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정동정

망종에 지구 환경 망보기

세계일보 문화기획- 문자로 보는 세상 58

망종에 지구 환경 망보기


자연은 너그럽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색깔을 달리하며 뭇 생명을 너그럽게 안아준다. 온갖 꽃 빛으로 볼만하던 봄이 꼬리를 감추자, 꽃 대신 다양한 열매로 장식하며 수줍은 듯 얼굴을 내밀던 여름이 이젠 제법 당당한 모습으로 아예 창틀에 올라앉았다. 더운 만큼 여유를 찾고 싶다. 여린 몸에 엷은 옷을 걸치고 여름과 함께 산자락을 걷는다. 여리꾼이 막걸리 한잔하고 가라며 손짓한다. 여름 안주로는 열무 냉국이 제격이다. 

4월 5일은 나무를 심는 식목일이었지만, 6월 5일은 절기로 볏모를 심는 ‘망종’이었다. 망종은 6월 5일이 아니면 6일이므로 ‘환경의 날’이 아니면 ‘현충일’과 겹친다. 올해의 망종은 지구를 되살리자는 ‘환경의 날’과 겹쳤다. 때마침 오늘은 현충일로 오랜 가뭄 끝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 하늘도 호국 영령을 위해 눈물로 참배를 드리나 보다. 

‘망종(芒種)’이란 입하(立夏), 소만(小滿) 다음에 오는 여름의 여섯 절기 중 세 번째 오는 절기를 이르는 말이다. ‘보리 망(芒)’에 ‘볍씨 종(種)’이 말해주듯 까끄라기 많은 보리는 베고, 볏모를 심는 절기를 뜻한다. 망(芒) 자의 본뜻은 ‘까끄라기’이지만 까끄라기가 많은 ‘보리나 밀’을 뜻하기도 한다. 밀도 보리의 일종으로 보고 특별히 소맥(小麥)이라 하지만, 범칭 ‘맥(麥)’으로 통한다. 

‘볍씨 종(種)’은 ‘벼 화(禾)’에 ‘무거울 중(重)’ 자를 쓰고 있는데, 이는 볍씨를 큰대야 물에 부어보고 바닥에 가라앉는 알짜 종자만으로 못자리를 만듦에서 생긴 글자이다. 희나리쌀이 들었거나 쭉정이는 물에 뜨기 때문에 건져 버린다.

여기서 ‘까끄라기 망(芒)’ 자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는 ‘망할 망(亡)’을 알아야 하고, ‘망할 망(亡)’ 자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칼 도(刀)’ 자부터 살펴야 한다.  

칼은 인류 문명의 발전에 있어 불만큼이나 유용한 도구였다. ‘칼 도(刀)’ 자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부엌칼이라기보다 원래는 일종의 병기(兵器)를 가리켰다. 도병(刀兵)이라 하면 ‘병기와 군사’를 가리킨다. 그런데 창(戈)처럼 찌르는 병기가 아니라 낫(鎌)처럼 당겨서 베는 병기였다. 이러한 의미는 벼를 자를 때 낫을 당겨서 베는 모습의 ‘날카로울 리(利)’ 자나, 칼의 안쪽에 날이 선 ‘칼날 인(刃)’ 자를 봐도 알 수 있다. 

도(刀)가 ‘돈’을 뜻하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의 명도전(明刀錢)이란 돈은 칼과 같은 모양에 명(明) 자가 새겨져서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말 ‘돈’도 ‘도(刀)’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종이를 발명하고 이를 칼로 잘라 사용하게 되고부터는 종이 100장을 가리키는 단위로도 쓰였다. /도/라는 발음은 칼질할 때 나는 소리의 의성이다. 

지금의 도(刀) 자는 손잡이가 사라진 모양이다. 바깥 획이 구부러진 것은 칼이 길쭉함을, 안쪽의 삐침은 날카로운 칼날을 상징한다. 한자에서 구부러진 획은 ‘길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한자를 전혀 모르는 외국인에게 ‘刀’ 자의 이미지를 말해 보라고 하면 ‘칼’이라 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글자를 두고 한국어를 아는 사람에게 물으면 ‘칼’의 ‘ㅋ’을 닮았다고는 한다. 물론 ‘칼’의 고어는 ‘갈’이었다. <훈민정음 해례본>에 ‘갈爲刀’라 적혀있다. 따라서 ‘갈’ 놓고 ‘ㄱ’ 자도 모른다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갑골문에서 ‘칼 도(刀)’ 자는 ‘사람 인(人)’과 비슷하게 생겼다. 놀랍게도 ‘칼날 인(刃)’ 자는 ‘사람 인(人)’과 발음까지 똑같다. 인간이 칼을 사용하는 모습은 ‘칼날 인(刃)’, 인간이 활을 당기는 모습은 ‘당길 인(引)’, 인간에게 요구되는 정신력은 ‘참을 인(忍)’, 인간 윤리의 이상은 ‘어질 인(仁)’으로, 모두 /인/이다.  

