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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생활과 정신세계

선비의 생활과 정신세계

 

선비 어원 : 

모든 국어사전에서 ‘선비’를 순우리말로 보고 있다. 

<네이버국어사전>에서는 다음의 네 가지의 뜻으로 분석하고 있다. 

① 예전에, 학식은 있으나 벼슬하지 않은 사람을 이르던 말. 

② 학문을 닦는 사람을 예스럽게 이르는 말. 

③ 학식이 있고 행동과 예절이 바르며 의리와 원칙을 지키고 관직과 재물을 탐내지 않는 고결한 인품을 지닌 사람을 이르는 말. 

④품성이 얌전하기만 하고 현실에 어두운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고전에는 ‘션븨’ ‘션ᄇᆡ’ 등의 표기가 나타나고 있다.

이 말은 몽고어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한편 신라의 ‘花郞’에 대비되는 말로 고구려에서는 ‘仙人’ 또는 ‘先人’ 등의 기록이 보이는데, 이는 바로 ‘선비’라는 말의 음차라는 것이다.

士, 君子, 儒生과 비슷한 의미.

 

선비정신 :

한자로는 선비를 ‘士’라 한다. - 士論, 士氣衝天, 士官, 人士, 辯護士(判事, 檢事), 博士, 士禍

덕을 갖춘 지식인의 대명사 – 名分과 義理(志操와 節槪, 一以貫之) 중시, 德治로 國民 包容. 

學行一致 ↔ 巧言令色

先公後私, 薄己厚人, 抑强扶弱 → 그러기 위해서는 淸廉潔白(淸貧儉約), 禮義廉恥 필요

‘克己復禮’가 최종 목표 - ‘욕심을 누르고 예의범절을 따름’의 뜻이다. 이것이 共存共生의 길로 생각. 相互愛敬, 相互尊重, 克己復禮를 달성하면 天人合一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서 天은 절대자가 아니라 自然이다.

學藝一致(道藝一致) = 文史哲을 닦음으로 理性을 훈련 + 詩書畵를 닦음으로 感性 훈련을 체질화 한 자. 詩書禮樂 겸비. 和而不同. 

즉 이성과 감성의 조화를 이룬 인격체를 이상적 인간형으로 보았다. (義理와 人情의 조화 – 義理에 치우치면 삭막하고, 人情에 치우치면 부패하기 쉽다. 여기에서 中庸的 人性論이 나온다.)

文은 史와 哲을 담아내는 그릇이다. - 詩文은 載道之器(道文一致, 文字香書卷氣).

性理學을 공부하는 士의 단계에서는 修己를 하고, 大夫가 되어서는 治人의 단계로 나아간다. 곧, 修己治人(修己安人)을 바탕으로 學者官僚라 할 수 있는 士大夫가 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다.

四端七情, 理氣論, 性理學, 陽明學(知行合一), 考證學, 實學(實事求是, 利用厚生, 經世致用)

<小學> <擊蒙要訣> 등은 修身 교과서이다. 

 

* <擊蒙要訣>의 九容九思 : 

몸가짐에는 아홉 가지 태도(九容)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고, 배움에 나아가고 지혜를 더하는 데에는 아홉 가지 생각(九思)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

 

足容重 : 발을 가볍게 가져 경박하게 들어 올리거나 흔들지 않는다.

手容恭 : 손은 공손히 두어 만지작거리거나 함부로 내두르지 않는다.

目容端 : 눈동자를 단정히 하여 정면을 바로 보고 곁눈질하지 않는다.

口容止 : 말할 때와 먹을 때를 제하고는 입을 다물고 움직이지 않는다.

聲容靜 : 맑은 음성으로 말하며 재채기나 기침 등 잡소리를 내지 않는다.

頭容直 : 머리를 똑바로 하여 한편으로 기울이지 않는다.

氣容肅 : 호흡을 조절하여 늘 엄숙한 태도를 지니도록 한다.

立容德 : 항상 반듯하게 서며 기대지 말고 점잖은 태도를 가진다.

色容莊 : 낯빛을 늘 바로잡아 가지런히 하여 태만한 기색을 내지 않는다.

視思明 : 볼 때에는 분명한가를 생각한다.

聽思聰 : 들을 때에는 확실한가를 생각한다.

色思溫 : 얼굴빛은 온화한가를 생각한다.

貌思恭 : 태도는 공손한가를 생각한다.

言思忠 : 말은 충실한가를 생각한다.

事思敬 : 일은 신중한가를 생각한다.

疑思問 : 의심나면 물어볼 것을 생각한다.

忿思難 : 분이 날 때는 재난을 생각한다.

見利思義 : 이득을 보면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

 

<大學>의 八條目 - 格物(觀察實驗) 致知(硏究窮理) 誠意 正心 修身 齊家 治國 平天下 - 四書三經은 이의 실천 방법 해설서이고 <聖學輯要> 조선 性理學의 결정판이다. 

선비의 길은 科擧의 길, 아니면 山林處士였다. 

* 山林(학식과 덕이 높으나 벼슬을 하지 않고 시골에서 지내는 선비. 山長)

 

科擧는 小科(生員 進士), 大科(文科) → 官職(공적인 도의, 곧 公義 실현), 淸白吏(黃喜, 孟思誠, 柳寬)

蔭職(고려·조선 때, 과거에 의하지 않고 父祖의 공으로 얻어 하던 벼슬)

辭職, 流配 - 귀양(←歸鄕) 간 지방의 학문적, 문화적 활성화에 기여. 제자 양성. 저술 활동.

