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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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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집에서 집으로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집에서 집으로 인간은 왜 천년만년 살 것처럼 집에 집착할까 원시시대 우리 선조는 집을 지을 줄 모르고 동굴(洞窟)에서 공동생활을 했다. ‘마을 동(洞)’자는 바로 동굴에서 유래한다. 동(同)이 동굴의 모습이고, 살 수 있는 조건으로는 반드시 가까이에 물[?]이 있어야 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말 ‘동네’도 ‘동내’로 써야하지 않을까 한다. ‘미리내’는 하늘의 물임을 인정하고 ‘내’로 제대로 쓰고 있다.움집[?]에서 나가는 모습은 ‘날 출(出)’이고 똥통에 똥 싸고 가는 모습은 ‘갈 거(去)’이다. 하루 종일 나가 일하다가 제각기 돌아오는 모습이 ‘각각 각(各)’이다. 각각 각(各)자 위의 ‘뒤져 올 치(?)’는 걸어가는 발을 뜻하는 지(止, 之)를 뒤집은 모양으로 ‘돌아옴’을 뜻하고, 구(口)는 바로 동굴 입구이다. 손님이 각각 집으로 들어오는 모습은 ‘손 객(客)’이다.‘새집 소(巢)’자를 보면, 나무 위의 둥지[田] 안에서 새 새끼 세 마리[?]가 귀가 솔도록 소란(騷亂)하게 소리지르는 모습이 보인다. 어미가 새끼들을 위하여 부지런히 먹이를 물어 나르는 모습을 보면 ‘집’이란 발음은 ‘모일 집(集)’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여기에서 순우리말이든 한자든 음이 통하면 뜻도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모을 집(輯)’은 입과 귀를 수레에 모은다는 뜻에서 출발하여, 지금은 시문[口]을 엮은 책이나 음악[耳] 앨범 따위를 낼 때 그 발행 차례를 나타내는 단위로 사용하고 있다. ‘다산시문집(茶山詩文集)’의 ‘중수만일암기(重修挽日菴記)’에 이런 말이 나온다.‘十日而棄者 蠶之繭也. 六月而棄者 ?之?也. 一年而棄者 鵲之巢也. 然方其經營而結構也,/ 或抽腸爲絲, 或吐涎爲泥, 或拮据?租, 口?尾?而莫之知疲./ 人之見之者 無不淺其知而哀其生, 雖然紅亭翠閣 彈指灰塵, 吾人室屋之計 無以異是也’(열흘을 살다가 버리는 집은 누에고치고, 여섯 달을 살다가 버리는 집은 제비집이며, 한 해를 살다가 버리는 집은 까치집이다. 그 집을 지을 때에 누에는 창자에서 실을 뽑아내고, 제비는 침을 뱉어 진흙을 반죽하며, 까치는 열심히 풀이나 지푸라기를 물어 나르느라 입이 헐고 꼬리가 빠져도 지칠 줄을 모른다. 사람들은 이 같은 그들의 지혜를 어리석다 생각하고 그들의 삶을 안타깝게 여기게 마련이다. 그러나 붉은 정자와 푸른 누각도 잠깐 사이에 먼지가 끼어버리는 것이니, 우리 인간의 집 짓는 일도 이런 하찮은 짐승들과 다를 바가 없다).여기에서 세 가지 사실을 살필 수 있다. 곤충과 새들도 집을 짓는다는 사실, 집 짓는 일은 누구에게나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집을 사용한 후에는 미련 없이 버려야 한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천년만년 살 것처럼 영구적인 집을 추구한다. 태양신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던 피라미드,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던 성당과 교회, 만백성을 위엄으로 통치하고자 했던 궁궐 등, 더러는 몇백 년에 걸쳐 지은 집들도 있다.집을 짓고 사는 동물로는 곤충과 새와 인간이 있다. 왜 그들은 힘들여 집을 지을까. 인간이 집을 짓는 이유도 새와 곤충과 마찬가지일까. 우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새와 곤충의 집은 동종(同種) 간에 서로 비슷하지만, 인간의 집은 매우 다양하다는 사실이다. 엄밀히 말하면 모든 곤충은 캡슐형의 원룸 개인주택이고, 모든 새들은 단일가구주택이라 할 수 있다. 벌집과 개미집은 거대한 대단위 공동주택이다. 인간의 집은 움집·흙집·돌집·나무집·벽돌집·철근 콘크리트집·스틸하우스(steel house) 등과 같이 소재에 따라서 나누기도 하고, 단독주택(단독주택, 다중주택, 다가구주택, 공관)·공동주택(아파트, 연립주택, 다세대주택, 기숙사) 등과 같이 소유권 구분과 용도에 따라 나누기도 한다. 새와 곤충의 집은 그들의 종족 보존을 위한 본능에 의한 결과이지만, 인간의 집은 종족 보존은 물론 창조적 본능에서 만들어졌다. 다시 말해 인간의 창조적 본능이 위와 같은 다양한 집을 짓게 했다고 본다.개나 닭, 소나 말은 집을 짓지 않는다. 인간이 그들을 길들이기 위해 집을 지어줄 따름이다. 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착한 일을 한 것처럼 인간은 회심의 미소를 짓지만 그들의 처지에서 보면 종신형의 죄수처럼 평생 감옥에 갇혀 있어야 하는 끔찍한 일이다. 새는 하늘을 주무대로 살아가고 인간은 땅을 의지해 살아가지만, 곤충은 하늘과 땅을 두루 체험하며 살아간다. 애벌레 시절에는 땅에서, 나방 시절에는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하니 그런 관점에서는 곤충이 새와 인간을 앞선다고 볼 수 있겠다.그런데 인간은 왜 집을 짓는가. 그 이유를 건축연구자 서윤영씨는 ‘사람을 닮은 집, 세상을 담은 집’(서해문집)에서 ‘출산(出産)과 양육(養育)’ 때문으로 규정하고 있다. 맞는 말이다. 집은 투자의 대상, 돈벌이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권위나 위엄의 상징이 되어서도 안 된다. 인간 역시 출산과 양육을 위한 공간으로서의 집을 생각해야 한다. 인간은 임신기간이 유달리 길고 신생아가 미숙한 상태에서 태어나며 성인이 되기까지의 양육기간이 너무나 길기 때문에 집을 지을 수밖에 없다. 소나 말은 태어나자마자 벌떡 일어서서 걸을 수 있지만, 인간은 태어나서 1년은 지나야 겨우 일어설 수 있을 정도다.새와 곤충이 집을 짓는 이유도 출산과 양육 때문으로 보고 있다. 둘 다 하늘을 난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따라서 몸을 가볍게 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체외수정이 불가피하다. 따라서 수정란을 알의 형태로 배출하여 외부에서 부화한다고 볼 수 있다.이런 관점에서 볼 때 집은 몸 밖의 자궁(子宮)이라 할 수 있다. 인간 역시 미숙아 상태로 아이를 낳아 장기간 집중관리를 해야 하므로 새와 곤충처럼 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인간은 구석기시대부터 집을 짓기 시작했고, 지금도 형태는 다양해졌지만 집을 짓는 근본 이유는 마찬가지다. 따지고 보면 우리는 집에서 태어나 집에서 살다가 집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살아서는 양택(陽宅)에서 지내고, 죽어서는 음택(陰宅)에서 보낸다. 태어나기 전에도 어머니 몸속의 작은 우주인 자궁이란 궁궐에서 우주인처럼 유영하며 살았다. 자궁은 작지만 종족 보존을 위한 절대적인 집이다. 자궁이란 집에서 태어난 우리는 공부도 집에서 하고 결혼도 집에서 하며 애도 집에서 낳고 직장 생활도 대부분 집에서 하며 끝내 죽음도 집에서 맞이한다. 도정 권상호 라이브 서예가·수원대 겸임교수