한자에서 도(刀, 刂)가 포함되어 있으면 대개 ‘칼날(刃), 약속의 부호를 새기다(契), 죽이다(刑), 자르다(刴), 날카롭다(利), 나누다(分), 쪼개다(剖), 벗기다(剝)’ 등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도(刀) 자의 활용 범위는 문명의 발달과 더불어 더욱 확대되어 물건을 베고(斬), 깎고(削), 끊고(切), 가르는(割) 공구 등으로도 쓰이고 있다. 

다음으로 ‘망할 망(亡)’ 자가 과연 ‘칼 도(刀)’에서 나왔는지 살펴보자.

‘망할 망(亡)’ 자의 갑골문은 무딘 칼날의 모양이다. ‘칼날 인(刃)’이 ‘칼 도(刀)’에 점을 찍어 칼날이 번쩍이는 모습을 나타낸 것이라면, ‘망할 망(亡)’ 자는 똑같은 ‘칼날 인(刃)’ 자의 점 대신에 획을 그어 무디어진 칼날을 상징한 것으로 본다. 이로부터 망(亡) 자에서 ‘베어내다, 깎아내다, 버리다’ 등의 뜻이 나오고, 의미가 더욱 확장되어 ‘없어지다, 도망치다, 죽다, 망하다’ 등의 의미도 탄생한다. 이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서슬 망(鋩)’ 자를 만들고, 뾰족한 칼끝은 ‘칼끝 봉(鋒)’으로 썼다.

결국 망(亡) 자가 들어간 모든 글자는 뜻이 서로 통한다. 이를테면, 마음을 버리면 ‘잊을 망(忘)’이고 여자를 버리면 ‘허망할 망(妄)’이다. 그물에 갇히면 망한 것으로 생각하여, 본래의 ‘그물 망(网)’에서 새로운 ‘그물 망(罔, 網)’ 자를 만들어낸다. 

나아가 한자도 소리글자로 발음이 같으면 뜻이 통한다. 예컨대, 알곡은 없고 잡풀만 우거진 모양은 ‘잡풀 우거질 망(茻)’, 이런 잡풀 속에서 개가 사냥감을 찾는 모습은 ‘우거질 망(莽)’이다. 알곡 중에서도 까끄라기가 많은 종자가 있으니 바로 보리이다. 여기에서 ‘까끄라기 망(芒)’에서 ‘보리’의 뜻이 나온다.

칼은 사용하기에 따라 생사가 갈린다. ‘도망(逃亡), 멸망(滅亡), 사망(死亡)’에는 ‘망할 망(亡)’ 자를 쓰지만, ‘소망(所望), 야망(野望), 희망(希望)’에는 ‘바랄 망(望)’ 자를 쓴다.

6월 5일을 ‘세계 환경의 날’로 정한 것은 육대주 오대양을 살리기 위해서였을까. 2017 세계환경의 날 주제는 ‘인간과 자연은 이어져 있다(Connecting People to Nature)’이다. 살면 함께 살고, 죽으면 함께 죽는다. 인간이 자연을 지배한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모순이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식하고, 자연과 더불어 공존할 방법을 찾아야 할 때이다.

환경의 날에 文 대통령은 환경정책에 대한 기본 기조를 바꾸려고 한다며, ‘4대강 보에 대한 개방조치를 취했고, 노후 석탄 화력발전소 가동 중단 등을 포함한 미세먼지 대책을 마련하는 한편, 탈 원전 기조를 확실히 하며 이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한 후 지구 환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지구온난화는 한갓 미신일 뿐인가 보다. 태평양의 섬나라가 물에 잠기든, 북극곰이 사라지든 그에게는 관심 밖이며, 자국의 이익만 챙기면 그만인가 보다. 

농부에게는 망종 절기가 가장 바쁘다. 밀보리 수확과 모내기를 동시에 해야 하기 때문이다. ‘보리 갈아 놓고 못 참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태산보다 높은 보릿고개라 하지만 익을 때까지 참아야 한다. 그렇다고 까끄라기 무서워 망설망설 망설이며 마냥 버려두었다간 도둑맞기에 십상이다. 

망종에 보리를 도둑맞을지언정 지구 환경을 도둑맞을 수는 없다. 헤쳐 나갈 길이 망망대해(茫茫大海)처럼 보일지라도 망연자실(茫然自失)하지 말고, 지구 환경을 ‘망(望)’보며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다 같이 망(亡)한다. 우두망찰하다가는 망신살(亡身煞)이 뻗히고 끝내 망징패조(亡徵敗兆) 곧, 망조(亡兆)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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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오제따
해박한 지식에 감탄할 뿐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