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우리 옛 책과 고인쇄

우리 옛 책과 고인쇄

제 33기 박물관 특설강좌 목요반
2009년 10월 22일(목) 15:00-16:50
옥영정(한국학중앙연구원)

목 차

1. 전통 인쇄기술의 여건

2. 인쇄방법에 의한 옛 책의 구분

1) 목판본과 활자본

2) 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

3) 목판본의 인출시기

3. 서지기술 요소와 시대별 특성

1) 간기, 서문, 발문

2) 판식

3) 장서인과 내사기

4) 종이


1. 전통 인쇄기술의 여건

우리나라 인쇄술의 시원을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불교의 전래이후 통일신라시대에 불경의 보급이 확산되는 과정에서 목판인쇄술이 이루어진 사실을 알 수 있다.

전통방식에 의한 책의 인쇄는 문자의 발달, 종이의 발명, 먹의 생산, 사회적 수요 등이 어우러져 이루어진 것이며 각각의 발달과정이 전통 인쇄기술의 방식을 이루어내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였다.

2. 인쇄방법에 의한 옛 책의 구분

옛 책을 형태적으로 판별하는데 있어서 해방이전 시기까지의 인쇄물을 그 인쇄방법에 따라 구분하여 보면, 크게 목판본과 활자본, 탁인본, 석인본 등으로 구분해 볼 수 있으며, 활자본은 그 재료에 따라 목활자본과 금속활자본으로 나뉘어지고 기타활자로 교니활자(膠泥活字), 도활자(陶活字), 포활자(匏活字) 등도 있다.

옛 책의 시대를 판별하는 데 있어서 그 형태적 특징은 책의 내용과 함께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사항이며 고서조사에 필수적으로 기록하여야할 사항이기도 하다.

우리 옛 책을 다루는데 있어서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것으로 인쇄방법에 의한 전적의 구분방법과 서지기술 요소로서 시대별 특성을 확인할 수 있는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겠다.

우리나라의 옛 책은 크게 사본과 간본으로 나눌 수 있고, 간본은 대부분 목판본과 활자본이다. 사본과 간본의 구분은 비교적 쉬운 편이지만 간본 중에 목판본과 활자본의 감별, 활자본 중에 금속활자본과 목활자본의 감별, 금속활자본의 활자, 목활자본의 활자 감별, 목판본의 초쇄본과 후쇄본 감별 및 원간본과 번각본의 감별 등은 쉽지 않다. 특히 금속활자본 상호간의 감별과 목활자본 상호간의 감별은 각 활자의 자형에 관한 정확한 지식을 필요로 한다.

1) 목판본과 활자본

인쇄방법에 의한 판본 감정에서 일차적으로 목판본과 활자본을 식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식별에 사용되는 구분 요소로 광곽(匡廓)의 경우 목판본은 사주(四周)가 이어져 있으며, 활자본은 판을 짜기 때문에 떨어져 있다.

변란(邊欄)은 목판본에는 도각(刀刻)의 흔적이 있으나 활자본은 거의 없으며, 변란과 계선(界線) 사이에도 목판본은 도각의 흔적이 있으나 활자본은 도각의 흔적은 없고 밀린 흔적이 있다.

목판본은 계선이 대부분 끊겨 있지만 활자본은 거의 없다.

목판본은 글자 줄이 대체로 바르지만 활자본은 바르지 않고 좌우로 비뚤하다.

자간(字間)에 있어서 목판본은 아랫글자의 윗부분이 윗글자의 아래획과 서로 엇물여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나 활자본은 윗글자와 아랫글자의 사이가 떨어져 있다. 하지만 초기 활자본의 경우에 한하여 서로 엇물린 현상이 나타나기도 한다.

목판본은 계선과 글자 사이가 닿거나 넘어서 있는 것도 많이 발견되나 활자본은 이들 사이가 떨어져 있다.

자체(字體)는 목판본의 경우 각수가 글자 하나하나를 새겨내기 때문에 글자체가 같지 않으나, 활자본은 동일한 주형으로 만든 글자는 같은 글자모양을 하고 있다.

자획(字劃)에 있어서도 목판본은 도각의 자국이 있고 날카로우며 나뭇결이 보이지만 활자본은 칼자국이 없고 주조한 다음 줄로 손질하기 때문에 글자가 완만하다.

목판본은 목판에 새긴 것이기 때문에 어미(魚尾)와 판심계선(版心界線)이 붙어있으나 활자본은 분리되었다.