20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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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변신의 귀재, 물의 가르침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6 변신의 귀재, 물의 가르침 - 물은 무던하고, 미는 미덥다 - 물의 고어는 ‘믈’이었다. ‘믈’ 자를 자모음으로 나누어볼 때, ‘ㅁ’은 ‘맑음’, ‘묽음’, ‘무던함’의 이미지, ‘ㅡ’는 ‘평평함’, ‘넓음’, ‘수평선’의 이미지, ‘ㄹ’은 ‘멀리, 길게, 흐름’의 이미지를 느낄 수 있다. 그렇다. 믈은 본성이 ‘믈어(물러, 연하여)’ 끊임없이 ‘믈러가고(물러가고), 뮈고(움직이고)’ 하니 참으로 ‘므던한(무던한)’ 물질이라 할 수 있다. 물은 맑고 넓으며, 멀리 흘러가므로 저편 끝에서는 결국 하늘과 맞닿게 된다. 장마가 지나고 입추, 말복마저 지나자 하늘도 드높아 간다. 풍성한 가을임에도 외롭게 느껴지는 건, 물은 맑아 더 깊어지고 하늘은 푸르러 더 높이 올라가므로 우리가 느끼는 공간의 순간 확장 탓이리라. ‘믈’은 ‘물’과 ‘미’의 두 형태로 변천하였다. 성질이 ‘물’처럼 너그럽고 수더분한 사람을 일러 ‘무던하다’고 말한다. 성품이 ‘미’처럼 믿음이 가는 사람을 일러 ‘미덥다’라고 칭송한다. ‘물’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하고 있지만 ‘미’는 그 용례가 흔하지 않다. ‘미’에 물의 의미가 있다는 사실은 ‘미나리, 미더덕, 미꾸라지, 미역감다’ 등의 낱말에서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미’는 ‘밑으로, 미끄러지듯, 미련 없이, 밀려’ 내려간다. 밤이면 ‘미르[龍]’가 사는 냇물, ‘미리내[銀河水]’가 떠 있고, 낮이면 작은 물방물이 만든 둥근 지게문, ‘므지게(무지개)’가 떠 있다. 여기서 잠깐, 어원으로 볼 때 ‘무지개’가 아니라 ‘무지게’로 써야 맞지 않은가? 최세진의 에서는 ‘龍’ 자를 ‘미르 룡’이라 적고 있고, 일본어에서는 물을 ‘みず(미즈)’라 하는데, 모두 ‘미’와 무관하지 않다. 불처럼 불뚝 불도저같이 도전하고 물처럼 물러나며 무던하게 살아가는 무리여, 어떠한 상황에서도 마음의 수평을 잃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어쩌다 찬스(chance, 기회)가 오면 불처럼 불쑥 챌린지(challenge, 도전)해야 하느니……. 놀라지 마시라, 키보드(자판)에 ‘c’ 키와 ‘ㅊ’ 키는 하나다. 또 하나, 올라가려는 불의 ‘ㅂ’ 키 바로 밑에 내려가려는 물의 ‘ㅁ’ 키가 있다는 사실도 재미있지 않은가. 가슴에 불씨를 살려야 한다. 씨가 없으면 그 불은 죽는다. 불쌍하다. 뭍과 물은 발음도 비슷하지만, 의미도 서로 통한다. 뭍은 물이 없으면 생명을 길러낼 수 없고, 물은 뭍이 없으면 의지할 곳이 없다. 그러고 보면 뭍과 물은 가족 단어로서 부부처럼 느껴진다. 창세기 기록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셋째 날에 천하의 물을 한 곳으로 모으고 묻혀있던 뭍을 드러내셨다는 기록이 보인다. 뭍[大地]은 땅이란 이름으로 바다 밖으로 나와 삼라만상을 안고, 이고, 지고 지내야 하므로 몸이 무겁기 그지없다. 그래서 뭍은 만물의 어머니[大母, The Great Mother]이고 물은 뭍의 피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원초적인 발음은 ‘입술소리’이다. 태어나서 입술을 떼는 순간 나오는 소리는 당연히 입술소리 /m/이다. 국어에서 입술소리는 ‘ㅁ’, ‘ㅂ’, ‘ㅃ’ ‘ㅍ’ 등이 있다. 입술소리에 해당하는 글자의 공통점은 입 모양을 가리키는 ‘ㅁ’을 포함하고 있다. 덴마크의 언어학자 오토 예스페르센은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 배우는 발음은 /m/이라 했다. ‘엄마’를 부르는 소리는 대부분의 언어에서 ‘mama, mam’ 등으로 비슷하고, 어머니를 가리키는 소리도 라틴어 ‘mater’, 영어 ‘mother’, 독어 ‘mutter’, 불어 ‘mère’, 스페인어 ‘madre’ 등과 같이 모두 /m/ 발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쯤에서 뭍 이야기는 묻어두고 물에 관한 관심만 가지기로 한다. 물의 변신은 다양하다. 차갑게 하면 얼음이 되고, 열을 더하면 수증기가 된다. 자신의 모습을 액체에서 고체와 기체로 자유롭게 바꾼다. 고체가 되면서 부피가 늘어나는 것도 물만이 갖는 고유한 특성이라 할 수 있다. 어디 그뿐인가? 물은 구름으로 안개로, 눈으로 서리로, 비로 우박으로, 폭포로 무지개로, 이슬로 서리로, 지하수로 샘으로, 시내로 강으로, 호수로 바다로, 파도로 해일로, 음료수로 차로, 간장으로 피[血]로, 빙하로 빙산으로, 물휴지는 물론 시위 진압용 물대포로까지 진화했다. 정녕 신출귀몰(神出鬼沒)하는 물의 변신은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쉿, 물귀신 나타날라. 물에 몰(沒: 빠질 몰)하지 않으려면 말조심해야지. 물은 왜 변신을 잘하는가? 물과 관련한 형용사들을 뒤적여보면 짐작이 간다. ‘무르고, 묽고, 맑아서’ 변신이 쉽다. 으뜸가는 선(善)의 표본으로 물을 만나고, 물로부터 상선약수(上善若水)의 가르침을 받은 물의 제자, 노자(老子). 그는 ‘약지승강 유지승강(弱之勝强柔之勝剛; 약함이 강함을 이기고, 부드러움이 딱딱함을 이긴다)’라는 기막힌 이치를 깨닫게 된다. 인간도 딱딱하면 부러지기 쉽다. 물처럼 유순할 때 현실에 잘 적응하며, 나아가 창조적 아이디어를 캐낼 수 있다. 물은 부드럽기 때문에 지표는 물론 천상, 지하에서도 절대 자유를 구가하고 있다. 물에는 일곱 가지의 덕이 있다. 이른바 수유칠덕(水有七德). 1 물은 겸손하다. 그래서 언제나 낮은 데로 흐른다. 2 물은 적응을 안다. 그래서 물은 자신이 놓이는 그릇의 모양을 불평 없이 따른다. 3 물은 조화를 안다. 그래서 골짜기에서는 노래하고 허공에선 춤춘다. 4 물은 공생(共生)을 안다. 그래서 장애물을 만나면 피하여 돌아간다. 5 물은 지혜롭다. 그래서 늘 평형을 유지하고자 한다. 6 물은 청결하다. 그래서 갈증을 없애주고 생명을 길러낸다. 7 물은 성실하다. 그래서 끊임없이 움직이며 자기를 정화한다. 그러나 물이 언제나 겸손하고 착한 것만은 아니다. 폭포나 홍수처럼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기도 하고, 영하의 낮은 온도에서는 오히려 몸을 부풀리며 바위를 깨뜨리기도 한다. 물이 한번 용트림하면 바위를 부수고 산을 무너뜨릴 수도 있다. 물이 냉정하기로 말하면 섭씨 100도에서 단 1도만 부족하여도 끓지 않는다. 이를 보면 우리 인간도 마지막 1%의 노력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깨달아야 한다. 오호라. 산을 오름에 정상에서 한 키만 모자라도 산의 한쪽 면밖에 보지 못하는 이치와 같구나.
