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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모랄리스트 '프랑수아 드 라 로슈푸코(La Rochefoucauld)'의 명언

아무리 아름다운 얼굴이라도 마음이 상냥하고 맑을 때에는 아름답지만 그렇지 않을 때에는 추하다. 재능도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성품에 따라서 힘이 되기도 하고 악행의 도구가 되기도 된다. 자기자신을 아름답게 닦는 것이 우선이다.
 
 
어리석은 사람은 친절한 사람이 될 만한 인품을 갖추지 못한 것이 보통이다.
남에게 친절하면 할수록 자신의 인품을 높이게 된다.
 
 
침묵은 자신없는 인간의 방책이다. 자기 주장을 하라.
다만 신용할 수 없는 자를 향한 침묵은 가장 안전한 재치다.
 
 
자기 재능을 돋보이게 하지 않는 것이 진짜 재능이다.
 
 
하느님께서 이 자연 속에 각종 초목이 자라게 하였듯이 사람에게도 여러 가지 재능의 씨앗을 뿌려놓았다.
어떤 면에 훌륭한 재능이 보통의 경우에는 무능한 경우가 있다. 남을 모방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작든 크든 그대의 특성을 살리도록 하라.
 
 
남에게 칭찬을 받고 쑥스러워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남에게 악평을 받고 그것을 약으로 삼으려는 생각을 가진 정도의 현명한 사람은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남의 일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기 좋아한다.
그러나 자신의 일을 남이 말하는 것은 싫어하며 자신의 마음을 누가 쑤시는 것은 대단히 싫어한다.
 
 
친구나 은인의 결점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말하게 되었다면 더 이상 그들과의 우호관계를 지속할 수 없다.
 
 
아름다운 일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면 우리 자신은 그 아름다운 일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아름다움에 일부러 눈을 가리고 구석에 있는 조그만 흠만 찾는 것은 우리의 마음을 어두운 곳으로 몰아넣는 것이 된다.
 
 
자신에 대한 신뢰는 타인을 신뢰하는 중요한 요소다.
 
 
현명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가 이해할수 없는 일에 대해서는 무엇이든 헐뜯는다.
 
 
근본적으로 행복과 불행은 그 크기가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서 작은 것도 커지고 , 큰 것도 작아질 수 있다.
현명한 사람은 큰 불행도 작게 처리해 버린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조그마한 불행을 확대해서 스스로 고민 속에 빠진다.
 
 
남을 싫어하고 재미없게만 생각하는 사람은 남에게 싫음을 받고 재미없다고 대우받는 사람보다 오히려 더 불행하다.
인간의 모든 기쁨이나 즐거움은 다른 사람과 화합함으로써 생기는 것이다.
때문에 아무리 재물이 많고 똑똑하고 잘 생겼다 하더라도 무인도에 혼자 사는 것과 같다면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세상 사람들이 다 없어져도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대단히 잘못된 생각이다.
하물며 자기가 없으면 세상이 돌아가지 않는다고 믿는 사람은 답이 없다.
 
 
행운에 짓눌리지 않으려면 불운을 참아내는 것보다 더 큰 덕을 필요로 한다.
행복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악운에 처한 경우보다도 더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더 애를 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란 그리 힘드는 일이 아니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허영심 때문에 자기 앞에 있는 진짜 행복을 놓치는 수가 있다.
 
 
교태가 참된 사랑에 의해 무너지듯이 질투는 참된 우정에 의해 무너진다.
 
 
상대가 눈앞에 없으면 보통 사랑은 멀어지고 큰 사랑은 가중된다. 바람이 불면 촛불 은 꺼지고 화재는 더 불길이 센 것처럼.
 
 
참된 연애는 마치 유령과 같아서 그것이 어떤 것인지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정작 그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참된 용기는 목격자가 없을 때 발휘된다.
 
 
희망이 간혹 거짓말하는 것을 목격할 것이다. 그렇다고 희망을 허풍쟁이라고 매도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것은 사시사철 내내 우리를 즐거운 오솔길로 안내하며, 인생 끝날 때까지 동행하는 진실한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대화를 하는데 있어서 이해심이 많고 유쾌해 보이는 사람이 드문 이유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상대방의 이야기에 정확한 대답을 하기보다는 자기가 말하고자 마음먹고 있는 것에 생각이 기울여 있기 때문이다. 뛰어나게 수단이 좋은 사람일지라도 또 남다르게 현명한 사람일지라도 겨우 주의깊은 듯한 표정을 보이는 것으로 만족한다. 그런 사람의 눈과 마음속에는 그저 멍하니 상대방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정리하면서 한 순간이라도 빨리 자신의 이야기로 되돌리고 싶어하는 조바심이 엿보인다. 주의깊게 듣는 체하는 것이 남을 기쁘게 하거나 설득하는 데에는 하나의 방법일지 모르지만 졸렬한 방법이다. 대화를 주고받을 때 잘 듣고 잘 대답하는 것이 훌륭한 태도라는 것을 이런 사람들은 염두에 두지 않는다.


지혜로운 노인은 남은 시간을 개인적 구원의 시간으로 활용한다. 이 땅에서 아주 짧은 시간만이 남아 있기 때문에 더 나은 세계에 들어가고자 노력한다. 하지만 지혜롭지 못한 노인은 비참한 신세를 한탄할 뿐이다. 노쇠해진 몸을 핑계 삼아 조금이라도 휴식이 허락되면 그것을 행복으로 여긴다. 그들과 마찬가지로 기력을 잃었지만 그래도 그들보다는 지혜로운 본능 덕분에 무엇인가를 원하는 욕망의 고통에서 벗어난다. 결국 그들은 세상을 잊고, 세상도 그들을 잊는다. 은퇴와 더불어 허영심까지 줄어든다. 권태와 불확실과 무력감으로, 때로는 신앙심으로, 때로는 이성의 힘으로,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습관의 관성으로 그들은 따분하고 지루한 삶의 무게를 지탱해 나간다.


사물을 정확히 관찰하기 위해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듯이 교제에서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누구나 고유한 관점을 갖고 있고, 다른 사람도 그런 관점에서 자신을 보아 주길 원한다. 우리가 지나치게 가까이에서 관찰되는 것을 원치 않는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어떤 경우도 당신의 진실된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pp.222~223)

우리가 미덕이라 여기는 것은 우연이나 우리의 간계에서 비롯되는 온갖 행동과 이해관계의 집합체에 불과하다. 따라서 남자는 대담해서 언제나 용기 있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며 여자는 조용해서 항상 정숙하게 행동하는 것이 아니다.


정치가들은 사람의 눈을 현혹시키는 원대하고 혁혁한 공적을 위대한 계획의 산물처럼 꾸미지만 실제로는 성격과 열정이 빚어낸 결과일 뿐이다.


우리는 남의 불행을 보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


다른 사람을 속이기 위한 눈물이 때로는 우리 자신까지도 속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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