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특강에 초대합니다.
삼가 소생의 특강에 초대합니다.
차가운 늦가을에 방문객 여러분들의
따뜻한 가슴이 그립습니다.
한해를 잘 마무리하기 위해 하루하루
알찬 나날을 보내고 계실 줄 압니다.
그럼에도 평소에 저를 마음 깊이 헤아려 주심에
늘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삼가 아뢰올 말씀은 불초한 소생의
고려대학교 ‘그린캠퍼스 미술제 특강’에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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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11월 4일(월) 11:30~12:30
장소: 고려대학교 100주년기념관 국제원격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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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외에도 당일 아침부터 고려대 내에서는
다양한 행사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또, 11월 2일(토) 저녁에는 성대 CEO과정에서
11월 12일(화요일)에는 IS투자클럽에서
특강 및 라이브 서예가 이어집니다.
귀한 인연 잘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여불비...
도정 권상호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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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호 프로필
스티브 잡스와 피카소도 심취했던 캘리그래피(calligraphy).
그 속에 숨은 에너지를 찾아 라이브 서예(live calligraphy)를 창시하고
국내외에서 350여 회 공연을 펼친, 먹탱이란 별명을 지닌 붓쟁이다.
어릴 때부터 가르치기를 좋아하여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
신일고등학교 교사, 수원대학교 미술대학원 서예 겸임교수,
풍덩예술학교 교장으로 일하고, 우리 말·글과 한문(漢文)에 관한 관심으로
경희대학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예에 대한 애정으로 대한민국미술대전 초대작가가 되어
세 차례의 국전 심사를 했고, 한국미술협회 이사, 서울미술협회 서예분과위원장,
한국예술문화원 부이사장 등의 직책을 거쳤다.
예술의 실천과 공유를 위하여 음악, 무용 등과 함께하는
라이브 서예를 중심으로 초대개인전 6회, 그 외 수백 회의 그룹전에 참가했다.
현재 에 문화칼럼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에 시와 서예 ‘심사굴’을 연재 중이고,
이 외에도 , 등에
시·수필·칼럼·서예 등을 연재한 바 있다.
저서로 (푸른영토),
(세계문예), 공동번역서로 (중문출판사)> 등이 있고,
‘목은 사군자시 연구’, ‘나제서풍 비교연구’, ‘水자의 자형변화와 운용원리’,
‘자연 인간 그리고 서예’ 등의 논문을 썼다.
2013.10.30
나를 찾아 떠나는 책길 여행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6
나를 찾아 떠나는 책길 여행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명징한 가을이다. 하늘만 남은 듯하다. 설악산에서는 10월 중순부터 눈이 내리고 얼음이 얼었다는 소식이고 보면 가을은 느닷없이 왔다가 엉겁결에 가버리는 야속한 계절인가 보다. 설악산에 ‘눈 설(雪)’자가 그냥 붙은 게 아니로구나.
봄과 여름은 밖으로 눈을 돌리는 계절이지만 가을과 겨울은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계절이다. 그래서 봄, 여름엔 외모에 많은 관심을 갖게 되지만 가을, 겨울엔 마음에 관심을 더 갖게 된다. 봄과 여름은 낮이 길고, 가을과 겨울은 밤이 길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가을엔 내 안의 나를 찾아서 여행을 떠나자. 나를 찾는 여행길은 책 속에 있다. 책 속에 있는 길은 걷지 않으면 남의 길이지만, 걸으면 나의 길이 된다. 책의 길 옆에는 진리의 샘물이 솟구친다. 진샘이라 하자. 진샘에는 영혼이 목마른 자를 위하여 언제나 착한 물이 넘쳐흐른다. 산업혁명 이후 생산기술의 발달로 물량주의와 일등주의에 지친 심신을 달래기 위해서는 진샘에서 흘러나오는 물에 영혼을 씻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물은 흘러야 깨끗하고 바람은 불어야 맑듯이, 육신은 움직여야 건강하고 영혼은 씻어야 행복하다.
책 속에 있는 길을 따라 걸어가는 마음 여행, 곧 책길 여행은 무엇보다 바쁜 삶에 여유를 주어서 좋다. 망중한(忙中閑)이랄까? 시간적 여유가 꼭 있어서 책길을 여행하는 것이 아니다. 책길을 여행함으로써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세상길을 통한 몸 여행은 육신에 활기를 불어넣어 주지만, 책길을 통한 마음의 여행은 우리의 영혼에 예지를 불어넣어 준다.
책을 가까이 하는 삶은 풍요롭다. 책속의 글이 숲이 되고 들이 되고 바다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편의 시는 외롭고 쓸쓸한 인생길에 연인이 되기도 하고, 한편의 소설은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을 열어주는 든든한 벗이 되기도 한다. 책길에서 만난 따뜻한 연인과 듬직한 벗이 고단한 삶에서 부딪히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가.
책길의 대지에는 생각의 씨앗이 떨어져 싹을 틔우고, 책길의 하늘에는 까만 글자가 별꽃이 되어 빛난다. 대지에 떨어진 생각의 씨앗이 하늘에서 별꽃으로 피어나니 책길 여행자의 몸은 어느덧 향기로 가득 찬다. 그 향기는 책길 여행객의 인품으로 대변된다.
책길에서는 동서고금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책길에서는 지역을 초월하고 시간을 초월하여 만나고 싶은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순간 나는 축지법 도사가 된다.
이 대목에서 국어와 놀아 보자. 책길은 글로 포장되어 있으므로 글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글 위에서 만난 사람은 글인이다. 글인은 나에게 글인카드, 아니 그린카드를 쥐여 준다. 그린카드를 가지고 있으면 녹색생활과 녹색독서를 즐길 수 있겠다. 그린카드는 찍은 카드가 아니라 손으로 그린 카드이기 때문에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카드이기도 하다.
그런데 세상의 모든 여행길은 일어서야 걸을 수 있지만, 책길 여행은 앉아서도 가능하다. 책길 여행에서 놀라운 일은 몸은 앉아 있어도 뜻은 일어선다는 점이다. 여기서 뜻이란 무엇을 하겠다고 마음다짐을 하는 것이다.
‘유지경성(有志竟成)’이란 말이 있다. ‘뜻이 있으면 마침내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물론 그 뜻은 올발라야 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꾸준히 노력해야 한다. 에는 ‘유지자사경성(有志者事竟成)’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줄여서 ‘유지경성(有志竟成)’이라 한다. 누구나 뜻을 세우면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니까 입지필성(立志必成)이라 하면 어떨까.
길은 걸어야 하고 책은 읽어야 한다. 걷는 자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고, 읽는 자만이 지혜를 거둘 수 있다. ‘걷다’라는 말 속에는 다리를 움직여 걷는다는 의미 외에, 곡식이나 열매 따위를 수확한다는 의미도 있다. 어디 그뿐인가. 일손을 멈춤도 ‘걷다’이고, 구름이나 안개가 흩어져 없어짐도 ‘걷다’이다. 그렇다면 길을 걸으면 질병이 걷히고, 책길을 걸으면 무지가 걷히겠군.