목판본은 묵색이 진하고 고르지만 활자본은 짙은 곳과 여린 곳의 차이가 난다. 이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광곽(匡廓): 목판본은 사주(四周)가 붙어있고 활자본은 떨어져 있다.

변란(邊欄): 목판본은 도각(刀刻)의 흔적이 있으나 활자본은 거의 없다.

변란(邊欄)과 계선(界線) 사이: 목판본은 도각의 흔적이 있으나 활자본은 도각의 흔적은 없 고 밀린 흔적이 있다.

계선(界線): 목판본은 끊긴 곳이 많으나 활자본은 거의 없다.

자열(字列): 목판본은 자열이 대체로 바르지만 활자본은 비뚤다.

자간(字間): 목판본은 아랫글자의 획이 윗글자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으나 활자본은 떨어져 있다.

계선(界線)과 글자 사이: 목판본은 닿거나 넘어서기 쉬우나 활자본은 떨어져 있다.

자체(字體): 목판본은 글자체가 같지 않으나 활자본은 일정하다.

자획(字劃): 목판본은 도각의 자국이 있고 날카로우며 나뭇결이 보이지만 활자본은 완만하다.

어미(魚尾)와 판심계선(版心界線): 목판본은 붙어있는 경우가 많으나 활자본은 분리되었다.

묵색(墨色): 목판본은 묵색이 고르지만 활자본은 짙은 곳과 여린 곳의 차이가 난다.

2) 목활자와 금속활자의 감별

같은 활자본이지만 목활자본 금속활자본은 활자재료와 제작방식의 차이로 인하여 글자모양, 글자획, 마멸, 도각의 흔적 등에 차이가 나타난다. 이를 살펴보면

목활자는 사용한 나뭇결에 따라 또는 글자본을 써서 새겨 내기 때문에 각각 모양이 다르지만 금속활자는 일정한 글자본에 의해 주형을 만들어 주조하였기 때문에 글자 모양이 일정하다.

동일자(同一字)에 있어서 목활자는 글자를 써서 뒤집어 붙여서 새기기 때문에 굵기에 있어서 차이가 있으나 금속활자는 글자본에 의해 어미자를 만들어 필요한 수만큼 찍어 부어내기 때문에 글자획의 굵기가 고르고 같다.

목활자는 도각(刀刻)의 흔적으로 칼자국이 예리하게 나타나 있으나 금속활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목활자는 오래 사용하면 획이 닳아서 부분적으로 뗠어지거나 목리(木理)가 생기지만 금속활자는 획이 가늘어지더라도 떨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묵색(墨色)에 있어서도 목활자가 금속활자보다 진하고 농담의 차이도 간혹 나타난다.

이를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다.

자체(字體): 목활자는 나뭇결에 따라 고르지 않은데 금속활자는 일정하다.

동일자(同一字): 목활자는 같지 않으나 금속활자는 같다.

자획(字劃)의 굵기: 목활자는 고르지 않으나 금속활자는 고르고 정교하다.

도각(刀刻)의 흔적: 목활자는 도각의 흔적이 있으나 금속활자는 없다.

자획(字劃)의 완결(刓缺): 목활자는 닳은 흔적이 많으나 금속활자는 없다.

목리(木理): 목활자에는 나타나지만 금속활자에는 없다.

묵색(墨色): 목활자가 금속활자보다 진하고 농담의 차이도 간혹 나타난다.

서책에 관련된 용어는 다음 그림을 참고할 수 있다.

3) 목판본의 인출시기

목판본은 우리나라의 전적의 간본 중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목판본의 간행은 글씨를 잘 쓰는 사람으로 하여금 원고를 출판된 모양과 같도록 정서한 다음, 이를 나무판에 뒤집어 붙이고 앞면의 글자가 비치게 한 뒤 능숙한 각수로 하여금 정성껏 판을 새기게 하고 먹을 바르고 준비된 종이를 붙이고 문질러 찍어낸 것이다.

목판본은 원고가 일단 사본으로 형성된 다음에 간행된 것이므로 그 모체는 사본이다. 이러한 목판본이 생성되는 양상은 다음과 같이 크게 두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사본에서 목판본 인본으로 찍어내는 경우이다. 목판본을 만들기 위해서 최종적으로 만들어진 사본을 등재본(登梓本)이라고 하며 이 등재본은 그것을 목판에 붙이고 그 글자대로 새기기 때문에 목판을 새김과 동시에 사라지고 만다. 이렇게 사본을 가지고 처음으로 목판본을 새긴 것을 초각본(初刻本) 또는 초간본(初刊本)이라고 한다.

