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교실

구당 여원구 선생 특강

구당 여원구 선생 특강 메모

- 2019. 10. 26.13:30 ~ 100분. 동방문화대학원대학교.

 

 

 

 

 

경기도 양평 출신. 몽양 여운형 선생도 양평 출신

구당 선생 집안은 양평에서 4백년 내려온 명문대가의 귀한 아드님. 4위 형님의 악상.

60년대 3대 표구사 – 문화사, 박당표구, 그리고?

서예의 요체는 호를 꼬이지 않게 쓰는 일.

배우는 순서 : 가로획, 세로획, 별 모양, 원. 그리고 서예 발달 순서대로 공부.

동방연서회 여초 선생 만남은 1962년의 일.

<광예주쌍집>에서 여초 선생의 서법의 기본 탄생.

해서가 중요한 이유 – 획의 명칭이 있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8법 중 적획, 책획의 어려움 – 여초 선생도 6개월간 고심하며 연습. 당시의 중국 서법가들은 절대 불가했다.

법첩의 점획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술 마실 때 보면 이쁜 여자도 돈 받으러 올 때 보면 안 이뻐. 

5년간 배워도 내 이름 석 자 쓰기도 어렵다. 그만큼 어려운 서예.

하나의 서체라도 잘 해서 나만의 특장을 살려야 한다.

그런데 여초 선생은 모든 서체에 달통했다. 한글까지도 고전에 달통.

일중 선생은 유석함 행서를 본받아 자기화. 

시암 선생은 전서만 달통.

여초 선생, 국전 비리를 보고 낙선전 열어 – 이때 낙선전 대상 작가가 남전 원중식

전각을 공부하려거든 이양빙의 철전을 반드시 익혀야. 1분필 글씨.

예서의 파임이 있는 가로획, 곧 평날은 2분필, 1분필, 3분필로 써야 한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전각에 관심 – 벽돌에도 새김.

‘대한민국’ 국쇄 제작에 참가 – 구당, 모암, 근원 – 구당 선생작으로 채택

오창석 석고문에 홀딱 반해. 오창석은 서령인사 초대회장, 전각의 세계화 이룩.

一品書(일품서) - 싱가폴, 산동 제남에서 전시. 홍콩, 마카오, 광주에서 비행기로 청도, 다시 제남으로... 동방초대전 전시 열려.

산동대 교수 왈, ‘남조선 서법가’라고 소개.

여초 선생 왈, ‘한자는 동방문자다’

중국에서 본 세필 본 - ‘세필을 모르고 글씨 쓴다 하지 말 것.’ ‘결구를 모르고 서예를 논하지 말라.’ 小楷(소해)를 잘 쓸 수 있어야 한다. 곧 사경을 잘 할 수 있어야 한다.

덕원미술관에서 세필 최초 전시. - 월전 선생의 칭찬.

부이사장 시절, 미협 공모전에 세필부 도입. 초대작가 10점 점수제 도입.

전서 – 석고문, 태산각석

예서 – 사신비(야무진 예서), 장천비, 예기비(처음에는 안 됨), 서협송 순으로 공부. 한예를 공부하되 조전비는 배우면 안 된다.

해서 – 고정비 먼저 배우고 장맹룡비 쓰도록. 북위묘지명, 정희하비. 

행서 – 집자성교서, 녹산사비(해행초가 있다)

초서 – 서보, 십칠첩이 기본이다.

월당, 청명 선생.

여초 선생 – 잘못하면 흐트러진다고 초서 회피. 그러나 만년에는 초서만. 그 속에 고박한 맛이 있다. 심은 전정우 초서도 고박한 맛.


서예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일회성 때문. 그러므로 오랜 수련이 필요.

역대 서예가 중에서 글과 글씨가 가장 많이 팔린 분, 이옹 존경. 


여초 선생이 이끈 동방연서회는 서법예술에 있어 棄邪反正을 발기 취지의 德目으로 다음과 같은 기치 아래 創會하였다.

法古遠俗 : 고전을 본받아 속된 것을 멀리한다.

筆正神旺 : 用筆의 정당함이 神韻을 왕성케 한다. 

積久生新 : 傳統의 공력이 오래될 때에 비로소 創新할 수 있다.


전통서법은 동양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음은 論語 述而篇에 나와 있다.