걷기 바람으로 길의 종류는 많아졌다. 둘레길, 올레길, 하늘길, 마실길, 억새길, 갈대길, 비렁길, 골목길, 산책길 등 부지기수이다. 책길도 다양하다. 고전길, 현대길, 시길, 소설길, 수필길, 희곡길, 교과서길, 참고서길, 동화길, 잡지길, 만화길, 서재길, 도서관길, 지하철길 등 끝이 보이지 않는다. 길은 항상 그곳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아무도 걷지 않으면 잡초가 무성해지고 마침내 사라지고 말 것이다.
감동은 행복의 별명이다. 이 가을에 마음 문을 활짝 열고 책길 여행을 떠나자. 문자의 숲 속을 걸으며 행간의 보물을 찾아내자.
책길을 걷다가 지치면 밖에 나가, 가끔은 고개를 들어 시린 밤하늘의 따뜻한 별들을 바라보라. 환희의 별다발이 안겨온다. 우리는 어둠 속에서 더욱 빛나는 별세상에 살고 있다. 이따금 거미줄에 매달린 찬란한 아침이슬을 보라. 종종 하늘 끝자락에서 온몸으로 부끄럼타는 저녁노을을 보라. 아침이슬과 저녁노을은 생명이 너무 짧아서 소름이 끼치도록 아름답다.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올 가을엔 낙엽의 짧은 춤을 관찰해 보라. 순간의 공연을 위해 그토록 긴 준비의 기간을 생각하면 차라리 전율이다. 우리는 이처럼 아프도록 멋진 세상에 살고 있다.
나를 찾아 떠나는 책길 여행에 오늘은 누구와 차 한잔 나누게 될까? 어떤 풍경에 느닷없이 가슴 뭉클한 감동을 맛보게 될까? 길은 길다. 책길도 길다. 기를 쓰고 걸어 보자.
* 급고출신(汲古出新): ‘고전을 탐독하여 새로운 것을 얻는다’는 뜻이다. 책을 읽으면 창의력이 생긴다는 말로 법고창신(法古創新)이나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비슷한 뜻이다.
* 독서이심(讀書怡心): 독서는 마음을 기쁘게 해 준다.
* 조로석하(朝露夕霞): 아침이슬과 저녁놀이란 뜻으로 짧은 게 아름답다는 뜻이다. 로키산맥에 올라 쓴 글씨이다.(2008)
* ‘고독’은 ‘고독과 벗하면 고독하지 않다’는 뜻으로, ‘끽다’는 ‘마음의 여유를 갖자’는 뜻으로 새긴 전각 작품이다.
2013.10.25
삶은 닮은 집, 삶을 담은 집 外
* 지혜로 지은 집, 한국 건축김도경 지음, 현암사대우주, 중우주, 소우주라는 말이 있다. 대우주는 대자연을 의미하며, 중우주는 집을, 소우주는 小我, 즉 나를 의미한다. 이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이다. 따라서 집은 사람과 자연을 연결하는 매개체이자 사람, 자연과 더불어 ㅎ나이며,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존재이다. 이는 한국 건축이 나에게 준 집에 대한 가르침이다.신영훈, * 삶은 닮은 집, 삶을 담은 집 - 김미리 박세미 채민기* 조선일보 화재의 연재 이제, 집은 사는{買) 것이 아니라 사는(住) 곳이다.현실을 담고 '사는 맛'을 돋워주는 19개의 집 건축 이야기* 인문학으로 읽는 건축 이야기 - 인류와 건축의 역사에 관한 흥미로운 탐색사람이 만든 가장 위대한 물건, 집* 집, 예술이 머물다. 쉬레이 엮음, 정세경 옮김오래 머물러도 싫증나지 않는 것은 그 집이 아니라 끝없이 펼쳐지는 꿈이다.집이란 공간의 이상 세계이지만 또 한편으로는 시간이라는 벽돌을 하나둘 쌓아 가는 공간이기도 하다.시간과 공산을 씨실과 날실처럼 엮은 것* 예술가의 작업실 - 박영택. 휴먼 아트물질과 연장 그리고 작가의 영혼이 뒹구는 창조의 방
2013.10.25
작은 집 큰 생각 - 임형남+노은주
2012 문화체육관광부 우수교양도서. 교보문고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지나가는 흔적을 담는다.도산서당은 일자형의 단순하고 작은 집이지만, 자신을 낮추고 남을 존중한다는 '敬'의 사상을 바닥에 깔고 단순함과 실용성과 합리성을 추구했다. 즉 그 집은 이황 자신이라는 현실과, 자신을 만들어 주고 지탱하게 해주는 책이라는 과거와, 그에게 학문을 배우는 학생들이라는 미래를 담는 집이다.작고 소박한 집에 우주가 담긴다. 생각이 담긴 집. 게다가 생각이 높고도 향기롭다면 더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우리는 대부분 집의 모양에 집착하고, 집의 크기에 집착한다. 현대의 집들은 점점 커지고 있다.보통의 인간은 아주 작게 태어나서 아주 작은 집(땅)으로 돌아간다.몸에 맞지 않는 옷처럼 집도 사람을 기형으로 만든다.사람들은 라이프사이클에 따라 집도 커져야 하고, 그래야만 사회적 성공을 이룬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화려한 집에 담기는 건 빈곤한 삶이다.안방과 손님방과 최소한의 부엌과 화장실, 그리고 서재가 되는 다락방을 담은 금산주택은 도산서당의 구성을 그대로 닮았다.---------------여는 글사람이 가장 잘 알고 있는 것이 자신의 몸이며, 가장 모르는 것이 또한 자신의 몸이다. 그런 현상은 가족과 집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우리는 집에서 나서 집에서ㅓ 자라고, 집에서 살다가 결국 집에서 인생을 마무리한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집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참으로 막연하다. 그래서 집이라는 단어는 일반명사라기보다는 추상명사에 가깝다는 느낌이 든다. '집으로 가는 길'... 무한한 평화를 느낀다.집이란 무엇인가.우리가 사는 곳이란 물리적인 의미가 있고, 영혼의 안식처 등의 심리적 철학적 의미가 있다. 거기에 재산과 계급의 상징이라는 사회적 의미까지 포함되어 있는 복합적이고 실질적이며 추상적인 의미까지 가지고 있는 단어다. 우리는 집에 크게 의존한다. 집이 우리를 묶어 놓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집에 얽매어 놓은 채 살고 있다.,, 바로 오늘, 지금 행복한 집, 우리에게는 그런 집이 필요하다.--- 도산서원 57~60세 지은 집. 옥골선풍의 단정하고 고귀한 풍모의 집.살기 위한 집, 보이기 위한 집. ... 우리의 그림자는 우리의 영혼보다 크다... 한 사람에게 절대 필요한 공간은 4평.집은 자기 실현이다.봄 - 자연은 아름답다. 꽃들에 둘러싸이다.여름 - 자연은 힘이 세다. 참아야지 별 수 없다. 집은 이야기다.가을에서 겨울 - 자연은 자연을 돌아간다.닫는 글- 집은 아직 따뜻하다막걸리가 좋으나 친구가 좋으냐 친구가 좋으냐 색시가 좋으냐 막걸리도 좋고 친구도 좋지만 막걸리 따라주는 색시가 좋아. 에헤야 데헤야....