둘째, 활자본이나 목판본을 다시 목판본으로 새겨내는 경우로 흔히 복각본(覆刻本) 또는 번각본(飜刻本)이라 한다. 이같은 번각의 경우 등재본이 부정확하면 각수에 의해 여러 모양으로 달리 각판되기 때문에 판면은 조잡하고 내용의 변모를 초래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또한 번각본은 그것의 출판과정에서 종이를 아끼기 위해 내용을 빼버리기도 하고 멋대로 수미를 바꾸거나 또는 내용을 증손(增損)하는 경우가 있어 번각이 되풀이 될 수록 그 내용은 조잡하고 부정확해진다. 번각본은 이미 인쇄된 책을 해체하여 책장을 목판에 엎어 붙인 다음 그대로 새겨낸 것이므로 목판 인쇄기술 생성 이후 그것에 수반되어 고안된 방법이다.

우리나라 번각판본의 시원으로 간기가 명확한 것은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의 주자본 번각으로 고려 고종 26년(1239)에 주자본을 뒤집어 새겨 간행한 것이다. 또한 고려 우왕 3년(1377)에 청주목외 흥덕사에서 주자인시된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白雲和尙抄錄佛祖直指心體要節)』도 다음 해에 여주(驪州) 취암사(鷲巖寺)에서 번각 상재한 책이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어서 번각본 기원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우리나라의 전적은 유난히 번각본이 많은데 그것은 인쇄에 있어서 版下本을 다시 정서하지 않고 이미 간행된 책을 해책(解冊)하여 판목 위에 붙여 바로 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인본을 그대로 필사해서 다시 목판으로 인쇄하는 경우가 있으며 이는 간행하고자 하는 책의 원고가 이미 출판되어 있는 것을 다시 필사해서 목판본으로 만든 경우를 말한다.

한편 목판본이 번각본일 경우에는 저본과 비교할 때 다음과 같은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첫째, 변란을 중심으로 볼 때 번각본의 경우 저본보다 그 크기가 줄어드는 경우가 많다. 이는 저본의 경우 이미 판이 새겨지고 건조된 후 인출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크기가 고정된 반면 그를 바탕으로 번각한 경우 판이 완전히 마르지 않는 경우 시간의 경과에 따라 수분의 증발로 글자나 변란 등 모든 면에서 일정한 비율로 축소되어 잇는 경우를 볼 수 있다. 그 차이가 심할 때는 1cm이상의 차이도 있다.

둘째, 번각본은 저본에 비하여 획이 굵거나 가늘어지고 정교도는 휠씬 떨어져 거칠고 균형이 잡히지 못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조선 세종 때 중국 명 永樂時代에 만들어진 四書五經을 들여와 다시 번각한 바가 있다. 이 판본에 현존하는 자료들을 볼 때 대단히 정교하지만 이를 다시 재번각한 중종부터 선조 연간에 여러 곳에서 번각한 판본들은 대단히 획이 거칠고 굵어지고 있다.

셋째, 원본의 후쇄본일 경우에는 인출면이 초기의 것보다 후기에 찍은 것일수록 크기가 줄어드는 경향이 있다. 또 이때 판목 중 일부분의 분실이나 파손이 있을 경우 새롭게 새겨서 보충하는 補刻板이라 불리는 것도 있다. 그 예로는 『삼국유사(三國遺事)』, 『구급간이방(救急簡易方)』 등 많으며 고서의 간행시기를 추정할 때 주의 깊게 살펴야 한다. 특히 언해본의 경우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언어현상의 변화를 보이므로 방점과 󰡐△󰡑의 소멸과 같은 표기법의 차이 등을 유심히 살펴야 하고 『구황촬요(救荒撮要)』와 같이 각 지역에서 간행되어 지역별 언어현상이 반영되어 있는 것도 있으므로 완전한 번각이 아닌 개각의 현상도 주의하여야 한다.

