 지구, 그곳에는 밤낮이 갈마들며 하루를 만들고, 하루가 모여 달과 해를 만든다. 남반구 저편은 지금 겨울이라는데, 북반구에 사는 우리는 시방 한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지구는 우리의 고향인가 여행지인가. 더운 날씨에 식곤증은 쪽잠을 부르기도 하지만, 퀴지근한 땀 냄새는 철학하는 잠을 깨우기도 한다.
유월이 오지도 않았는데 학생들은 덥다며 에어컨을 틀어달라고 야단이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 뭐라고 둘러대야 했다.
“여름엔 열이 나야 온갖 열매와 알곡이 무르익는 법이란다. 열이 나지 않으면 여름이 아니지. 열나면 창문을 열면 되고... ‘여름’ ‘열나다’ ‘열매’ ‘열다(열매 맺다, 문을 열다)’ 등의 단어는 한 가족이란다.”
“선생님, 졌습니다. 더워도 참을 거예요.”
유월 초인데도 연일 기온이 30도 안팎을 오르내리고, 가뭄까지 더하니 더 덥게 느껴진다. 그러고 보니 금주에, 남자는 씨름으로 여자는 그네뛰기로 주체할 수 없는 기(氣)를 풀어야만 했던 명절, 단오가 지나갔다. 이번 단오는 오월 뒤에 윤오월이 뒤따르기 때문에 예년보다 빨리 치른 명절이었다.
음력으로 사·오·유월 석 달이 여름이다. 사월은 초여름으로 맹하(孟夏), 오월은 한여름으로 중하(仲夏), 유월은 늦여름으로 계하(季夏)라 한다. 흔히 ‘오뉴월 삼복더위’라 말하는데, 이는 연중 가장 더운 철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음력법으로 윤달은 3년 또는 2년마다 든다. 2012년에는 윤삼월, 2014년에는 윤구월, 2017년 금년에는 윤오월, 2020년에는 윤사월, 2023년에는 윤이월이 각각 들어있다.
초승달이 된 때부터 다음 초승달이 될 때까지, 또는 보름달이 된 때부터 다음 보름달이 될 때까지 약 29.5일 걸리는데 이를 삭망월(朔望月)이라 하고, 해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데 약 365.24일 걸리는데 이를 태양년(太陽年)이라 한다. 계산해 보면 음력 12달은, 양력 1년보다 약 11일이 짧다. 그래서 19태양년 동안 13개월의 윤년을 일곱 번 두는 ‘19년 7윤법(十九年七閏法)’을 사용하고 있다. 만약 윤달을 끼워 넣지 않으면, 인류는 오뉴월에 눈보라가 몰아치고 동지섣달에 에어컨을 켜야 하는 큰 혼란과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선조들은 음력 달력과 24절기 달력, 두 가지를 사용해 왔다. 음력의 부족함을 보충하기 위해 사용한 24절기력에 따르면 한 해의 시작인 세수(歲首)는 설날이 아니라 ‘입춘(立春)’이었다.
‘윤달 윤(閏)’은 ‘문 문(門)’ 안에 ‘임금 왕(王)’이 있는 모습이다. 옛날 제왕은 윤달이 든 해 정월 초하루에는 밖에 나가지 않고 침문 안에서 새 책력을 나눠주던 의식에서 생긴 글자이다. 어쨌든 예부터 윤달을 덤이나 보너스로 생각했기 때문에, 윤달을 가리켜 ‘공달’, ‘썩은 달’이라 부르기도 했다. 미신이지만 윤달에는 천지의 모든 신이 인간에 대해 감시를 하지 않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하여 윤달에는 무덤을 옮겨도 무탈하고, 만약 부모님의 수의를 만들어 두면 장수한다고 믿었다.
‘윤달 윤(閏)’ 자에 ‘덤’의 의미가 있으므로 윤택(潤澤)이라 할 때의 ‘젖을 윤(潤)’도 ‘물이 넘쳐 대지를 적시다’의 뜻이 된다. 물이 기운차게 흐르거나, 말을 거침없이 잘할 때, ‘도도(滔滔)하다’고 하는데, 여기의 ‘넘칠 도(滔)’ 자는 손(爪)으로 절구(臼) 안의 물을 끊임없이 퍼내는 모양이다.
전통적으로 하루의 열두 시와 일 년의 열두 달을 상징하는 십이지(十二支)가 있다. 십이지로 달을 계산하면 음력 사월(四月)은 사월(巳月)이고, 오월(五月)은 오월(午月)이다. 발음이 같으면 의미도 통한다고 보는 것이 문자 세상이다.
우리 선조는 홀수(양, 남자, 하늘)를 짝수(음, 여자, 땅)보다 더 좋아했다. 홀수는 ‘1, 3, 5, 7, 9’의 다섯 개가 있는데 홀수 두 개가 겹치는 날은 모두 명절로 삼고 다양한 행사를 즐겼다. 특히 일 년 중 양기가 가장 왕성할 때인 음력 오월 초닷새는 ‘오(五)’가 겹치므로 ‘중오절(重五節)’이라 칭하고 이날을 숭상해 왔다. 또 오(五)는 홀수의 중간, 곧 하늘의 중간이므로 단오를 달리 ‘천중가절(天中佳節)’ 또는 ‘천중절(天中節)’이라 부르며 다양한 세시풍속을 즐겼다.
