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한국서예사

韓國書藝史(한국 서예사)<?x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1. 서예의 대상인 漢字

  서예는 한자를 대상으로 하여 시작되었다.

  한자 자체가 표음문자가 아닌 상형문자의 원형을 그대로 지녀 왔고, ··종이를 통하여 나타나는 글씨는 자체가 벌써 조형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러므로 한자 문화권 안에서는 일찍이 한자를 예술적 감상의 대상으로 삼아 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글이라는 고유문자가 있으나 15세기에 이르러서야 만들어졌으므로, 이전의 우리나라 서예사는 먼저 漢字를 생각하지 않을 없다.

  따라서 韓國書藝史는 漢字가 주요 대상이 된다.

 

2. 시대별 특징

  1)

   

  고구려는 백제와 신라에 비하여 중국의 문화를 가장 먼저 받아들였다.

  특히 고구려는 당시 중국의 여러 나라와 투쟁·교류하면서 정치적·문화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그러나 찬란했던 문화는 고구려 왕조가 멸망하면서 문화의 계승자가 없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왕의 계보를 전하는 정도에 불과하다.

  서예도 마찬가지로 소수의 금석 유물을 가지고 고구려 서예의 특징을 논할 수밖에 없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대표적인 금석문으로는 광개토호태왕비·모두루묘지명·평양성각석·중원고구려비 등을 있는데 이들의 서체를 살펴보면 예서·해서·행서 여러 가지의 서체가 나타나며 형태가 각기 다른 양상을 지니고 있어 고구려의 독특한 서예 문화를 고찰할 있다. 이것은 중국 서예를 받아들이되 고구려의 민족성에 맞게 고구려화 했다고 있는 것이다.

 

  광개토호태왕비 : 비는 장수왕 2(414) 세워진 것으로, 동양에서 가장 비석이다. 비는 우리나라의 역사적·서예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자료이며, 높이는 6.34m 되고 字의 크기는 12~15cm 사면에 차게 글씨를 새겼다. 비의 서체는 예서·행서·해서 등이 혼합된 독특한 서체로 전체적으로 웅장한 느낌과 기상을 느낄 있다. 이러한 서체는 중국에서도 없는 명품으로 고구려를 대표하는 碑이며, 고구려만의 독자적인 서체를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모두루묘지명 : 이것은 모두루의 묘지내 벽면에 墨書(먹으로 ) 것으로 800여자에 달하며 이중 판독할 있는 것은 250여자 정도로, 서체는 해서에 가까우나 행서의 기운도 짙다. 약동하는 기운이 넘치고 빠른 필획은 고구려인의 尙武的인 기질을 있다.

  평양성각석 : 평양시 일원에 있는 고구려 성벽에 새겨진 것으로 오늘날 있는 것은 3종류이다. 서체는 당시 공사를 맡은 관리가 다만 사무적으로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서체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분방한 필치로 힘찬 기상을 보여 준다. 이외에도 광개토호태왕우명 ·중원고구려비·농오리산성마애각석·덕흥리묘지명 등이 있으며, 이들 모두 고구려의 민족성과 기질을 나타내 주고 있는 금석 유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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