“도(道)에 뜻을 두며, 덕(德)을 굳게 지키며, 인(仁)에 의지하며, 예(藝)에 노닐어야 한다.(志於道하며 據於德하며 依於仁하며 游於藝니라)” 

또 周禮의 예禮, 악樂, 사射, 어御, 서書, 수數(六藝)를 보면 서법은 하나의 학문이 되었다. 학교에서 다양한 교양과목을 공부하듯이 이들을 두루 경험해 봄이 필요하다. 

동방예술은 시서화 삼대예술로 대표되는데 이 가운데 동방예술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은 서법예술이다. 왜냐하면 음악, 무용, 회화는 나라마다 있으나 서법은 동방에만 존재하는 특수한 예술이기 때문이다.

또한 서법은 浩然之氣를 추구해야 한다. 孟子 公孫丑上에 “감히 묻겠습니다. 선생님은 무엇(惡)에 장점이 있으십니까? 말하기를, 나는 말을 알며 나의 浩然之氣를 잘 기르노라.  敢問夫子惡乎長 曰 我知言,我善養吾浩然之氣. 여기서 言은 이론적 지식체계를 이른다. 호연지기란 이론적 지식체계를 행위로 옮기는 실천적인 행동체계를 말한다. 氣는 천지에 충만한 正義와 道德을 실천하는 힘이다. 이 호연지기론은 서법예술에 큰 영향을 미쳤는데, 이는 살아서 움직이는 활발한 글씨를 써야 된다는 논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생동하는 필력과 筆勢는 氣韻에서 유래한다. 이 기운은 血氣나 客氣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高度의 人格修養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正氣, 곧 浩然之氣이다.

또 서법은 誠意正心으로 이루어지는 바 誠意의 誠은 진실을, 意는 마음의 움직임을 의미한다. 正心은 마음을 七情의 어느 한 곳에 치우치지 않고 公明正大한 것이다. 곧, 성의정심은 내면적 실천이라 할 수 있다.

서법은 心學으로 性情을 수행하는 것이다. 서는 心劃, 곧 자기 마음을 그려내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공부를 하지 않고 글씨만 잘 쓰려고 해서는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柳公權의 ‘心正則筆正’도 正心을 강조한 말이다.

黃山谷은 東坡의 書法을 논하면서 ‘東坡簡札 字形溫潤 無一點俗氣’라 했다. 俗氣는 小人의 상징이고, 溫潤은 君子의 상징이다. 동파의 인품이 온윤하고 군자의 風範을 지닌 까닭에 그 서법이 한 점의 속기도 없는 雅逸한 경지에 도달한 것임을 격찬한 것이다. 동파는 승려가 거처하는 서실명인 ‘綠筠軒’이란 시에서 서법이 도덕적 인격에 있다고 보고 人品을 중시하여 서예가 자신이 君子다운 風貌와 品格을 지니기를 바라고 있다.


可使食無肉 가사식무육 밥 먹을 때에 고기가 없을지언정

不可居無竹 불가거무죽 사는 곳에 대는 없을 수 없네.

無肉令人瘦 무육영인수 고기가 없으면 사람을 수척하게 하고

無竹令人俗 무죽영인속 대가 없으면 사람을 속되게 하네.

人瘦尙可肥 인수상가비 사람이 수척하면 살찌게 할 수 있으나

士俗不可醫 사속불가의 선비가 속되면 의사도 고칠 수 없네.

*俗氣란 古典과 法書를 배우지 않고 뿌리 없는 글씨를 말함.


한편 서법은 주역에서 말하는 天人合一思想의 산물이라 보고 인간과 자연의 完全合一化  내지 一體化를 추구하는 것은 서법이 초보단계를 지나 높은 경지에 도달하면 인위적인 기교를 뛰어넘어 자연적인 無爲의 경지를 추구하게 된다. 즉 붓도 글씨도 모두 잊어버린 채 書筆相忘의 경지에서 마음은 至妙의 경지에 들고 필획은 無爲의 세계에서 契合되어야 하는 것이다. 서법은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道를 통달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현묘한 예술이다.


이상에서 보듯이 서법은 단순한 寫字예술, 技巧예술의 차원을 넘어 동방문화의 중요한 부분으로 수천 년의 역사와 전통을 지녀온 학문적 영역에서 학술적 가치, 철학적 기초, 이론적 체계에 관한 본격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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