2013.09.03

구리당 - 주련을 위한 대련 글씨 작업

구리당 주련 추가 제작   莫謂當年學日多(막위당년학일다) 그 나이에 배울 날이 많다고 이르지 말라 無情歲月若流波(무정세월약류파) 무정한 세월은 흐르는 물결과도 같나니. - 격언록   隨人作計終後人(수인작계종후인) 남을 따라 계획하면 끝내는 남에게 뒤지고 自成一家始逼眞(자성일가시핍진) 스스로 일가를 이루어야 비로소 거짓이 없다 - 黃庭堅(황정견: 宋, 1045~1105)   書山有路勤爲徑(서산유로근위경) 책이라는 산에는 길이 있으니 근면이 지름길이고 學海無涯苦作舟(학해무애고작주) 배움의 바다는 끝이 없으니 고행으로 배를 삼는다. - 韓愈(한유) 당송 8대가의 한 사람(768~824)   春風大雅能容物(춘풍대아능용물) 시는 봄바람과 같아 모든 사물을 받아들이고 秋水文章不染塵(추수문장불염진) 문장은 맑은 가을물 같아 티끌에 물들지 않네. - 金正喜(김정희) 조선 후기 대 서예가(1786~1856)   一勤天下無難事(일근천하무난사) 한결같이 부지런하면 세상에 어지러운 것이 없고 百忍堂中有泰和(백인당중유태화) 백번 참으면 집안에는 큰 평화가 있으리라. - 격언록
201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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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강을 버리면 바다를 얻는다

강을 버리면 바다를 얻는다 먹구름이 하늘을 뒤덮자 비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한다. 순간 하늘이 진동한다. 천동(天動)이다. 천동이 커지면 ‘천둥’이렷다. 밖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둥지둥하기 시작한다. 허공이 움직이니 허동(虛動)이요 땅이 움직이니 지동(地動)이다. 허동지동이 커지면 ‘허둥지둥’이렷다. 갑자기 쏟아지는 빗물을 피하느라 부랴부랴 처마 밑으로 숨는 아이들. 빗물 속에서도 동작만큼은 불처럼 빠르다. 부랴부랴, 불이야 불이야! 빗물은 곧게 떨어져서 휘면서 흐른다. 직선으로 내려와 곡선을 그리며 흘러간다. 내 삶도 전반은 꼿꼿해지고자 꼬장부렸으나 후반은 유연하게 둥글둥글 살아야지. 비가 물인 것은 ‘비 우(雨)’자를 보면 알 수 있다. 우(雨)자 속에는 ‘물 수(水)’가 숨어있다. 우(雨)자를 분석해보면 하늘을 뜻하는 일(一)이 있고, 일정한 지역을 뜻하는 경(冂)이 있다. 비는 ‘우’에서 내려오니 /우(雨)/라고 발음하는가? 중국 발음 /위/도 ‘우’와 같은 뜻이네.^^ 그러고 보니, 우(雨)자는 포도주잔을 뒤엎은 모양이다. 뒤엎자 우수수(雨水水) 하고 떨어지는 빗방울……. 허걱. ‘물 수(水)’자를 중국에서는 /shuǐ, 쉐이/, 일본에서는 /すい, 스이/라고 읽지만, 우리는 /수/라 발음한다. /수/라고 읽는 한 ‘물 수(水)’자는 한국어이다. 오늘은 ‘물 수(水)’자와 함께 국어야 놀자. 왜, /수/라고 읽을까? 수(水)를 잘 마셔야 수(壽)할 수 있기 때문일 거야.^^ 물을 뜻하는 수(水)자의 최초 상징 기호는 팔괘(八卦)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는 태극기에서 친숙하게 만날 수 있으니, 건곤리감(乾坤離坎) 중의 감(坎)괘가 물에 해당한다. 두 개의 음[--] 사이에 하나의 양[一]을 가운데 끼워놓은 감괘는 누가 보아도 수(水)자와 닮은꼴이다. 가운데 긴 획은 물의 빠른 흐름을, 양쪽의 두 점은 각각 물의 느린 흐름을 나타낸다. 음 사이에 양이 삽입되어 수(水)가 되는 이치는, 물을 생명 탄생의 원천으로 보게 하는 데에 이견의 여지가 없다. 우주 만물을 이루는 다섯 가지 원소인 오행(五行) 곧,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도 수(水)가 있다. 방위는 북쪽이고 계절은 겨울, 색깔은 흑(黑)이고 오상으로는 지(智)에 해당한다. 그리고 ‘풍수(風水)’에도 수(水)가 있다. 산을 등지고 물을 대하는 지세인 배산임수(背山臨水)와 바람을 막아주고 흘러오는 물을 바라보는 지세인 장풍득수(藏風得水)를 기본 원리로 하고 있다. 재미있게도 수(水)가 흘러 ‘내 천(川)’이 되었을 때는 글자의 모양만 보더라도 가장자리조차 물 흐름이 끊어지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발음이 왜 /천/일까? 골골 소리를 내며 급히 흐르던 골에서와는 달리 ‘천천히’ 흐르니까. 오잉? ‘뫼 산(山)’자를 보고 산봉우리 셋만 보기 쉬운데,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두 개의 깊은 골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골 저 골 골골이 고을이다. ‘골’에 해당하는 한자는 ‘골 곡(谷)’이다. 왜 /곡/일까? 글자의 모양을 보면 짐작이 간다. 바위(口) 양쪽으로 물이 둘로 갈라져 ‘콕콕’ 처박히며 세차게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리. 방콕^^. 방에 콕 처박혀 산다는 뜻의 신조어인데, 여기의 ‘콕’은 곡(谷)과 무관하지 않다. ‘콕콕, 골골, 콸콸, 졸졸, 쫄쫄, 촐촐, 잴잴, 철철, 죽죽, 줄줄, 주룩주룩…….’ 세찬 계곡물소리는 정말 다양하다. 여기서 한 마디. 산을 물을 건널 수 없고, 물은 산을 넘을 수 없다. 옳거니. 곡(谷)이 모여 천(川)이 된다. 다시 말하면 계곡(溪谷)이 모여 계천(溪川)이 된다. 그런데 우리말 ‘시내’의 ‘내’는 천(川)인데, ‘시’는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시’의 어원에 대하여는 이견이 분분하다. 예전에는 ‘골[谷]’을 ‘실’이라 하던 때가 있었다. 예컨대, ‘밤골’, 곧 ‘율곡(栗谷)’은 ‘밤실’이라 불렀었다. 따라서 ‘실’에서 흐르는 ‘내’를 일러 ‘실내’라 했는데, 이것이 ‘시내’로 바뀐 것이다. ‘시내’를 한자어로는 ‘곡천(谷川)’이라 할 수 있겠는데, 이 말은 일본에서 주로 사용하고 우리는 ‘계천(溪川)’이라 했다. 표기는 다소 달라도 ‘개천, 실개천’과 서로 통한다. ‘시내 계(溪)’ 자의 중국 발음은 /시/인데, 발음 거래가 있지 않았을까? ‘샘 천(泉)’은 천천히 샘솟고, ‘내 천(川)’은 천천히 내린다. 내리는 내는 여러 ‘갈래’가 모여 ‘강 강(江)’을 이룬다. 강(江)자를 보라. 범람하기 쉬운 강은 충분한 너비를 확보하고 둑을 튼튼하게 쌓아야 한다. 물의 갈래는 ‘물갈래 파(派)’이다. 여러 갈래가 모여 강을 이루는데, 강(江)의 고어 ‘’도 갈래[派]의 고어 ‘가ᄅᆞ’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연안 연(沿)’자를 보면 곡(谷)자에 있던 팔(八)자 두 개가 하나로 줄었다. 곡(谷)보다 물의 흐름이 느려졌다는 뜻이다. 물의 성질도 연하여 /연/이라 읽는다. ....