2013.10.25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5 -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5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가을이 깊어지면 ‘ㅅ’이 ‘ㅆ’으로 바뀐다. 오잉? 날씨는 ‘시원’하다가 ‘썰렁’해지고, 마음은 ‘스산’하다가 ‘쓸쓸’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국어의 맛이다. ‘ㅅ’은 ‘사람, 삶, 사랑, 인(人), 인(仁)’을 연상케 하고, ‘ㅆ’은 두 사람이 나란히 ‘쌩긋’ 웃거나 ‘쑥덕거리는’ 이미지로 다가온다.
산뜻한 가을 날씨에 전국에서 축제가 한창이다. 축제에 참여하는 일은 세금을 돌려받는 적극적 행위라 할 수 있다. 참여하면 심신에 축복이 오고, 빠지면 축난다는 얘기다. 지난 주말에는 내 키만 한 붓 한 자루를 들고 박물관 도시인 강원도 영월의 ‘제16회 김삿갓 문화제’와 서울 강북의 ‘제4회 주민화합 한마음축제’에 참가했더니 오감이 만족을 넘어 춤을 추었다.
가을 축제는 다른 계절의 축제보다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봄 축제는 꽃이 많아 볼거리를 제공하고, 여름 축제는 물이 많아 더위를 잊게 한다. 가을 축제는 추수감사의 뜻이 짙고, 겨울 축제는 웅크린 몸에 생기를 불어넣어 준다. 질 좋은 축제는 볼거리, 들을거리, 먹을거리만 제공해주는 것이 아니라, 어울림 속에 즐길거리와 배울거리도 덤으로 제공해 준다.
축제란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주어진 특별한 의미를 기리거나 단체의 결속력을 다지기 위하여 벌이는 어울림 행사이다. 축제(祝祭)는 글자만 보면 제사의 뜻이 강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놀이 본능을 자극하고, 더불어 즐기는 문화 행사의 의미로 다가온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김삿갓 문화제’는 김삿갓 개인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한 축제이고, ‘주민화합 한마음축제’는 지역 주민과 상인들 사이에 공동체의 결속을 다지기 위한 축제라 할 수 있다.
오가는 길에 만나고 헤어진 산야도 계절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이따금 선선한 하늬바람을 맞으며 창공을 우러러보기도 하고 찬란한 황금빛의 대지를 굽어보기도 한다. 여름내 불볕 속에서도 하늘만 바라보며 부지런히 키를 키워왔던 논벼는 이제 자신을 지탱해준 대지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듯 살포시 고개를 숙이고 읍(揖)하고 있다.
올해는 태풍(颱風)이 우리나라를 패해갔기 때문에 대풍(大豊)이란다. 대풍(大風)과 대풍(大豊)은 양립할 수 없다. 안타깝게도 이웃 일본이나 중국에서는 가을 태풍으로 때아닌 고난을 겪고 있다. 올봄에 ‘우순풍조(雨順風調) 시화연풍(時和年豐)’이라고 써 붙인 입춘첩의 기원이 딱 들어맞았나 보다.
영월의 서예가 김태숙님의 안내로 일찌감치 김삿갓 묘소에 도착했다. 마을의 안녕과 축제의 성공을 기원하는 길놀이는 이미 길을 덮고 있었다. 김삿갓의 넋과 예술혼을 기리는 고유제(告由祭)에서는 초헌관 박선규 군수, 아헌관 대종회 대표, 종헌관 엄태성 문화원장의 순으로 잔을 올렸다.
난고(蘭皐) 김병연(金炳淵, 1807~1863)의 본관은 안동, 별명은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이다. 방랑시인 김삿갓이라 하면 틀을 벗어난 음풍농월이나 음담패설을 떠올리지만, 이는 잘못이다. 그는 180여 편의 한시를 남긴 훌륭한 시인이다. 전국을 떠돌아다니며 그때마다 즉흥시를 남겼는데, 그중에는 권귀(權貴)의 잘못을 꾸짖는 내용이 많아 풍자와 해학의 민중시인으로 불린다.
일찍이 이응수(李應洙)는 1930년대에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김삿갓의 시를 채록하여 1939년에 을 출판한 바 있고, 2003년에는 최석의(崔碩義)가 일본어로 번역하여 동경에서 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바 있다. 최석의는 김삿갓의 시를 ‘방랑, 해학, 금강산, 산수 누각, 사계 풍물, 인생 유감, 자화상, 연가, 인물, 언문·파격시(諺文破格詩), 영물시(詠物詩), 과시(科詩-長詩)’ 등의 12편으로 구분하고 있다.
양동식은 2005년에는 순천향대학교에서 ‘ 원전 연구’로 석사학위를, 2008년에는 같은 대학에서 ‘ 판본과 번역 양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바 있다.
이어서 영월다도회 주관의 헌다례(獻茶禮), 그리고 오전 마지막 순서로 서예 퍼포먼스 ‘라이브 서예’가 뒤를 이었다.
‘천지신명이시여, 영월을 복된 고을로 만들어 주소서……. 일월성신이시여, 영월에 희망의 빛을 내리소서……. 불초 소생 붓을 잡고 쓰나니, ‘난고풍류명인간(蘭皐風流鳴人間)’이라 하더이다. ‘난고 선생의 풍류가 인간 세상을 울리도다’라는 내용이다. 김삿갓 묘의 비석은 물론 상석과 혼유석까지 모두 자연석으로 세워져서 측은한 느낌이 든다.
다음은 ‘김삿갓길 걷기’이다. 흰 두루마기에 봇짐 지고, 삿갓 쓰고 막대 집고, 갈바람 따라나서는 무리를 보라. 중식 이후에는 소화도 시킬 겸, 산속 깊숙이 숨바꼭질하고 있는 김삿갓의 거처까지 다녀오는 행사가 이어졌다. 물소리 새소리에 귀를 씻는다. 죽장에 삿갓 쓴 오늘의 시선(詩仙)이 평생 하늘을 보지 않고 살았던 김삿갓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약수 실컷 마시고 거리의 시화전과 김삿갓 문학관을 둘러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언제나 가장 큰 장애물은 시간이다. 항상 동행하는 시간이지만 한 치의 양보도 없다. 동강 시스타 리조트에서 원주 문인들과 하룻밤 주담(酒談)을 나누고 아침 일찍 서울 길을 재촉했다. 서울 미아삼거리 일원에서 펼쳐지는 ‘주민화합 한마음축제’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움직이는 버스보다 더 포근한 요람은 없다. 낮이 밤이 되었다. 눈을 뜨자 서울이다. 편안한 마음으로 엄숙한 시간 속에 다시 나를 던진다.
조병렬 전 회장의 개회 선언과 김영계 현 회장의 내빈 소개로 축제의 문이 열렸다. 중앙무대에서는 노래자랑이 펼쳐지고, 차 없는 거리 한쪽에서는 풍덩예술학교 식구들이 축제에 예술의 옷을 입히고 있었다. 나는 광목을 널따랗게 펼치고 붓을 잡았다. 시민들의 소망 쓰기에서는 박겸수 구청장이 마무리를 지었다. 아나바다 장터, 도자기 만들기, 지점토 공예, 와인 시음…….