그럼 단오(端午)라는 말 자체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일차적으로 단오의 단(端)은 ‘첫 번째’를 의미하고 오(午)는 ‘오(五)’와 통하므로, 단오는 ‘첫 번째 오일’, 곧 ‘초닷새’를 뜻한다. 그리고 단오(端午)의 단(端) 자는 식물이 생명력을 갖고 싹이 트고, 뿌리를 내리기 시작하는 모양인 ’시초 단(耑)’에서 왔다. 따라서 단(耑)에는 ‘시초’는 물론 ‘끝’의 의미도 들어있다. 단(端) 자는 단(耑)에 ‘설 립(立)’ 자가 붙어 있다. 따라서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몸을 꼿꼿하게 세운 사람의 모습에서 ‘단정(端正)하다’는 의미가 생성되고, 나아가 ‘바르다, 공정하다’ 등의 뜻도 추가된다. 예컨대 첨단(尖端)이란 단어도 ‘뾰족한 끝’의 의미에서 출발하여, ‘학문이나 유행의 맨 앞’의 뜻으로 확장된다.
단오(端午)라 하면 에로틱한 분위기의 그림인 신윤복의 ‘단오풍정’을 간과할 수 없다. 게다가 ‘오(午)’ 자가 본래 ‘절구(杵)’의 모양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면, 미역 감는 반라의 여인을 훔쳐보는 까까머리 중이 아니더라도 얼굴이 불콰해진다. 실제로 오월(午月) 오시(午時)의 여름 햇살은 여지없이 절구처럼 대지에 내리꽂힌다.
삼족오(三足烏)는 태양을 가리킨다. 왜냐하면 태양 속에 ‘세 발 가진 까마귀’가 산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오(五)는 양의 중심 수이고, 오(午)는 한여름이나 한낮의 햇살을 상징하므로 ‘오(烏)’ ‘오(五)’ ‘오(午)’는 발음도 같지만 의미도 서로 통한다.
여름을 뜻하는 ‘하(夏)’ 자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지금의 모양대로 보면 ‘머리 혈(頁)’의 생략형과 ‘뒤져 올 치(夂)’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날씨가 더워 모자도 벗고 맨발을 내놓은 모습’으로 보인다. 그러나 금문에서는 두 팔과 두 다리를 부각한 큰 사람의 형상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기우제를 지내고 나서 덩실덩실 춤추는 대제사장의 모습으로 추정하고 있다. 중국인들은 이 제사장의 모습을 한족(漢族)의 선조라 믿고, 자신들은 화하(華夏) 민족의 후예로 보고 있다. 여기에서 하(夏) 자가 ‘크다, 성대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고, 나아가 기우제가 주로 여름에 행해졌기 때문에 ‘여름’의 뜻으로 확장되었다.
우리 고어에서 ‘하다’는 ‘많다, 크다’의 뜻으로 사용되었는데, 이를 보면 적어도 우리말과 한자는 뿌리가 같다는 생각을 감출 수 없다. 큰 집도 ‘하(厦)’, 큰 강도 ‘하(河)’라 부르며, 꽃 중에서 큰 꽃인 연꽃도 ‘하(荷)’라 일컫는다.
온 천지가 녹색(綠色)으로 뒤덮여 있지만, 여름을 관장하는 신은 적제(赤帝)이다. 온 세상이 백색(白色)의 눈으로 뒤덮여 있지만, 겨울을 관장하는 신은 흑제(黑帝)이다. 푸른색은 붉은색이 다스리고, 흰색은 검은색이 다스린다는 사실이 오묘하다.
가뭄으로 온 나라가 열병을 앓고 있다. 열병에는 시원한 비와 바람이 제격이다. 바람은 작은 바람(소망)과 노력으로 만들 수 있지만 큰 비는 빌어야(기도해야) 한다. 비 우(雨)’ 자 소지(燒紙)라도 올리고, 두 손 비비며 단비 내리기를 빌어 볼까. 가뭄으로 애타는 농민의 땀을 씻어주려면 선선한 바람 이는 단오선(端午扇)이라도 선물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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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논술대회 참가자
1-1 강민수 김민재 남다니엘 임재원 전우혁 홍찬진 (6명)

2-1 남경태 오준혁 이강준 이재명
2-2 송현석 한동수
2-3 이준혁
2-4 윤준강(8명)

3-1 정민수 오윤식 최민혁 남주영 나성훈 공상윤 문지원 편도현 이화성 정용현 강필훈 전홍식 
3-3 이준희 윤준상 김강현 김성현 조병호 박윤규 소지환
3-4 이현승 김민서 (21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