20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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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가물 끝에 단비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7 가물 끝에 단비 도정 권상호 중부지방은 오랜 장맛비로 몸살을 앓았는데, 제주도와 일부 남부 지역은 가물에 시달리고 있다니 삼천리금수강산의 반쪽인 이 땅도 푸지게 큰가 보다. 소나기가 소의 등을 나누듯이 반쪽 장마, 반쪽 가물이 반쪽 한반도를 또 둘로 나누었다. 이번 주말에 남부지역에 비 소식이 있기는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비 내리기를 비는 수밖에 없다. 비가 와도 걱정, 비가 오지 않아도 걱정, ‘걱정도 팔자(八字)’라 했으니, 피할 수 없는 걱정이렷다. 걱정해서 걱정이 없어질 것 같으면 천만번이라도 걱정을 해야겠다. 살아있기에 ‘우리’는 ‘우려(憂慮)’한다. ‘worry(걱정)’하면서도 ‘Woori Bank(우리은행)’에 돈을 맡긴다.^^ 생각을 조금만 달리하면 ‘걱정도 팔자(賣, sell)’일 수 있다. 걱정은 싸게 팔기가 아니라 밑져도 팔아야 한다. 바겐세일(bargain sale)이 아니라 패닉세일(panic sale)이어야 한다. 반액매출이 아니라 몽땅세일, 왕창세일, 빅세일, 파격세일, 폭탄세일, 재고정리, 무조건세일이어야 한다. 티베트 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걱정을 해서 걱정이 없어지면, 걱정이 없겠네?^^” 오래도록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가물’ 또는 ‘가뭄’이라고 한다. ‘가물’은 ‘가물다’라는 동사의 어간을 그대로 사용한 명사이다. ‘가물 - 가물다’와 같은 예로는 ‘빗 - 빗다, 품 - 품다, 배[腹] - 배다, 띠[帶] - 띠다, 신 - 신다, 되 - 되다’ 등을 들 수 있다. ‘가뭄’은 일반적인 명사형 접미사 ‘-ㅁ’에 의해 파생된 명사로 ‘가물’과 함께 둘을 표준어로 삼고 있다. 그리고 ‘ > 믈 > 가물 > 가뭄’의 변천을 거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가물(가뭄)’, ‘가물다’의 두 말 속에는 ‘물’자가 다 들어있음에도 물[水]이 없어 걱정이라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그렇다면 여기의 물은 ‘물[水]’이 아니란 말인가? 아니면 무엇일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가물’의 ‘-물’은 정반대의 의미인 ‘마름(渴, dry)’의 뜻이다. ‘가물’의 고어는 ‘’, ‘가물다’의 고어는 ‘다’이다. 여기의 ‘’은 ‘다(渴, dry)’의 어간 ‘’의 축약형이라 생각한다. 또, ‘-’는 ‘가장자리, 변(邊), 변두리, 끝’의 뜻이니, 결국 ‘’은 ‘가장자리까지 마름’, ‘다’는 ‘가장자리까지 마르다’의 뜻이 되겠다. 어원적으로 보면 ‘가물’보다 ‘가말’이 더 어울리고, 지역에 따라서 흔히 사용되고 있는 말이나, ‘가뭄’과 ‘가물’만을 표준어로 정하고 있는 형편이다. 그렇다면, 태도나 매무새 따위를 바르게 하는 것을 ‘다다(가다듬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가장자리를 다듬다’에서 온 말이겠다. ‘냇(냇가), 우물(우물가)’라고 할 때의 ‘-’는 가장자리의 의미가 있고, ‘업다(가없다)’의 ‘-’는 끝의 의미를 지닌다. 척척이로다. 가물을 한자어로는 ‘한발(旱魃)’이라 한다. ‘가물 한(旱)’자를 보면 나뭇가지[十] 끝[一]에 햇살이 쨍쨍 내리쪼이고 있는 모양이다. ‘가물 한(旱)’의 결과는 똑같은 발음의 ‘땀 한(汗)’과 ‘원통할 한(恨)’으로 끝난다. ‘가물귀신 발(魃)’자에 ‘귀신 귀(鬼)’자가 들어있는 것을 보면, 우리 선조는 가뭄을 맡는 귀신이 따로 있다고 생각했나 보다. 가물귀신의 뒷발에 ‘달릴 발(犮)’자가 붙어있는 것으로 볼 때, 가뭄 귀신은 자메이카의 단거리 선수 우사인 볼트보다 빨라서 따라잡기 힘들다. 아, 그렇구나. 가뭄을 번개 같은 귀신의 소행이라 믿었기 때문에, 예부터 황제나 왕이 직접 나서서 기우제를 지냈구나. 250구 중의 첫 구는 ‘천지현황(天地玄黃)’이다. 여기에서 ‘현(玄)’의 뜻을 흔히 ‘검을 현(玄)’으로 보고 있는데,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하늘을 검다고 하는 것은 이상하다. ‘검을 흑(黑, black)’자가 따로 있으니 이는 ‘가물 현(玄, dark)’으로 보는 게 옳다고 본다. 정확한 뜻은 ‘가물가물하다’이다. 사랑을 뜻하는 한자로 ‘사랑 자(慈)’와 ‘사랑 애(愛)’가 있다. ‘사랑 자(慈)’는 ‘玄 + 玄 + 心’으로 이루어졌으며 ‘가물가물한 사랑, 가없는 사랑(endless love)’의 뜻으로,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나 중생에 대한 부처님의 사랑을 가리킨다. ‘사랑 애(愛)’자 안에는 ‘마음 심(心)’과 ‘받을 수(受)’자가 들어 있으니 ‘마음을 받는 것이 사랑’이라는 진실한 사랑법을 가르쳐주고 있다. 그러면 자(慈)는 마음을 주는 것이요, 애(愛)는 마음을 받는 것이겠다. 노장(老莊)의 학문을 가리켜 현학(玄學)이라 한다. 그 세계가 깊고 높으며, 넓고 가마득한 학문이기 때문에 붙인 말일 것이다. 나이 들어 눈이 가물가물해지는데, ‘가물 현(玄)’자가 가물거리며 나타나니 꿈을 꾸는 듯하다. 북한말 중에 ‘눈가물치다’는 말이 있다. 몹시 지치거나 졸려서 눈꺼풀이 자꾸 내려와 눈을 깜작거릴 때 쓰는 말인데, 눈이 가물가물한 상태를 지나면 잠이다. 마침내, 남부지방에 단비가 내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기다리고 바라던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 진정한 ‘가물 끝에 단비’라 하겠다. 쪽잠이 확 날아간다. 사무실에서 뛰쳐나와 기지개를 켜자 삼각산이 눈에 들어온다. 간밤에 가을을 부르는 비를 몰래 맞은 북한산도 말쑥한 얼굴에 부끄럼 타며 구름 타월을 허리에 걸치고 있다. 매혹적이다. 구름 뒤에는 언제나 빛나는 태양이 있고, 가물 끝에는 반드시 단비가 기다리고 있다.
2013.08.24

내가 본 강남문화원- 소통과 공유, 공정과 신뢰

내가 본 강남문화원 소통과 공유, 공정과 신뢰 도정 권상호(문학박사, 문화 칼럼니스트) 문화(文化)란 무엇인가? 우선 ‘문(文)’이란 글자 모양을 살펴보면 사람의 모습을 닮았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문(文)이란 자연이 아닌 인간의 일을 얘기하고 있다. 사람의 머리와 벌린 두 팔, 그리고 세모난 가슴과 벌린 두 다리의 모습이 보인다. 문(文)자의 옛 모양은 사람의 가슴 부분에 심(心)자나 이와 비슷한 꼴의 문신(文身(문신)을 한 모양이었다. 따라서 문(文)의 본뜻은 ‘무늬’였다. 여기에서 ‘글자’, ‘학문’, ‘문화’ 등의 뜻으로 발전해 왔다. 화(化)자의 옛 모양은 사람 인(人)자 두 글자로 되어 있는데, 한 사람은 바로 어 있고, 다른 한 사람은 재주를 부리며 거꾸로 서 있다. 여기에서 ‘지금과는 다른 사람이 되다’의 뜻에서 출발하여 ‘되다’, ‘변화하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그런데 가명(假名), 위선(僞善) 등의 예에서 보듯이 ‘거짓’을 뜻하는 ‘가(假)’자나 ‘위(僞)’자를 보면 인간만이 거짓을 행하기에 사람 인(人)자를 앞에 붙여놓았다. 그래서 중요한 점은 변화하되 인간 본연의 모습은 잃지 말아야 함에 있다. 따라서 문화(文化)란 문자학적으로 보면 인간의 전유물이다. 그리고 문화란 자연 그대로가 아니라 인간에 의한 좋은 쪽으로의 변화를 뜻한다. 변화를 위하여 절대 필요한 것은 소통(疏通)이다. 