가을은 축제와 함께 여물어 간다. 소통과 화합의 목소리에 시리던 마음도 여물어 갈 것이다. 사람들의 얼굴이 석양과 함께 제법 단풍이 들었다. 설악산의 단풍도 그들만의 가을 축제를 벌이고 있겠지…….
어느덧 미아삼거리는 현란한 밤의 옷으로 갈아입고 고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상화(相和): 가을 축제처럼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서로 화목해질 수 있다.
최근 강원도 영월 ‘제16회 김삿갓 문화제’에서는 삿갓을 쓰고 막대를 짚고 걸어보는 ‘김삿갓길 걷기’ 행사가 열렸다.
2013.10.21
한글로 부르는 꽃 노래 새 노래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3
한글로 부르는 꽃 노래 새 노래
인간은 태어나서 말과 짓(행동)만 보여주다가 죽는다. 말과 짓은 본능의 영역이기도 하지만, 대개는 생각과 느낌의 산물이다.
그러면 글은 어디에서 나왔는가? 글은 말에서 나왔으며 말을 적는 수단이다. 글은 말의 내용을 써서 나타낸 결과물이기도 하다. 따라서 말이 없는 글은 없다. 말이 먼저 있고 글은 나중에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글을 만든 이유는 무엇인가? 말이 가지고 있는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극복하기 위해서이다. 한글은 우리말을 적는 수단이다. 한글 창제 전의 우리 선조는 모두 말은 할 줄 알았지만, 어려운 한자를 쓰고 읽을 줄 아는 사람의 수는 지극히 제한적이었다. 이에 세종은 백성과의 소통을 위한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할 문자가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고 한글의 전신인 훈민정음을 창제했다. 입으로 소리를 내고 귀로 듣는 말만 사용하다가, 손으로 쓰고 눈으로 보는 글자를 만들고 난 그 감동과 흥분은 얼마나 컸을까.
왕이 백성에게 선물로서 만들어준 한글, 유일하게 창제 과정이 정확하게 기록된 한글, 가장 과학적이고 독창적인 한글, 가장 실용적이고 익히기 쉬운 한글, 정보화 시대에 더욱 편리하고 아름다운 한글, 마침내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한글이다.
한글의 으뜸 장점은 익히기 쉬운 글이라는 데에 있다. 정인지 서문에 의하면 ‘지혜로운 사람은 아침나절이 되기 전에 이해하고, 어리석은 사람도 열흘이면 배울 수 있다. (智者不終朝而會 愚者可浹旬而學)’라고 했다. 게다가 지금은 ‘ㆆ, ㅿ, ㆁ, ㆍ’ 등의 넉 자가 줄었으니, 24자만 익히면 되지 않는가.
외국인에게 한글을 더욱 쉽게 가르치는 방법은 없을까? ‘기본자음 5자(ㅁ, ㅅ, ㄴ, ㄱ, ㅇ)의 발음기관 상형, 기본모음의 3자(ㆍ, ㅡ, ㅣ)의 천지인 상형’을 설명하는 두 장의 그림이면 충분하다. 기본자음 5자의 순서를 달리한 것은 발음기관 위치의 순차적 이동에 따른 것이다. 훈민정음 해례본의 ‘아음(牙音), 설음(舌音), 순음(脣音), 치음(齒音), 후음(喉音)’의 순서보다 ‘입, 이, 혀, 혀뿌리, 목구멍’ 순서로 가르치면 훨씬 이해가 빠르다.
그리고 나머지 자음은 기본자에다 금을 하나씩 더해가면서 지도하면 된다. 영어와 비교해 가면서 모양이 비슷하면 발음도 비슷하다는 점을 이해시키면 한글이 영어보다 더 과학적이라는 사실을 신비롭게 깨닫게 된다.
ㅁ-ㅂ-ㅍ, ㅅ-ㅈ-ㅊ, ㄴ-ㄷ-ㅌ, ㄱ-ㅋ, ㅇ-ㅎ (닮음)
m-b,p-p, s-j-ch, n-d,t-t, g,k-k, ng-h (닮지 않음)
모음은 더욱 쉽다. 동쪽에 해가 있으면 ‘ㅏ’, 서쪽에 해가 있으면 ‘ㅓ, 지평선에서 해가 떠오르는 글자는 ‘ㅗ’, 해가 지는 글자는 ‘ㅜ’로 설명한다. 해가 동쪽에 있거나[ㅏ], 해가 떠오르는 모양[ㅗ]이면 양성모음으로 밝은 소리가 나고, 해가 서쪽에 있거나[ㅓ], 해가 지는 모양[ㅜ]이면 음성모음으로 어두운 소리가 난다. ‘밝아, 솟아’는 밝은 소리, ‘어두워, 저물어’는 어두운 소리가 난다.
‘ㅐ, ㅔ, ㅚ’와 같은 단모음만 주의하면 나머지 이중모음은 쓰는 순서대로 발음하면 된다. 참으로, 아침에 배울 수 있는 글 ‘아침글’, 화장실에서도 배울 수 있는 글 ‘통싯글’, 상놈의 글이 아닌 선비의 글 ‘언문(諺文)’, 남성 전용이 아닌 여성도 쉽게 배울 수 있는 글 ‘암글’이로다. 옳거니.
다음은 ‘ㅎㅏㄴㄱㅡㄹ’처럼 풀어쓰지 않고 ‘한글’처럼 음절 단위로 모아쓰기를 가르치면 끝이다.
창제 당시는 점·획을 엄정하게 구분하고 있는데, 이는 가획원리에 대한 창제자의 의지가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ㄹ’과 달리 ‘ㄷ, ㅌ’의 첫 획은 ‘ㄴ’보다 앞부분이 튀어나왔다. ‘ㅎ’의 첫 획은 점이 아니므로 ‘ㅗ’의 점과는 달리 내리 그어 붙였다. ‘ㅂ, ㅍ’은 ‘ㅁ’에서 나왔기 때문에 중간이 휑하게 비어있고, ‘ㅈ, ㅊ’은 ‘ㅅ’ 위에 가획했기 때문에 뾰족한 ‘ㅅ’ 끝을 다치지 않기 위해 살짝 얹어 놓았다.
옛날에는 붓으로 쓰지 않고, 칼로 새겼기 때문에, ‘선’이라 하지 않고 ‘획’이라 했다. 획을 획 그으면 ‘금’이 생긴다. 그어서 씨를 뿌리면 ‘글씨’이다. ‘긋다’에서 파생된 단어는 ‘금’, ‘글’, ‘글씨’, ‘긁다’, ‘그리다’, ‘그림’, ‘그립다’, ‘그리움’, ‘그늘’, ‘그림자’, ‘그을다’, ‘그을음’, ‘글(契)’ 등과 같이 매우 많다. 금을 그으려면 그을음으로 만든 먹이 필요하다.