고려시대 목판본은 초기에 판심이나 항간에 계선이 없었으나 후기에는 그것이 나타나고 판심의 형태 또한 시대에 따라 변화하여 왔다. 또한 방각본의 경우는 민간의 요구에 따라 영리적으로 출판되었으며 당시의 사회계층과 사회상을 잘 반영하고 있다. 더불어 활자인쇄가 발명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서적 출판을 주도하게 된 것은 필요한 경우 언제든지 원하는 부수만큼 찍어낼 수 있는 인출의 용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특성을 지닌 목판본의 발달과 변천은 형태적인 면과 사회적인 현상의 반영이라는 양면적인 상호관계를 지니고 있었다.

2. 서지기술 요소와 시대별 특성

서지기술의 요소는 크게 구분하여 볼 때 서명 저자사항, 판사항, 간행사항, 형태사항, 주기사항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전적의 조사에는 이러한 서지 기술요소의 올바른 기입이 매우 중요하며 각 기술요소의 주요 내용을 분석하여 간행시기를 추정하게된다. 즉 간기, 서문, 발문, 권책수, 필체, 피휘 등을 분석하여 시기를 추정하고, 저자, 필사자, 각수 및 판의 모양은 시대적 배경과 함께 직관법으로 식별하며, 종이, 먹, 나무 등은 과학적 분석방법으로 식별할 수 있다.

1) 간기(刊記), 서문(序文), 발문(跋文)

정확한 간행년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간기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간기의 표현방법은 가정(嘉靖), 만력(萬曆), 숭정(崇禎) 등의 중국연호와 갑자(甲子), 고갑자(古甲子), 불기(佛紀), 개국기원, 공자기원, 천도교기원 등이 있다.

간기가 있다하더라도 60갑자의 기록만 있는 경우 오류를 범할 수 있다. 이런 경우는 저자, 서문, 발문을 쓴 인물의 생존기간을 확인하여 해당 갑자와 일치하는 연도를 추정할 수 있다.

간기가 없는 전적은 서문과 발문을 분석하여 그 연대를 밝힐 수 있다. 서문, 발문을 쓰고 간행을 미루거나 지연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단순히 판단할 수는 없으며 해당 전적의 형태적 특징 등 여러 항목을 비교한 후에 판단하여야 한다.

2) 판식

전적의 판식은 시대에 따라 유행양식이 있었다. 어미(魚尾), 변란, 삽도 등의 변화가 그러한데, 특히 어미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하게 변화하였다. 중국의 남송말부터 명초까지 유행하던 일부 흑어미는 우리나라 려말선초의 간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흑구의 유무, 화문(花紋)의 갯수, 항자수(行字數) 등에서도 시대추정의 근거를 마련할 수 있다.

3) 장서인과 내사기(內賜記)

장서인은 서책소유자의 재산임을 표시하여 날인된 印章으로, 그 서책의 내력과 중요도를 판정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로 적용된다. 흩어져서 그 규모를 알 수 없는 특정 기관이나 개인의 장서는 해당 장서인이 날인된 서책의 수집, 조사를 통하여 이를 확인할 수 있으며 내용분석으로 당시 소장기관의 성격 또는 개인의 관심분야를 살필 수도 있다.

내사기는 임금의 명에 의해 책을 나누어 줄 때 쓰는 기록으로 관판본의 앞표지 이면에 기록하고 내사인기인 [宣賜之記], [奎章之寶], [同文之寶], [欽文之寶] 등이 본문 첫장의 상단에 날인되어 있다. 내사기가 기록되었다는 것은 내사기록보다 먼저 간행된 것이고 대체로 서책의 반사(頒賜)는 간행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바로 시행되는 것이 상례이므로 내사기의 기록년도로 해당 전적의 간행년도를 삼고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4) 종이

책지의 지질과 종류는 시대성과 지역성을 띠고 있기 때문에 이의 식별은 해당 전적이 어느 지역에서 언제 만들어 졌는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 특히 중간본이나 번각본과 같이 그 책의 내용과 형태의 분석만으로는 간행년대의 추정이 어려운 경우 책지의 식별은 매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종이의 시대성과 지역성을 밝히기 위해서는 종이에 나타난 발 무늬, 사용원료, 두께, 책지의 크기, 등을 모두 고려하여야 한다. 대체로 사회, 경제적으로 안정된 시기에는 발 무늬가 가늘고 간격도 좁고 정연하며 종이의 품질도 좋다. 우리나라에서는 세종연간에 만들어진 책지에 이러한 특징이 잘 나타난다. 고려말이나 세종이전 조선초기에 만들어진 책지에서는 가로발 무늬가 10mm당 4-5개정도 나타나는데 비해, 세종년간의 책지에서는 10mm당 7-9개정도로 발의 간격이 줄었다가 이후로 조금씩 그 간격이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발끈의 폭도 세종이전 조선초기의 평균 22mm에서 세종년간에는 평균 17mm로 줄어들었다가 그 후로 다시 늘어난다.