인류 문명의 발달도 따지고 보면 시간과 공간 극복을 위한 노력의 결과물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의 탄생 모습은 한 마디로 일폐구개(一閉九開)라 할 수 있는데, 이는 탯줄이란 하나 통로가 닫히고, 대신에 아홉 개의 새 통로가 열린다는 뜻이다. 열린 아홉 통로의 소통이 잘 이루어지면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죽음에 이른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도 소통이 잘 이루어질 때는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지만,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고사하고 만다. 문화(文化)의 정의를 달리 비유하자면 ‘인간의 영혼을 담는 질그릇’이라 할 수 있다. 왜 하필 질그릇이라 하는가? 첫째는 질그릇은 안팎이 소통하는 그릇이요, 둘째는 영혼이란 내용물을 질그릇에 소박하게 잘 담아 두어야 이웃과 공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문화는 끊임없이 소통과 공유를 실천할 때 생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그리고 질그릇의 모양은 크기도 다양하고 다소 삐뚤빼뚤한데, 이는 문화의 다양성과 부정형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 본질과 특성을 멋지게 살린 곳이 있으니 바로 ‘강남문화원’이라 할 수 있다. 사실 강남은 1970년대 이후 한국 현대사회의 고도성장과 부(富)와의 상징이다. 그런데 강남문화는 영동문화라고 하는 유흥문화를 중심으로 출발하였으니, 주현미가 노래한 와 이 당시의 강남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싸이의 은 강남문화 스타일을 세계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한국 전통문화의 중심이 강북이라면, 1988년에 복합 예술센터 예술의전당이 서초구에 들어서고부터는 한국 현대문화의 중심은 강남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가 짧은 신흥 도시라는 배경 속에서 뒤늦게 탄생한 강남문화원은 1996부터 뜻있는 문화인들이 모여 지역 문화의 씨앗을 뿌리기 시작하여, 1998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설립 인가를 받고 개원하였다. 그 이후에도 강남문화원은 예술의전당의 그늘에 가려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강남문화원은 창립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문화강좌, 문화대특강, 발간, 향토사 연구, 강남전통예술경연대회, 대한민국 강남미술대전, 대한민국 강남서예문인화대전, 강남독후감공모전 및 각종 예술제 등을 통하여 구민과 깊은 교감을 나눔은 양질의 고급문화를 전 국민에게 선양해 왔다. 그 결과 지금은 강남의 경제와 교육에 걸맞은 강남문화의 창달로 강남이 세계 속의 고품격 명품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이러한 발전의 저변에는 많은 구민과 문화원 이사님들의 노력이 저변에 깔려 있었던 게 사실이지만 현 김성옥 강남문화원장님의 도전과 변화를 위한 고심을 간과할 수 없다. 필자는 안면이 없던 현 김 원장님의 부름으로 연전에 대한민국 서예문인화대전의 운영위원을 맡은 바 있다. 지금까지 기억에 남는 김 원장님의 말씀 한마디는, 가장 신뢰받는 강남문화원의 전국적인 예술행사를 위해 민주적이고 공정한 운영과 심사를 해 달라는 진심 어린 당부였다. 문화와 예술 영역의 공모전은 기록경기와 달리 등수를 매긴다는 자체가 어렵다. 심사위원의 주관적 판단이 앞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로는 출품작은 말이 없으나 심사위원들끼리 시끄러울 때가 있다. 인간이 하는 일이라 어떤 상황에서도 뒷말이 전무할 수는 없지만, 깨끗한 운영과 심사를 통하여 참가자들로부터 결과에 대한 최상의 긍정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면에서 여러 해 동안 강남문화원의 행사를 지켜본 바로는 사심 없이 공정하게 행사 진행을 이끌어 오신 김성옥 원장님의 덕망에 갈채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강남문화의 DNA는 ‘소통과 공유, 공정과 신뢰’라고 생각한다. 어제의 아쉬움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 오늘의 기회가 있다. 기회는 도전하는 사람에게만 성공으로 이어진다. 앞으로 사람 중심의 문화, 변화와 창발의 문화가 강남문화원에서 줄곧 일어나 강남구민의 정신적 오아시스, 나아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문화 허브로서의 새 역사가 펼쳐지길 기도한다.
2013.08.19

광복절 기념 태극기 그리기 대회 라이브 서예 - 서울 남산 한옥마을

* 태극기의 역사* 태극기의 상징성* 태극기 그리는 방법* 한중일영 소개Our country regained independence in 1945.  It''s National Liberation Day. We celebrate liberation from Japanese rule. 광복절노래 흙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년 뜨거운피 엉긴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길이 지키세 -----------------낙서 칼슘 섭취와 근육운동 - 체형을 새롭게 만든다. 히든 챔피언 기술개발에 한계는 없다. - 대구 대원 GSI (서영교) 위기 속에서 성공의 열쇠를 찾자. 우리 예술의 새로운 동력을 찾자.   휴전협상은 1951년 7월 10일에 처음 열린 이후로도 UN군과 공산군의 전투가 반복되며 약 2년간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전쟁 당사국인 한국의 반공통일 주장은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1953년 7월 27일(내 생일은 1954년 7월 13일) 한국군 대표 없이 UN군 대표 클라크, 북한 대표 김일성, 중공군 대표 팽덕회가 '정전협정서'에 서명하였다. 그로 인해 3년 1개월 2일, 총 1129일 동안 지속된 6ㆍ25전쟁은 휴전되었다. 배고픔보다 배움이 고픈 시절이 있었습니다. 배움보다 배고픔이 먼저이던 시절이 있었다. 배움에 대한 배고픔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2013.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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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열나는 여름, 열매 여는 여름, 열 문 여는 여름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5. 열나는 여름, 열매 여는 여름, 열 문 여는 여름 후텁지근한 날씨에 조금만 걸어도 속옷에 땀이 밴다. 열(熱)나는 여름, 열매 여는 여름이니 차분하게 참아야지. 여름엔 그저 댐의 수문을 열고, 논의 물꼬는 트고, 집의 대문과 창문도 열고, 여몄던 옷깃마저 열어야 한다. 마음마저 연다면 올가을엔 시집·장가가겠지? 우리말 ‘열다’라는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열매가 맺히다’와 ‘닫히거나 막힌 것을 터놓다’ 등이 그것이다. 숫자 ‘열[十]’도 ‘주렁주렁 열린 수’, ‘꽉 찬 수’이자 ‘사방으로 퍼져 나가는 수’라는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여름[夏], 열(熱), 열[十], 열매[實], 열다[結實]. 