정보화시대에 오달지고(야무지고) 암팡진(다부진) 한글은 더욱 빛난다. 한글을 온이로(모두) 사용하여 꽃 노래, 새 노래 부르며 마칠까 한다.
ㄱ(기역)은 개나리
ㄴ(니은)은 나팔꽃
ㄷ(디귿)은 도라지
ㄹ(리을)은 라일락
ㅁ(미음)은 무궁화
ㅂ(비읍)은 봉선화
ㅅ(시옷
2013.10.11
섣달 그믐날 태어난 한글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3
섣달 그믐날 태어난 한글 크고 유일한 한국의 한글
한글(훈민정음)이 세상에 처음 알려진 날은 세종 25년(1443) 12월 30일이었다. 에 기록된 당일의 2번째 기사이자 한해의 마지막 기사이다.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를 지었는데, 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고, 초성·중성·종성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 무릇 문자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고,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하는 것이 무궁하니, 이것을 ‘훈민정음’이라고 일렀다.(是月 上親制諺文二十八字 其字倣古篆 分爲初中終聲 合之然後乃成字 凡干文字及本國俚語 皆可得而書 字雖簡要 轉換無窮 是謂‘訓民正音’)
섣달 그믐날에 특종으로 짤막하게 기록한 57자의 한글 창제 기사치고는 너무나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28자로 이룬 문자혁명……. 여기에 숨어있는 진실은 무엇인가?
첫째, ‘이달에 임금이 친히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는데’라는 말로 볼 때, 훈민정음(訓民正音)은 세종 ‘혼자서’ 지었다는 사실이다. 이전의 어떤 기록에도 훈민정음에 관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세종은 아무리 애를 써도 우리말을 한자로 온전하게 표기하기는 불가능함을 깨닫고, 민족적 숙원을 풀기 위해 친히 혼자서 만들었다. 깜짝쇼라고나 할까? ‘어제서문(御製序文)’이나 위의 기록에 ‘친제(親制)’라고 씌어 있음이 이를 단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집현전 학자를 불러 모은 것이나 최만리 등의 원로 학자들이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은 이듬해 일이었다.
둘째, ‘이달에’로 기사가 시작하는 것을 볼 때, 훈민정음은 세종이 ‘한 달의’ 고심 끝에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이렇듯 철학적이고 과학적인 글자를 한 달에 완성했다면 세종은 분명 불세출의 언어학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묘호 ‘세종(世宗)’의 의미도 ‘세상의 으뜸’이라는 뜻이다. 기록은 ‘이달에’라고 했지만, 필연코 오랫동안 노심초사하였으리라……. 세종이 평생 안질과 피부병을 달고 산 걸 생각하면 짐작이 간다. 그러나 정음 창제를 위한 고심의 과정에 관한 기록이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세종은 반대 상소를 이미 짐작하고서 정음을 몰래 만들어 느닷없이 발표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셋째, ‘언문(諺文)’이란 말은 한글을 깎아내린 말이 아니다. 국어사전에는 언문의 뜻을 ‘한문에 대하여 한글로 된 글을 낮추어 이르던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언어사대주의에서 나온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문자학적으로 보면 ‘언(彦)’은 ‘선비, 훌륭한 사람, 크다’의 뜻이므로 ‘언(諺)’은 ‘선비의 말, 훌륭하고 큰 말’이란 뜻이다. 또 다른 예도 있다. ‘동이(東夷)’라고 할 때의 ‘이(夷)’도 한자자전에서 ‘오랑캐’라고 풀이해 놓았는데 이것도 잘못이다. ‘이(夷)’자는 ‘큰 활, 평정하다. 온화하다’의 뜻이므로 ‘동이(東夷)’란 ‘활 잘 쏘는 민족, 밖으로는 세상을 평정하고 안으로는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란 뜻으로 풀이해야 옳다고 본다.
넷째, 기사에 언문(諺文) 28‘자(字)’를 지었다고 하면서도 ‘훈민정자(訓民正字)’가 아니라 ‘훈민정음(訓民正音)’이라 이름붙인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는 정음은 ‘소리글자[표음문자(表音文字), 자질문자(資質文字)]’라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서라고 본다. 글자 하나하나가 발음과 상관없이 일정한 뜻을 나타내는 중국의 한자(漢字)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다섯째, 왜 하필이면 ‘28자’일까? 이는 동양의 천문학에서 하늘의 별자리를 28자리로 나눈 28수(宿)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오잉?
여섯째, 글자는 옛 ‘전자(篆字)’를 모방하였다고 했다. 여기서 전자(篆字)는 전서체(篆書體)란 한문 서체를 의미한다고 본다. 전자의 특징 세 가지는 ‘획의 굵기가 같다는 점, 좌우가 대칭이라는 점, 형태가 대체로 네모졌다는 점’ 등이다. 그래서 그런지 훈민정음 해례본에 쓰인 글자체를 살펴보면 훈민정음체와 이를 풀이하는 한자 해서체와는 모양이 아주 다르다. 또한 순음(脣音) ‘ㅁ’이 ‘입 구(口)’와 닮은 점, 치음(齒音) ‘ㅅ’이 ‘이 치(齒)’와 닮은 점, 유음(流音) ‘ㄹ(리을)’이 ‘새 을(乙)’과 닮은 점 등도 흥미롭다.
일곱째, 디지털 시대에 한글이 더욱 돋보이는 것은 한글의 과학성에 있다. ‘그 글자는 초성(初聲)·중성(中聲)·종성(終聲)으로 나누어 합한 연후에야 글자를 이루었다.’라는 대목을 볼 때, 세종은 한글을 음절로 뭉뚱그려 만든 것이 아니라, 음절을 초·중·종 3성의 음소 체계로 나누는 이론을 세웠으니 이는 인류 언어학사상 초유의 사건이었다. 한글이 살아있다는 것은 바로 3성의 유기적인 결합 때문이다. 앗싸. 같은 소리글자 중에도 일본의 ‘가나’는 한 음절이 한 글자로 되어 있어 그 이상은 나눌 수 없는 음절문자가 아니던가.
여덟째, ‘무릇 문자(文字)에 관한 것과 이어(俚語)에 관한 것을 모두 쓸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문자’는 한자를, ‘이어’는 우리말을 가리킨다. 정음으로는 세계 모든 언어의 발음을 적을 수 있다. (그렇다면 이어를 사용하는 섬, ‘이어도’는 우리 땅이 확실하군.^^) 그런데, ‘이어’에 대한 사전 풀이가 마음에 걸린다. ‘항간에 떠돌며 쓰이는 속된 말’, 또는 ‘상말’로 풀이하고 있으니 말이다. 백성이 나라의 주인이고, 이(俚)는 속(俗)과 같은 뜻이니, ‘시골에 사는 순박한 백성의 말’ 정도로 풀이하고 싶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2항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했다.