5) 기타

전적의 간행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또 다른 항목으로 각수(刻手), 능화문양, 배접지, 장서기 등이 있다.

각수는 주로 판심이나, 변란의 바깥에 일부 등장하며 이를 조사하면 그 간행시기와 진위여부를 판단하는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목판본은 책판을 새길 때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여러 명의 각수가 동원된다. 간년 추정이 안된 전적에서 그 책에 동원된 각수의 이름이 간년이 확인된 다른 책에 나타나는지 여부를 확인하면 간행시기를 추정할 수 있다. 그러나 복각본의 경우 원각자의 각수명을 그대로 새겨 넣는 경우도 있으므로 주의하여야 한다.

능화문양은 전적의 표지에 은은하게 보이는 문양으로 각종 무늬가 새겨진 능화판이라는 판목으로 누른 것이다. 표지를 두텁게 보강하기 위하여 속에 붙인 종이인 배접지를 서로 밀착시키고 표지를 여러 가지 문양으로 장식하는데 그 목적이 있었다. 능화문은 기하문, 식물문, 동물문 등 종류가 다양하며 시대와 능화판본의 소장자에 따라 그 문양이 달라서 판본의 시대와 간행처를 추정하는데 도움이 된다. 능화판의 제작시기를 판별할 방법으로는 각 목판에 새겨진 刊記나 소장처의 명문으로 파악하는 방법이 있고, 능화판으로 장식된 책의 간행연대와 비교하여 파악하는 방법이 있지만 목판에 간행관련 기록이 남아 있는 경우는 거의 드물고, 능화판과 일치하는 책표지 문양을 찾는데는 어려움이 따른다. 특히 책의 간행연대와 비교할 때에는 본래 서책의 표지인지의 여부를 확실하게 구분하여야 하는데 이는 古本의 경우 후에 새롭게 장정을 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배접지는 고서는 겉표지 속에 종이를 덧붙여서 두텁고 튼튼하게 한 종이이다. 배접지로는 한번 사용되었던 종이를 다시 활용한 경우가 많은데 사용용도에 따라 공문서를 쓴 경우, 공문서 이외의 필사한 자료를 쓴 경우, 동시대의 다른 인본(印本)을 쓴 경우, 그 책보다 전 시대의 인본을 쓴 경우, 그 책을 만들면서 잘못되었던 종이를 쓴 경우 등이 있다. 따라서 배접지는 그 책이 쓰여진 시대를 추정하는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며, 그 외에도 동시대 인본에 대한 간행사항, 앞서 찍은 활자본의 존재여부 등을 추정. 확인하는데 도움을 준다.

장서기는 책을 소장하고 있던 인물이나 기관이 남긴 기록으로 대체로 뒷면지의 여백에 쓰는 경우가 많다. 장서기에는 책을 소장하게 된 내력, 장서기를 쓴 일자, 소장자의 당호성명(堂號姓名)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으므로 소장자의 교우관계, 책의 인출.간행연도, 귀중서 추정에 근거가 된다.