열다開], 나열하다(列), 열리다, 여물다, 영글다’ 등은 모두 가족 단어라 할 수 있다. 여름 식사는 물씬한 보리밥 위에 시원한 열무김치를 얹어 쓱쓱 비벼 먹어야 제격이다. 빨간 고추장이 침샘을 자극하고 한두 방울의 참기름이 후각을 흔들면, 손가락 끝에서는 숟가락이 춤을 추고 입안에선 아삭아삭 노랫소리가 들려온다. 목구멍의 꿀꺽 장단과 이어지는 방귀 소리에 열없이 여름은 졸음 속에 흘러간다. 이 대목에서 꼭 짚고 넘어가야 할 얘기가 있다. 학창 시절에 친구들과 웃으며 주고받던 방귀의 3요소 개그가 있다. 국가의 3요소, 비료의 3요소, 소설의 3요소, 연극의 3요소, 색깔의 3요소, 빛깔의 3요소 등을 외우다가 지루하면 방귀의 3요소를 들이댄다. 아름다운 멜로디, 향기로운 냄새, 내적 불만의 외적 해소 등이 그것이다. 방귀는 방기(放氣)에서 온 말인 듯하다. 공기를 방출한다는 뜻이렷다. 기(氣)가 막히면 기막힌 일이지. ‘빵구’라고 하는 사투리나 /pì/라고 발음하는 중국어 屁(방귀 비)나, 영어 ‘fart’ 등은 아무래도 소리를 흉내 낸 말로 보인다. 이쪽에서 뽀~옹 하며 똥 트림 하면 저쪽에서 삘리리~ 하며 가죽피리를 분다. 웃다가 지쳐 오수나 즐길까 하는데, 어디서 들려오는 쌍바윗골의 비명에 화들짝 놀라 깨어난다. 화생방 훈련의 진원지를 서로 떠넘기다가 감출 수 없는 얼굴의 진실 근육 때문에 내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원숭이 제 방귀 소리에 놀란다더니……. 여름엔 하늘도 답답한지 세찬 바람과 함께 소나기를 쏟으며 샤워하고 천둥[←텬동(天動)]으로 드럼 치고 번개로 레이저쇼를 한다. 여름 하늘의 빅쇼 뒤에 땅에 나타나는 현상은 언제나 큰물의 흐름이 있을 뿐. 어? 천지자연에도 풍류(風流)가 있네? ‘비바람[風雨]’ 소리와 ‘흐르는 물[流水]’ 소리가 어울리면 풍류가 아니던가. 인간이 자연을 보고 풍류(風流)를 배웠구나. 자연은 인간의 도전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스승이렷다? 볼 게 많아 봄이라더니, 열(熱)이 많아 여름인가 보다. 열나는 여름이라야 오곡백과의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다. 여름에는 하늘 문이 열려 비가 많이 내리고, 대문과 방문이 열려 바람과 햇살을 부른다. 여름에는 모든 게 열려야 한다. 하늘과 땅도 열리고, 남과 북도 열려야 한다. 마침 ‘열 개(開)’ 자 개성(開城) 공단이 열린다는 소식이다. 그렇다. 천지는 물론 남북한도 막히면 동맥경화증에 걸린다. 친구 사이, 연인 사이, 이웃 사이, 국가 간에도 열려야 화목하고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식곤증도 달랠 겸 여름날 오후에 오패산 자락을 산책한다. 서늘한 바람이 기운차게 나뭇잎을 흔들자, 시커먼 쌘비구름이 남서쪽에서 무리지어 굴러온다. 먹빛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하고 내려오더니 곧이어 천상 천둥이 둥둥 울리며 다가온다.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고 별안간 벼락[←벽력(霹靂)]이 내리친다. 하늘의 눈빛은 번개와 같고, 하늘의 고함은 천둥과 같구나. 소나기의 맛은 느닷없이 비가 세차게 쏟아지다가[솓다 > 쏟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세 빛이 나는 데에 있다. 그렇다면 ‘소나기’는 ‘솓나기’에서 온 말처럼 보인다. 요즈음 소나기를 곧장 ‘쏘나기’로 발음하는 경우를 볼 수 있는데, 이는 ‘솓다’가 ‘쏟다’로 바뀐 것과 같은 이치라 할 수 있겠다. 쇠로 된 힘센 활을 ‘쇠뇌[弩(노)]’라고 하듯이 쇠처럼 거세게 내리는 비라는 뜻에서 고어에서는 ‘쇠나기’로 표기했는지도 모른다. 민간어원이 더 재미있다. 소나기가 국지적으로 내리는 데에 착안하여 그 어원이 ‘소의 등을 나누는 비’에서 왔다는 것이다. 허걱. 그리고 ‘소낙비’는 ‘소나기비’를 줄여서 쓴 말일 텐데 ‘떨어질 낙(落)’과 맞물려 ‘소란하게 낙하하는 비’로 풀이해도 안성맞춤이다. ‘비’에는 하늘에서 내리는 ‘비[雨]’ 외에도 청소를 위한 ‘비[帚(추)]’와 화투장의 ‘비’가 있다. 화투의 비는 일본에서는 동짓달을, 우리나라에서는 섣달을 상징하는데, 이는 비 내리는 풍경을 그렸으므로 비라 할 따름이다. 비 광(光)을 살펴보자. 공부에 지친 한 선비가 우산을 들고 길을 나섰다가 버드나무에 뛰어오르려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개구리를 보고, 미물인 개구리보다 자신의 노력이 부족했음을 깨닫고 곧장 귀가하여 서예 공부에 정진했다는 얘기가 숨어 있다. 얼씨구. 이 선비는 다름 아닌 일본의 유명한 서예가 오노도후(小野道風, AD.894-967)이다. 비 온 뒤에는 땅이 굳어짐은 물론이고, 온갖 먼지가 싹 씻겨 내려간다. 빗자루도 덩달아 지저분한 먼지와 쓰레기를 쓸어낸다. 빗자루와 비슷한 것으로 붓이 있다. 붓의 역할은 무엇인가? 마음의 근심 걱정은 물론 마음의 때까지 싹 쓸어내나니……. * 그림 해설: 여름에 더위를 거부해서는 안 된다. 열나는 여름이기에 많은 열매가 열린다. 화투장의 비는 비 내리는 풍경을 그렸으므로 비라 하고, 배경 설화에는 노력의 미덕이 나타나 있다. * 글씨 해설: 전서체(篆書體)로 쓴 ‘풍류(風流)’이다. 인간은 자연을 보고 풍류를 배웠다. 자연은 인간의 도전 대상이 아니라 영원한 스승이다.
20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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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박사, 해인지, 월간에세이 원고 준비

붕정만리(鵬程萬里) (두산백과) 《장자(莊子)》〈소요유편(逍遙遊篇)〉에 나오는 말이다. 장자는 전설적인 새 중에서 가장 큰 붕(鵬)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어둡고 끝이 보이지 않는 북쪽 바다에 곤(鯤)이라는 큰 물고기가 있었는데 얼마나 큰지 몇 천리나 되는지 모를 정도이다. 이 물고기가 변해서 붕이 되었다. 날개 길이도 몇 천리인지 모른다.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았고[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 날개 짓을 3천 리를 하고 9만 리를 올라가서는 여섯 달을 날고 나서야 비로소 한번 쉬었다." 붕정만리는 말 그대로 붕이 날아 가는 만 리를 가리키는데, 거대한 붕이 만리나 나니 그 거리는 상상을 뛰어 넘는다. 원대한 사업이나 계획을 비유할 때, 비행기를 타고 바다 건너 멀리 여행하거나 앞 날이 양양한 것을 비유할 때 사용된다. 반면에 작은 새들이 붕이 날아 가는 것을 보고 "도대체 저 붕은 어디까지 날아가는 것일까. 우리는 비록 숲 위를 날 정도로 멀리 날지는 못해도 나는 재미가 그만인데"라고 빈정대며 말하는 것을 상식적인 세계에 만족하고 하찮은 지혜를 자랑하는 소인배에 비교하였다. 즉 소인이 대인의 웅대한 뜻을 모르는 것과 같으며, 한국 속담에도 ‘참새가 어찌 봉황의 뜻을 알겠느냐’가 있다. 장자의 사상에서 ‘붕’에 비유하는 말이 종종 나오는데, 대부분 웅장하거나 원대하고 상상을 초월하는 세계 또는 물체를 비유할 때 등장한다. 예를 들어 붕곤(鵬鯤)·붕배(鵬背)·붕비(鵬飛)·붕도(鵬圖)는 각각 상상을 초월한 사물이나 현대적인 의미로 거대한 항공기, 분발해 큰 일을 성취하려는 것,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원대한 사업을 각각 비유할 때 사용된다. ‘도남(圖南)’은 고사성어 붕정만리에서 유래하였다. 도남은 한 번에 9만 리를 날아 6개월 동안 날아 남쪽으로 가는 것을 말하는데, 다른 곳으로 가서 거대한 사업을 벌이려는 것을 뜻한다. 