아홉째, ‘글자는 비록 간단하고 요약하지마는 전환(轉換)하는 것이 무궁하다.’는 데에 한글의 무한 가능성이 있다. 너무 쉬워서 ‘통싯글(화장실에서 똥 누는 사이에 익힐 수 있는 글자), 암클(여자나 배울 글자)’처럼 제대로 대접받지 못한 웃지 못할 글자이다. 붓글씨로 한글을 오랫동안 쓰고 있을 때, 문득 꿈에 한글 자음도(子音圖)와 모음도(母音圖)가 나타난 적이 있다. 한글이 얼마나 간단하면서도 편리하고 과학적인 글자인지 깨닫게 해 주었다. (그림)
한글은 세계 최초의 창제인물과 창제원리를 가지고 있는 글자이다. 어리석은 백성을 위하여 만든 인류 최초의
2013.10.05
가을 하늘 환히 열다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2
가을 하늘 환히 열다
완연한 가을이다. 계절감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애국가 3절을 불러본다.
“가을 하늘 공활(空豁)한데 높고 구름 없이, 밝은 달은 우리 가슴 일편단심(一片丹心)일세. 무궁화 삼천리 화려 강산, 대한 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
가을은 풍요의 계절이라 지상은 꽉 찬 느낌을 주지만 하늘은 공활하여 구름 한 점 없이 텅 비고 드넓기만 하다.
‘하늘’이라 하면 연상되는 단어들이 많다. 가을, 아들, 한글, 한산(북한산, 남한산), 햇빛, 하얗다, 환하다, 한새(황새), 하루, 하릅(소·말·개 등의 한 살 된 것), 하늬바람(가을바람), 하늘(거리다), 한들(거리다), 간들(거리다), 하물하물(흐물흐물)…….
하늘은 지평선이나 수평선 위로 보이는 무한대의 드넓은 공간을 말한다. ‘하늘 천(天)’자를 보면 사람[大]의 머리 위에 이고 있는 길게 펼쳐져 있는 허공[一]을 하늘로 생각했다. 갑골문을 보면 ‘大’ 위에 ‘口’자나 ‘二(上의 갑골문)’자를 얹어 놓았는데, 하늘의 둥근 모습을 갑골에 새기기 힘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口자로 대신했다고 본다. 참고로 한자에는 ‘둥글 원(圓)’자에조차 동그라미가 없다. 글씨를 새기지 않고 주조했던 금문에 와서야 머리 위에 둥근 점을 찍고 있다. 훈민정음(訓民正音)에서 모음을 창제할 때, 하늘을 둥글다고 생각하여 ‘아래 아’를 만든 것은 탁견이다. 첨성대(瞻星臺), 옛 엽전 등에서도 전통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학설을 따르고 있다.
‘Tengri’는 터키어, 몽골어, 퉁구스어로 ‘하늘, 태양, 무격, 신’의 뜻이 있다. 삼한시대에 소도(蘇塗)를 지배하며 하늘에 제사 지내는 일을 주관하던 사람도 이와 비슷하게 발음했을 것인데, 음차하여 ‘天君(천군)’으로 기록하고 있다. ‘단군(檀君)’이란 말도 무격(巫覡)을 뜻하는 ‘텡그리, 대가리’의 음차로 판단된다. 결국 ‘天君’이나 ‘檀君’이나 같은 말이라는 얘기이다. ‘단골, 당골’도 여기에서 온 말이 아닐까?
에 의하면 구석기시대는 ‘’신(神), 신석기시대는 ‘’신(神), 토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를 거쳐 철기시대 초기까지는 ‘’신(神) 시대로 보고 있다. 삼국시대에는 이 세 신을 한 몸으로 보고 삼신(三神)이라 한다는 것이다. 동체이명(同體異名)이요, 삼위일체(三位一體)로다. 그리고 통일신라 말엽 및 고려조에 이르러서는 삼신을 한데 묶어 다만 ‘한님’이라 하였다는 것. 잘헌다.
‘하늘’의 어원에 대하여서도 여러 설이 있지만, ‘한날[큰 태양]’이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이 외에도 ‘큰 울(울타리)’, 또는 ‘큰 우리(공동체)’ 등의 설도 있다. ‘하늘-아들’, ‘땅-딸’의 관계도 만만찮다. 얼쑤.
‘하나’, ‘하루’, ‘홀로’, ‘혼자’ 등도 ‘하늘’에서 온 것으로 보인다. 신라 경덕왕 때 희명(希明)이 지은 향가 에는 ‘하나’를 ‘一等(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12세기의 에서는 ‘하나’의 발음을 ‘一曰河屯(둔)’으로 소개하고 있다. 여기에서 분명한 것은 하나의 어근은 ‘(하늘, 해, hot?)’이고, 여기에 접미사 ‘-아[낱, 箇]’가 붙으면 ‘하나’가 되고, ‘[日]’이 붙으면 ‘>>>>하루’가 된다. 굿하는가? good이로다.
'하늬'는 서쪽을 가리키는 순우리말이다. 따라서 '하늬바람'은 서풍, 곧 가을바람이 된다. 하늘과 가을도 운명적 만남이다.
10월 3일은 개천절이다. 기원전 2333년에 단군이 왕검성에 도읍을 정하고 나라 이름은 조선(朝鮮)이라 하고 즉위한 날을 기념하여 제정한 국경일이다. 남북한이 다 같이 우리나라의 생일로 보고 있으니, 동질성 회복의 실마리로 삼아야 하겠다. 이날만은 이웃 나라의 입김을 배제하고 남북만의 대동단결을 위한 행사를 치러야 한다. 개천절(開天節)의 의미는 ‘하늘이 열린 날’이 아니라 ‘하늘을 연 날’이기 때문에 통일도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통일의 주체는 당연히 단군이다. 한민족 만세! 단군민족 만세! 하늘민족 만세!
단군기원(檀君紀元), 곧 단기(檀紀)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동시에 이를 사용해 오다가 1962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서기(西紀)를 사용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사서에 등장하는 ‘환인(桓因), 환웅(桓雄)’ 등은 ‘하늘’의 옛 발음과 관련이 있고, 북부여의 시조 ‘해모수(解慕漱)’와 동부여의 시조 ‘해부루(解夫婁)’는 각각 ‘해’와 관련이 있으며,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朴赫居世)’ 역시 ‘붉은 해’의 음차로 보인다.
따지고 보면 모든 민족에게 원초적 신앙 대상은 하늘이었다. 하늘은 ‘늘’, ‘한결같이’ 인간의 머리 위에서 인간을 지키고 감싸왔다. 그래서 하늘 보고 손가락질하거나, 주먹질하면 큰일 나는 것으로 여겼다. 하늘을 향하여 침을 뱉어도 소용없다. 그만큼 하늘은 허허로우면서도 잘못된 행동에는 그대로 응징을 한다.
아이를 낳아도 하늘을 외면할 수 없다. 여성의 대화 중에 ‘하늘을 보아야 별을 따지.’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임을 보아야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하늘을 빌려 은근하게 표현한 것이다.