* 조선의 주요 활자 일람

1) 금속활자

(1)癸未字 : 태종 3년(1403) 계미에 鑄造한 金屬活字

(2)庚子字 : 세종 2년(1420) 경자에 鑄造한 銅活字

(3)甲寅字 : 세종 16년(1434) 갑인에 鑄造한 銅活字

(4)丙辰字 : 세종 18년(1436) 병진에 鑄造한 大字 鉛活字

(5)庚午字 : 문종즉위년(1450) 경오에 鑄造한 銅活字

(6)乙亥字 : 세조원년(1455) 을해에 鑄造한 銅活字

(7)丁丑字 : 세조 3년(1457) 정축에 鑄造한 大字 銅活字

(8)乙酉字 : 세조 11년(1465) 을유에 鑄造한 銅活字

(9)甲辰字 : 성종 15년(1484) 갑진에 鑄造한 銅活字

(10)癸丑字 : 성종 24년(1493) 계축에 鑄造한 銅活字

(11)丙子字 : 중종 11년(1516) 병자에 鑄造한 銅活字

(12)癸酉字 : 선조 6년(1573) 계유에 鑄造한 銅活字

(13)庚辰字 : 선조 13년(1580) 경진에 鑄造한 銅活字

(14)戊午字 : 광해군 10년(1618) 무오에 鑄造한 銅活字

(15)顯宗實錄字 : 현종 9년(1668) 무신에 鑄造한 銅活字

(16)元宗字 : 숙종 19년(1693)에 원종의 글씨를 字本으로 제작한 활자

(17)芸閣(校書館)印書體字 : 경종초기(1723년 이전)에 鑄造한 철활자.**

(18)韓構字 : 숙종초기(1678년 이전)에 金錫冑의 四鑄를 숙종 21년(1695)에 정부가 구입한 활자

(19)再鑄韓構字(일명 壬寅字) : 정조 6년(1782) 임인에 한구자를 字本으로 在鑄한 활자

(20)三鑄韓構字 : 철종 9년(1858)에 三鑄한 銅活字

(21)壬辰字 : 영조 48년(1772) 임진에 鑄造한 五鑄 갑인 銅活字

(22)丁酉字 : 정조원년(1777) 정유에 六鑄 갑인 銅活字

(23)整理字(일명 乙卯자) : 정조 19년(1795) 을묘에 생생자를 字本으로 鑄造한 銅活字.**

(24)在鑄整理字 : 철종 9년(1858)에 在鑄한 정리 銅活字

(25)全史字 : 순조 22년(1822)부터 隆熙末까지 사용되던 銅活字

(26)新式鉛活字

2)木活字

(1)印經木活字 : 연산군 1-2년(1495-1496)에 인수, 정현대비가 印經을 목적으로 제작한 목활자

(2)訓練都監字 : 선조 32년(1599)경부터 인조때 선조실록에 사용되었던 목활자

(3)宣祖實錄字 : 선조 36-39년(1603-1606)에 인출된 선조실록에 사용되었던 목활자

(4)仁祖實錄字 : 효종 3년(1652)에 인출된 인조실록에 사용되었던 목활자

(5)孝宗實錄字 : 현종 1-2년(1660-1661)에 인출된 효종실록에 사용되었던 목활자

(6)芸閣筆書體字 : 숙종초기(1688년 이전)에 만든 활자

(7)生生字 : 정조 16년(1792)에 제작한 목활자

(8)箕營木活字 : 정조 16년(1792)에 홍양호가 私製한 목활자

(9)觀象監木活字 : 관상감에서 曆書를 인출하기 위해 만든 목활자

(10)聚珍字 : 순조 15년(1815)경의 목활자

(11)學部木活字 : 고종 32년(1895)이후 학부편집국에서 교과서를 인출하였던 목활자

3)傳陶活字 : 膠泥 또는 土活字版

4)傳瓢活字 : 바가지 활자

* 인쇄기술자의 기록

『慵齋叢話』卷七의 기록

나무에 글자를 새기는 자를 刻字匠, 활자를 주조해 내는 자를 鑄匠이라하고, 여러 활자를 나누어 藏櫃에 저장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자를 守藏이라하였으며 이는 나이 어린 公奴가 담당하였다. 원고인 書草를 불러서 맞추는 자를 唱准이라하였는데, 모두 문자를 해독할 수 있는 자가 맡았다. 守藏이 활자를 書草 위에 나열하면 이를 인판에 옮기는 것을 上板이라하였으며, 활자를 배열하고 고정할 때 대나무ㆍ나무ㆍ파지로 여백을 채워서 견고하게 하여 움직이지 않도록 하는 자를 均字匠, 글자가 심겨진 판을 인쇄하는 자를 印出匠이라하고 인쇄과정을 감독하는 監印官은 校書館員이 맡았다. 監校官은 따로 文臣을 명하여 맡게 하였다.

『大典後續錄』 卷3 禮典 雜令條.

監印官, 監校官, 唱准, 守藏, 均字匠에게 한 권당 한 자의 착오가 있으면 笞 30에 처하고 한 글자마다 한 等을 더하여 그 字數에 따라 治罪하고 인출장은 한 글자가 먹이 진하거나 희미한 것이 있을 때 같은 벌을 내리며, 官員은 5字 이상이 틀렸을 때 파직시키고 唱準이하 匠人은 苔를 때린 뒤에 50일의 근무일수를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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