장자는, 소요유란 절대적인 자유로운 세상에서 노니는 것을 말하며, 권력이나 신분·재산·권위를 초월한 완전하고 대자연의 크나큰 품인 자유 속에서 비로소 행복다운 행복, 즉 참다운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2013.0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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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무엇에 쓰는 집인가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2〉 무엇에 쓰는 집인가 “집이란 비바람을 막아주고, 믿음을 갖고 먹고 사는 곳”‘집’이란 한글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ㅈ’은 ‘ㅅ(사람)’ 위에 가획했으니, 사람을 덮어주는 이미지이고, ‘ㅣ’는 ‘햇살·솟대’ 등의 신앙적 지표이며, ‘ㅂ’은 입술소리로 ‘입’[口의 전서 형태] 또는 ‘밥’을 가리킨다. 그렇다면 집이란 비바람을 막아주고, 믿음을 갖고 먹고 사는 곳으로 풀이할 수도 있것다. 견강부회(牽强附會)요 아전인수(我田引水)인들 어떠리.‘창조(創造)’라 할 때의 ‘비롯할 창(創)’자 속에는 집[倉]이 들어 있다. 감동이로다. 창(創)의 초기 금문 형태는 ‘?’이었다. 무엇을 칼로 가르면 둘로 나뉘는 모습이다. 나중에 이리저리 칼질하는 모습의 ‘정(井)’자를 더하여 ‘창(?)’으로 쓰다가 발음을 중시하여 서서히 지금의 ‘創’으로 쓰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創’에 창조를 위한 공간을 뜻하는 ‘곳집 창(倉)’이 있다. ‘칼 도(?)’는 창조를 위한 도구라 할 수 있다.창(倉)’은 ‘밥 식(食)+입 구(口)’의 구조이니 ‘입에 들어갈 것을 넣어두는 곳집’을 가리킨다. 그런 뜻에서 창조란 우리에게 먹을 것을 제공한다고 볼 수 있다.‘집’을 가리키는 글자로는 창(倉) 이외에, 거마(車馬)나 무기를 넣어두는 곳인 ‘곳집 고(庫)’, 나누어 줄 것[줄 부(付)]을 넣어두는 곳인 ‘관청 부(府)’-그런데 빼앗는 일을 많이 한다는 소문이 있다. 쉿! 벼를 가득 넣어두는 곳인 ‘곳집 름(?)’, 노적가리처럼 잠시[잠깐 유(臾)] 쌓아두는 곳인 ‘곳집 유(庾)’ 등이 있다.그러면 ‘지을 조(造)’는 어떤 의미인가. 창조한 것을 신에게 고(告)하기 위하여 나아가는[庾] 모습이다.어쩌다 너무 어려운 집들만 늘어놓았나? 집을 가리키는 익숙한 한자들을 찾아보자. 집 가(家), 집 실(室), 집 궁(宮), 집 택(宅), 집 우(宇), 집 주(宙) 등에는 공통으로 원시 움집 모양의 ‘집 면(?)’자가 붙어 있다. 발음이 ‘면’인 것은 집이 비바람이나 한서(寒暑)·짐승·해충 등으로부터 피해를 면(免)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집 가(家)’자에 ‘돼지 시(豕)’자가 들어 있는 모습은 한 폭의 추상화이자 코미디다. 피카소가 만년에 한자에 심취하고, 스티브 잡스가 대학을 휴학하고 한자에 심취했던 이유를 알 만하다. 파충류가 극성이던 옛날에는 집안에 들어오는 뱀이 가장 큰 문제였다. 뱀의 천적이 돼지라는 사실을 깨달은 은나라 우리 선조는 갑골문을 만들고 집을 뜻하는 가장 보편적인 가(家)자 안에 돼지를 그려 넣었던 것이다. 제주도에는 아직도 그 풍습이 남아 있다. 민간에서는 뱀띠와 돼지띠가 만나면 원진살(元嗔煞)이라 하여 결혼을 피한다.‘집 실(室)’은 가족 구성원이 이르는[至] 곳이요, ‘집 옥(屋)’도 피곤한 몸[尸]을 이끌고 돌아와[至] 쉬는 곳이다. ‘편안할 안(安)’자는 여자가 갓 쓰고 다니는 모습이 아니라 여자가 일과를 마치고 대청에 앉아 쉬고 있는 모습이다. ‘집 당(堂)’은 신을 숭상[尙]하는 곳[土]으로 당집을 가리킨다.‘집 궁(宮)’은 건물이 많이 늘어선[呂] 집을, ‘집 택(宅)’은 사람이 의탁(?)하고 사는 집을 나타낸다. 우주(宇宙)라고 할 때의 ‘집 우(宇)’는 우(于)가 장소를 뜻하므로 공간적으로 끝이 없음을, ‘집 주(宙)’는 유(由)가 연유(緣由)나 인연(因緣)을 뜻하므로 시간상으로 끝이 없음을 나타낸다.이 외에도 ‘집 원(院)’은 담[?]을 두른 완전한[完] 저택을 가리킨다. 법원(法院)·병원(病院)이로다. ‘집 사(舍)’는 남[人]이 여유(餘裕)롭게 머물다가 버리고 떠나는 집을 가리킨다. 객사(客舍)·사랑(舍廊)이로다.또 있다. ‘집 면(?)’에서 오른쪽 벽을 없애면 한쪽이 열려 있는 ‘집 엄(?)’이 되는데, 이런 집은 엄호를 잘해야 한다. ‘가게 점(店)’은 정한 자리[占]에서 물건을 차려놓고 파는 집이다. 상점(商店)·매점(賣店)·백화점(百貨店)·할인점(割引店)이로다. 관청(官廳)·도청(道廳)이라고 할 때의 ‘관청 청(廳)’은 ‘들을 청(聽)’자가 들어있으니 관에서는 언제나 백성의 소리를 잘 들어야 한다는 뜻이렷다. 여기서 넋두리 하나. 귀가 양쪽에 있는 이유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양쪽의 말을 균형 있게 잘 들어야 한다’는 신의 뜻임을 명심할 일이다. 그리고 높은 집일수록 청렴(淸廉)해야 하고 법도(法度)를 지킬 줄도 알아야 한다. ‘청렴할 렴(廉)’자와 ‘법도 도(度)’자의 공통점이 보이는가.허술하지만 술을 파는 목로(木爐)가 있는 집은 ‘오두막집 려(廬)’이다. 여인숙·주막이라는 뜻도 있다. 면앙정 송순의 시조에 ‘십 년을 경영하여 초려(草廬) 삼간(三間) 지어내니…’가 있다. 유비(劉備)가 제갈공명(諸葛孔明)을 세 번이나 찾아간 고사로 삼고초려(三顧草廬)도 있구나.중국을 달리 일컫는 말에 화하(華夏)가 있다. 여기의 하(夏)는 전설상 중국의 가장 오래된 왕조를 뜻하기도 하지만, 중국 민족을 가리키기도 한다. 하(夏)의 전서를 보면, 깍지 끼고 화려하게 앉아 있는 신인(神人)의 모습을 닮았다. 중국의 단군왕검이라고나 할까. 신인이 여름 제사에 춤을 추었다는 데에서 ‘여름 하(夏)’의 의미가 유래했다고 보기도 하고, 여름에는 덥기 때문에 머리[頁]와 발[?]을 모두 드러낸 모양으로 보기도 한다. 좌우지간 여름이면 빛이 따가워서 머리에 수건을 덮고[一] 더워서 천천히 걸으며[?] 숨을 ‘하하’ 하고 토할 수밖에 없다. 중국 대도시를 여행하다가 보면 빌딩 옆에 ‘∼대하(大廈)’라고 쓰인 간판을 자주 접하게 되는데, 이는 ‘명심보감(明心寶鑑)’에도 나오는 말로서 빌딩이라는 뜻이다.‘대하천간 야와팔척(大廈千間 夜臥八尺)/ 양전만경 일식이승(良田萬頃 日食二升).’큰 집이 천 칸이라도 밤에 잘 때는 여덟 자면 만족하고, 좋은 밭이 만 이랑이라도 하루에 두 되만 먹으면 넉넉하니라. 좁고 적어도 남는 삶이 있는가 하면, 넓고 많아도 부족한 삶도 있구나.권상호 라이브 서예가·수원대 겸임교수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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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 집은 창조의 공간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집은 창조의 공간 집이 만들어 준 삶의 터전·휴식의 공간한옥으로 대표되는 기와집·초가집허물어도 고스란히 자연으로 돌아가인간은 집이 만들어준 공간을 사용우리말 ‘짓다’는 ‘무한 창조의 동사’ 인간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놀랍게도 딱 두 가지, ‘말’과 ‘짓’밖에 없다. 이를 유식하게 ‘언행(言行)’이라 하것다. 살다가 보면 생각이 말을 걸기도 하고, 말이 말을 걸기도 한다. 말과 대화하며 인문학적 소양을 넓혀나간다면 주제넘은 말인가? 말에게 말을 걸며 세월을 보내는 것도 재미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한다. 재미와 의미에는 각각 맛을 뜻하는 ‘맛 미(味)’ 자가 들어있구나. 얼쑤. 주전부리 과자나 심심풀이 땅콩 정도로 생각하며 읽어주신다면 감사할 뿐이다. 꾸우벅. 말이 넘친다 싶으면 일러 주세요. 말을 말면 되니까.^^ 말은 맛있게 하고, 글은 멋있게 써야지. 혹시 누가 알리오. 그 속에서 앎의 맛과 삶의 멋까지 챙길 수 있을지…. 말은 흐르는 강이요, 글은 그 강물을 담는 바다이다. 