요즈음 안팎의 정치가들이 하늘 무서운 줄 모르고 하는 말이나, 하늘을 보지 않고 자란 세대들의 행동이 무섭다. 환경오염으로 대지를 망가뜨린 것도 모자라 이제는 언행으로 하늘마저 오염시키지나 않을까 염려된다. 하늘이 두 쪽이 나더라도 이제야말로 천지(天地)를 굳건히 지켜나가야 공생(共生)할 수 있다. 기고만장(氣高萬丈)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제멋대로, 감각적으로, 즉흥적으로 날뛰어서는 곤란하다. 인간이 없는 아름다운 지구, 상상만으로도 행복하다. 영원한 푸른 별... 생각만으로도 행복감이 하늘하늘 피어오른다. 대지가 노란 계절에 하늘마저 노래질 사건사고는 제발 사라졌으면 한다.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의 건국이념은 이제 개인적 고민, 민족적 갈등을 치유할 인류의 화두가 되어야 한다. 7천만의 화두를 넘어 70억의 화두를 위하여, 건배!
그림: 금문 ‘하늘 천(天)’자를 중심으로 천지인(天地人)의 조화를 나타내고 있다.
글씨: 예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은 이제 인류 공생을 위한 화두가 되어야 한다.
2013.09.28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11
나를 기르는 길
- 길이 최고의 길라잡이다 -
나를 기르는 것은 언제나 길이다. 길이 나를 기른다. 나를 기르기 위해 언제나 앞길에 서서 나를 기다리는 길이다. 길쭉하게 잘 생긴 길의 기다림, 그 황홀한 대길(大吉)의 유혹!
그런데 그 길은 길다. 길은 길기에 길이다. 길은 길지만, 기(氣)지개 켜며 걸어가야 한다. 먼 길엔 기지개가 약이다. 길을 걷지 못하면 방콕? 하게 되고, 곧이어 삶의 길은 끝난다. 길을 걷는 것이 최고의 건강법. 맞는 말이다. 기어서라도 가야 하는 길은 나의 최고의 멘토, 최고의 길라잡이다. 얼쑤.
지난 계절에 논밭에 웃자란 잡풀, 곧 김을 매느라 농부는 머리에 김이 났지만, 오늘의 수확이 있기에 농부는 기쁨으로 기를 뿜으며 귀성객을 맞이한다.
명절의 톱뉴스는 어김없이 길이다. 뭍길, 바닷길, 하늘길 소식이다. 조금 있으면 하늘길의 선수 기러기도 승리의 V자 형으로 길게 줄지어 귀향하리라. 허걱. 다들 정(情)의 허기를 채우느라 바쁜 여정이었으리라.
즐거운 한가위에 안전한 고향길이었다면 대길이다. 고향길이 고생길이었더라도 그 길은 행복길이다. 오묘하게도 고생지수와 행복지수는 정비례한다. 이는 ‘고생 신(辛)’자 없이는 ‘행복 행(幸)’자를 쓸 수 없는 이치와 같다. 행복에도 탄성이 있다. 사고 등으로 탄성 범위를 벗어나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이르면 행복을 위한 고생이 아니라 불행이다.
명절의 고향길은 삶을 되새김질을 해 보는 길이다. 늘 그 길이지만 왠지 고향길은 우리의 몸과 맘을 늘 새롭게 해 주는 활력소, 원기소가 된다. 한가위의 고향길이 그리움의 길이라면, 귀갓길은 생활의 길이다. 그리움의 길은 마음이 오가는 길이지만, 생활의 길은 명리(名利)가 오가는 길이다. 그리움의 길은 멀고 막혀도 참을 수 있는 인내의 길이라면, 생활의 길은 꼭 일궈내야 할 의지의 길이다.
고향은 언제나 그리움과 고통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멀리서 보는 고향은 언제나 애틋한 그리움의 몽유비경(夢遊秘境)으로 다가오지만, 하루 이틀 머물다가 보면 궁색불편(窮塞不便)의 지역으로 느껴진다. 고향을 찾는 이들 중에는 쫓기듯 도망치며 객지생활을 해 왔음에도 엿장수처럼 요란하게 떠드는 이들도 있고, 금의환향(錦衣還鄕)의 멋을 은근히 부리며 자랑하고 싶은 이들도 있으리라. 시집 장가 등쌀에 고향길을 접은 아들딸도 있을 것이고, 야속한 농가 빚에 쪼들릴세라 고향에 가지 못한 이들도 있으리라. 집안 모두가 고향을 떠나 제2, 제3의 고향에서 보내는 이도 있을 것이고, 고향을 북녘에 두고 가고 싶어도 못 가는 한(恨) 서린 실향민도 있으리라. 있는 길이 막히면 기막힌 일인가, 길 막힌 일인가? 길사람이든 방사람이든 모두가 정겹게 다가옴은 똑같은 홍익인간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났기 때문이리라.
오가는 길에 고개를 들면 하늘은 온통 쪽빛 바다요, 목을 돌리면 대지는 어디나 황금 구름이다. 켜켜이 밀려오고 밀려가는 갈맷빛 산들도 탱글탱글 익어간다. 골골을 할퀴며 거침없이 흐르던 개천은 여름의 상처를 말쑥이 지우고, 이제는 숨을 고르며 조용히 누워 흐른다. 물빛은 깊은 속까지 다 드러내고, 카멜레온처럼 주변의 가을빛과 어울린다. 찾아가는 길은 바쁜 길이지만, 돌아오는 길은 여유의 길이어야 한다. 숨가쁘게 달려간 동경(憧憬)의 길 이후에는 자신을 한번 되돌아보는 한가한 되새김길이 필요하다.
고향길과 인생길은 무엇이 다른가. 고향길은 가고 오는 길이지만, 인생길은 오고 가는 길이다. 고향길은 갈래가 많지만, 인생길은 외길이다. 고향길은 여러 차례 오가며 정을 주고받을 수 있는 길이지만, 인생길은 한번 가고 나면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일방통행길이다. 어쩔거나…….
길은 참으로 다양하다. 빗길은 비켜 가면 되고, 눈길은 눈여겨보며 가면 된다. 돌길 자갈길은 지압 효과 있어 좋고, 오솔길 모랫길은 낭만이 있어 좋다. 곧은길 한길이라도 조심해 걸어야 하며, 진창길 비탈길이라도 절망해서는 안 된다. 돌너덜길을 가다가 갈림길 홀림길을 만나면 당황하지 말고 암중모색(暗中摸索)해야 한다. 대체로 선현이 걸었던 길이 정답이다. 오늘의 나의 길은 뒤따르는 사람의 이정표가 될 수도 있으므로 더욱 조심해서 걸어야 한다. 막다른길 고샅길을 만나면 거침없이 다시 나와 새 길을 찾아야 한다. 길이 아니면 가지 말고, 말이 아니면 듣지 말라 했다. 이따금 길섶에 앉아 지나온 뒷길을 돌이켜보고, 가야 할 앞길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 괜히 길모퉁이에 앉아 길맨 광고 보며 허튼수작하지 말고 벌떡 일어나 걸어야 한다. 그러면 놀랍게도 새로운 길이 보인다. 선택한 길에도 옆길 샛길이 있다. 옆으로 새지 말고 바른길로 쭉 나아가야 할진저. 얼쑤.