賜藥 - 毅然한 자세 유지. 入神의 경지.

 

溫故知新, 安分知足, 安貧樂道의 정신 

西勢東漸(서양이 동양을 지배한다는 뜻으로, 밀려드는 외세와 열강을 이르는 말)으로 나타난 대응책.

經經緯史의 정신(철학과 역사의 상호 보완) - 경전 곧 성리학에 대한 성찰과 역사 탐구. 眞善美와 忠孝와 같은 인류 보편적 진리는 아무리 세상이 바뀌어도 변함이 없지만 그것을 추구하는 방법은 시대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18세기 朴趾源의 法古創新論

19세기 東道西器論(동양의 도덕, 윤리, 지배질서를 그대로 유지한 채 서양의 발달한 기술, 기계를 받아들여 부국강병을 이룩한다는 사상) (동양의 道理와 서양의 과학기술. 동양의 정신문화를 그대로 계승하고 서양의 기술만 받아들이자는 구호) 

갑오경장 이후의 舊本新參의 논리 

日의 和魂洋才('화혼'이란 일본의 전통적 정신, '양재'란 서양의 기술)

淸의 中體西用(중국의 전통은 그대로 두고 서양의 과학기술만을 받아들이자는 주장)

 

선비의 공간 ‘사랑채’ – 독자적인 생활공간으로 학문을 닦고 벗과 교유할 수 있는 문화적 공간. 文房四友(詩書畵를 즐기기 위한 도구)와 白瓷.

 

선비의 정신과 삶은 정자 이름에 나타난다.

洗心臺: <역경> ‘繫辭上傳’에 ‘聖人以此洗心 退藏於密 吉凶與民同患’이라 했다.

‘성인이 이로써 마음을 씻고 물러가 은밀한 곳에 감추고, 吉凶을 백성과 함께 근심한다.’는 뜻이다. ‘此’는 ‘蓍(시초, 筮竹, 점대)와 卦와 六爻’ 등을 가리킨다.

1. 慶尙南道 山淸郡 矢川面 院里 德川書院에 세심정이라는 정자가 있다.

2. 京畿道 楊平郡 龍門面 德村里 山 7에 세심정이라 이름한 정자가 있다.(조선 중종, 명종 때의 학자이며 趙光祖의 수제자로 이름 높던 趙昱이 기묘사화의 여파로 이곳에 은거하며 제자들과 더불어 도학을 강론하던 유서 깊은 정자이다.)

3. 慶尙北道 安東市 豊川面 河回里 河回마을에서 강 건너 보이는 柳成龍의 玉淵書堂 경내에 洗心齋가 있다.

4. 慶尙北道 慶州市 安康邑 玉山里의 옥산서원 독락당 부근에는 퇴계 이황이 글씨를 새긴 洗心臺라는  암반이 있다.

5. 慶尙北道 龜尾市 吳太洞에도 세심당이 있다.

6. 慶尙北道 英陽郡 石保面 두들마을 언덕에 恒齋 李嵩逸(이숭일)이 새긴 세심대가 있다. ‘두들마을’은 ‘언덕 위에 있는 마을’의 뜻이다.

7. 세심과 비슷한 의미로 쓰인 澄心臺가 慶尙北道 慶州市 江東面 良洞里 양동마을에 있다. 그런데 ‘河回마을’은 제대로 된 호칭인데, ‘양동마을’은 ‘良洞’이라 하면 될 것을 왜 ‘마을’을 붙였는지 모르겠다. ‘妻家ㅅ집(처갓집)’처럼 언어 사용자의 습관에서 비롯된 것이라 본다.

 

樂飢臺: <詩經> ‘衡門’에 ‘衡門之下 可以棲遲 泌之洋洋 可以樂飢’라 했다.

‘누추한 집에서라도 한가로이 쉴 수 있고, 샘물 졸졸 흐르니 주림을 즐길 만하다.’의 뜻이다.

여기서 '衡門'이란 ‘두 개의 기둥에다 한 개의 횡목을 가로질러서 만든 허술한 大門’이라는 뜻으로, 隱者가 사는 곳을 이르는 말이다. 

* 衡(저울대 형; héng) : 네거리 한가운데에서 소가 뿔(角)로 접근하는 사람(大)을 막으며 ‘평평하게’ 대치하고 있는 모습이다. 여기에서 ‘평평하다’ ‘저울’의 의미가 나왔다.

한편 衡자는 ‘길을 갈 때 소가 사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뿔에 긴 나무를 묶어 놓았다’는 뜻으로 보고, ‘뿔막이 나무’의 뜻으로 쓰기 하였으며, 나중에 뿔에 매단 평평한 나무가 저울을 닮았다 하여 ‘저울’ ‘평평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보기도 한다. 

* 泌(샘물 흐르는 모양 비; bì)

따라서 '樂飢'란 먹는데 배부름을 구하지 않고 자연을 즐기는 隱者의 집이라는 뜻이다.

1. 慶尙北道 英陽郡 石保面 두들마을에 '樂飢臺'가 있다.

2. 全羅南道 莞島郡 甫吉面 芙黃里 芙蓉洞庭園에 '樂飢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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