시간과 공간이 떨어질 수 없듯이, 말과 글도 언제나 더불어 지낸다. 인간은 시간·공간에 붙어살고, 얼[정신]은 말·글에 붙어산다.오늘은 ‘집’을 말거리로 삼아 볼까나. 점잖게 ‘집’을 화두로 삼자. 현대 도시인은 거의 집을 잃고 방에서 살아가고 있다. 분양받은 아파트가 방일 뿐이지, 어디 집이라 할 수 있남. 쪽방이라도 단층집이라면 하늘을 이고 대지를 밟으며 살아가는 건데…. 차라리 풍찬노숙이라면 신선처럼 보이기라도 하지…. 허걱.우리의 전통 가옥, 즉 한옥으로 대표되는 집은 기와집과 초가집이라 하겠다. 기와집은 지체 높은 사람의 집이라 용마루와 추녀를 보면 하늘을 떠받드는 모양이고, 초가집은 서민의 집이라 지붕을 보면 대지를 가슴으로 안고 있는 형상이다. 절묘한 천지조화인지, 피치 못할 신분이 주는 숙명인지 모르겠다.서울 암사동 선사유적지에 움집을 복원해 놓은 모습을 보면 땅 위로는 풀만 덩그렇게 보인다. 벼농사가 일반화되었을 때엔 아마 짚으로 지붕을 이었으리라. 볏짚·보릿짚·밀짚과 같이 ‘짚’은 비교적 긴 풀[초(草)]을 가리키는 말로 생각된다. 고어에서는 ‘?’으로 표기했다. 집터 가운데에는 돌을 둘러 만든 화덕자리가 있고 모서리에는 4개의 기둥을 세웠으며 도리와 서까래로 지붕을 지탱한 후 짚을 그 위에 얹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움집의 재료로는 흙·돌·풀·나무가 전부라고 생각된다. 나중의 초가집과 기와집도 재료 면에서 보면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므로 모두 친자연적인 집이라 할 수 있다. 이는 몽땅 허물어도 고스란히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뜻이다.‘집’이란 우리에게 도대체 어떤 의미가 있는가. ‘물’과 ‘불’, ‘옷’과 ‘밥’, ‘손’과 발‘, ‘너’와 ‘나’처럼 ‘집’도 1음절 단어인 걸 보면 중요한 것임이 틀림없다. 옳지.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꼭 필요한 세 가지 기본 요소, ‘의식주’의 ‘주(住)→주택(住宅)’이 바로 집이로구나.놀랍게도 황금집이든 나무집이든 돌집이든 흙집이든, 우리는 집의 형상 그 자체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 만들어 준 공간을 사용할 따름이다. 구태여 집 자체에서 의미를 찾는다면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볼 수 있겠다. 건축도 엄연한 조형예술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 중요한 것은 공간이다. 공간 활용을 위한 집이다. 집이 만들어 준 공간은 삶의 터전이자, 휴식의 공간이자, 창조의 공간이다.‘집을 짓다’라는 말에서 보면 ‘짓다’는 ‘집’의 동사형으로 보인다. 그러나 ‘짓다’의 출발은 ‘짓[몸놀림, 행위(行爲)]’에서 왔다고 본다. ‘손짓, 발짓, 눈짓, 몸짓’ 등에서 그 용례를 찾을 수 있겠다. ‘행위’라고 말하면 점잖고, ‘짓’이라 말하면 버릇없게 보는 것은 언어사대주의의 결과이다. 모든 짓은 비언어적(非言語的) 표현으로 말의 이해에 도움을 준다. ‘못된 짓, 미운 짓’처럼 나쁜 쪽으로만 사용하지 말고, ‘예쁜 짓, 고운 짓’처럼 아름답게도 사용하는 게 어떨까. ‘짓밟다, 짓이기다’에서의 ‘짓-’을 사전에서는 ‘마구’ ‘함부로’ ‘몹시’의 뜻을 더하는 접두사로 풀이하고 있는데, 틀린 말은 아니지만 ‘짓밟다’는 ‘짓을 밟다’에서, ‘짓이기다’는 ‘짓을 이기다’에서 온 말로 봐도 무관할 듯하다.우리말 ‘짓다’라는 동사를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매우 다양한 의미로 폭넓게 사용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집을 짓다[세우다, 건축하다, build], 옷을 짓다[만들다, make], 밥을 짓다[cook], 글을 짓다[쓰다, 저술하다, write], 한숨을 짓다[sigh], 표정을 짓다[make a face], 약을 짓다[prepare medicine], 미소를 짓다[smile], 무리를 짓다[group], 농사를 짓다[경작하다, 재배하다, farm], 죄를 짓다[범하다, commit a crime], 매듭을 짓다[make a knot], 이름을 짓다[name], 짝을 짓다[pair up], 결말을 짓다[settle] 등의 예에서 보듯이 우리말의 ‘짓다’는 정녕 다양하게 사용된다. 영어의 ‘build’나 한자의 ‘건(建)’에 비하면 우리말 ‘짓다’는 삶의 전반에 밀착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단히 넓은 의미상의 네트워크를 가진 동사다. 그러므로 ‘짓다’라는 동사야말로 ‘무한 창조의 동사’로 볼 수 있다.‘짓다’의 반대말은 ‘허물다’ ‘헐다’ ‘헐뜯다’ 등이 있는데, ‘빌 허(虛)’와 관련이 있다고 본다. 허물어야 새로 지을 수 있는 법. 아무렴. 세상에 영원한 집은 없다. 집은 최대한 활용하고 난 뒤에 거침없이 허물거나 버려야 한다. 그렇다고 버리기 위하여 집을 짓는다고 하기엔 너무 서글프다.예전에는 살기 위해 집을 지었지만, 요즈음에 팔기 위해 집을 짓는다고 한다. 삶의 보금자리로서의 집이라기보다 투자 가치로서의 집을 생각하는 세태를 반영한 말이다. 자연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알맞은 크기로 짓고 그 안에서 먹고, 싸고, 일하고, 쉴 수만 있으면 그만이다.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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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출품내역서 성 명 한글 : 권상호 (한자) 權相浩 영문 : Sangho Kwon 아 호 한글 : 수월 한문 : 塗丁 생년월일 주 소 서울 강북구 미아3동 190-2 현대아파트 상가 303호 신일서예원 전 화 사무실 02-988-2775 직 장 신일서예원 휴대전화 작품명칭 한글 : 어울림 (한문) 調和 영문 : Harmony 작품 규격 4점1조 작품설명(작품의도 or 작가노트) 1. 한글의 어울림(얼굴) : 한글은 언어가 꿈꿀 수 있는 최고의 알파벳이다. 한글의 과학성과 실용성도 뛰어나지만 조형성에서 있어서도, 상형에 의한 창제원리를 내세우지 않더라도 매우 탁월한 조형 능력을 지니고 있다. 한글 자모를 이용하여 다양한 이미지를 만들 수 있는데, 여기서는 자음 4글자(히읗, 비읍순경음, 반치음, 비읍)로 사람의 얼굴 형상을 만들어 보았다. 2. 방 안의 어울림 : ‘無慾心閑 有書室香(무욕심한 유서실향)’이란 대구를 만들어 보았다. ‘욕심이 없으면 마음이 한가롭고, 책이 있으면 방안이 향기롭다’는 뜻으로, 無慾(무욕)과 有書(유서)에 의한 대조로 시작하는 듯하지만 기실은 내적인 心閑(심한)과 외적인 室香(실향)의 조화, 곧 마음과 환경의 어울림을 바라는 뜻에서 시도한 작품이다. 물론 한문과 한글의 조화도 기대하였다. 3. 풍류의 어울림 : ‘風流(풍류)’를 내용과 형식의 어울림을 생각하여 전서와 예서풍을 섞어서 표제어를 쓰고, 아울러 ‘삶의 멋과 앎의 맛에서 진정한 풍류가 나온다. -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 만세!’라고 협서하였다. 삶에 멋을 주고, 앎에 맛을 주는 서예에는 분명 풍류가 있다. 음악 반주에 맞추어 풍류를 의식하며 ‘力動(역동)’적으로 써보고자 하였다. 4. 두 눈의 어울림 : ‘半眼半心(반안반심)’이란 성어를 만들어 세상살이의 처세 방법으로 제시해 본다. 이해를 돕기 위하여 ‘반은 육안으로 반은 마음으로 세상 보기’라 협서하였다. 육안으로 겉만 보고 판단하면 일을 그르치는 수가 많다. 가끔은 눈을 감고 심안으로 대상을 살펴보면 새로운 발견을 하는 수가 많다. 이것이 창조의 원동력이다.   성 명: 권상호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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