속담에는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고, 아는 길도 물어 가랬다. 바보 아닌가? 지금이 어느 시대인데? 길도우미 내비걸과 손안의 스마트보이가 알아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세상인데……. 하지만 이 속담에는 인정(人情)이 묻어 있고, 세심한 주의를 당부하는 말기가 숨어있을 깨달아야 한다. 지름길 빠름길만을 고집하지 말자. 가끔은 돌아가는 길이 빠른 길이란 역설의 지혜도 배워야 한다.
막힌 길은 뚫고, 끊긴 길은 연결하고, 좁은 길은 넓히고, 없는 길은 만들어 가며 살아가자. 그러면서 개인적으로는 행복의 길, 자유의 길을 놓쳐서는 안 되고, 국가적으로는 평화의 길, 공생의 길을 놓쳐서는 안 된다. 남북의 막혔던 길, 더디던 길이 다시 열리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길이길이 진정성 있는 길이길 바란다. 이쪽 길도 깨끗이 쓸어놓고 진심으로 기다리자. 개성공단의 길,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길이 열리고, 이참에 통일의 길까지 펑 뚫렸으면…….
길은 길다. 길은 걷는 자에게만 길(吉)하다. 대처럼 쭉쭉[竹竹] 뻗은 통일(統一)의 길은 절대 아니다. 가로놓인 일(一)자를 보더라도 결코 쉽지 않다. 곤(困)하더라도 이번에는 뚫을 곤(丨)으로 나가야 한다. 일(一)을 위한 곤(丨)의 선택. 잘헌다!
그림: 한글로 ‘길’자를 쓰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뭍길, 바닷길, 하늘길에 산길을 통하여 인생길을 더듬어보고자 했다.
글씨: ‘푸르고 높은 마음’을 정음 고체로 썼다.
2013.09.21
바람도 쐬고 추석도 쇠고
바람도 쐬고 추석도 쇠고
구르지 않으면 구름이 아니고, 흐르지 않으면 강이 아니다. 어쩌면 하늘의 강은 구름이요, 땅의 구름은 강일지도 모른다. 오는 줄 몰라도 오는 추석인 걸 보면, 가는 줄 몰라도 가는 세월이다. 그런데 굽이치며 흘러야 할 강인 줄 알면서도 물길을 막는 인간을 보면, 어이 하리야, 어이 하리야! 흘러야 강이지 막히면 강이 아니다. 호수다. 인간이여 어찌타 호수(好手)로 악수(惡手)를 두나니. 가는 세월이나 막지 흐르는 강물은 왜 막나.
계사년 추석(秋夕)도 계산해 보니 며칠 남지 않았다. 속절없이 흐르는 세월 속에 설날과 함께 2대 명절의 하나로 꼽히는 추석 명절도 절로 다가온다. 추석은 그 인기만큼이나 별명도 많다. 한가위, 중추절(仲秋節), 가배(嘉俳), 팔월대보름…….
달력에 ‘추석’이라 씌어 있는 것으로 볼 때, 이 명칭을 대표로 사용하고 있는가 본데, 개인적으로는 ‘추석’보다 순우리말인 ‘한가위’를 더 좋아한다. ‘추석(秋夕)’이라 하면 글자의 의미대로 ‘가을 저녁’을 뜻하니 쓸쓸한 느낌이 들지만, ‘한가위’라 하면 왠지 여유 있고 넉넉하게 다가온다. ‘옷은 시집올 때처럼 음식은 한가위처럼’이란 속담에서 보듯이 한가위에는 먹을거리가 푸짐하다.
한가위라는 말의 어원은 시간적으로 가을의 ‘한가운데’를 뜻한다. 그래서 중추절(仲秋節)이라 부르기도 한다. 중국에서는 아예 ‘가운데 중(中)’자 중추절(中秋节)이라 하고, 음력을 사용하지 않는 일본에서는 양력 8월 15일을 전후로 오본(お盆)이라 하여 연휴를 즐긴다.
음력으로 7, 8, 9월이 가을인데 중추(仲秋)는 곧 8월에 해당하고, 중추절(仲秋節)은 8월의 한가운데, 곧 8월 보름을 가리킨다. 결과적으로 중추절은 가을의 정중앙에 있는 날이다. 보름의 고어는 ‘보롬’인데 ‘블옴(배부름)’, ‘곰(밝음)’과 의미가 서로 통한다. 보름달은 볼륨(volume)이 있어 좋다.^^ 달로서는 배가 가장 부르고 밝기도 으뜸이기 때문이다. 이날만은 하늘의 달도, 지상의 인간도, 제사상의 배마저도 모두 평소의 배로 배가 부르다.
가배(嘉俳)는 가위의 옛말로, 『삼국사기(三國史記)』 유리이사금(儒理尼師今) 9년 조에 나타난다. “7월 보름부터 길쌈을 시작하여 팔월 보름에 그 승부를 가렸는데, 진 편이 술과 음식을 갖추어 이긴 편을 대접하였다. 이때 가무백희(歌舞百戱)를 행하였으니, 이를 가배(嘉俳)고 하였다.”라는 것이다.
추석(秋夕)의 반대말은 춘조(春朝)렷다. 옛날에 천자께서 봄 아침에는 해님께 제사를 올리고 가을 저녁에는 달님께 제사를 올렸다. 지금도 천자가 천지일월(天地日月)에 제사지내던 사단(四壇)이 남아있는데, 월단(月壇)도 그중의 하나이다.
추석은 철저하게 달과 관련한 명절이다. ‘추석(秋夕)’의 ‘저녁 석(夕)’자는 동산에 달이 반쯤 얼굴을 내민 모습이다. 달이 완전히 얼굴을 내밀면 ‘달 월(月)’이 된다. 그래도 월(月)자의 모양만 두고 보면 만월(滿月)과는 거리가 멀다. 반달 모양이다. 기운 방향으로 볼 때 반달 중에서 하현달이 아니라 상현달이다. 상현달은 미완(未完)의 달이기 때문에 희망을 상징한다.
추석에는 햅쌀로 송편을 빚고 햇과일을 장만하여 차례를 지낸다. 보름달을 닮은 온달 송편을 만들기도 하고, 상현달을 닮은 반달 송편을 만들기도 한다. 특별히 솔잎을 사용하는 이유는 솔잎의 ‘1’자와 달의 ‘0’자 모양이 음양으로 어울리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송편을 만들 때 솔잎을 사용하면 서로 엉겨 붙지 않고, 또 솔향이 떡에 배면 맛도 좋기 때문이다. 이때다. 동산에는 어제 진 달 떠오르고, 솥 안에는 송월(松月)이 부풀어 오른다. 얼쑤.
송편이라 할 때 ‘송(松)’은 ‘솔’과, ‘편’은 ‘병(餠)’과 발음이 서로 통한다. 중국에서는 이날 송편 대신에 보름달을 닮은 월병(月餠)을 먹는다.
전통적으로 추석에는 한 해 농사를 잘 지은 것에 감사하며 조상님께 차례(茶禮)를 지낸다. 만일 외국인이 물어오면 ‘Chuseok is the Korean Thanksgiving Day.’ 정도로 소개하면 되겠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차 대신에 술을 제상에 올리는 것으로 보아, 차례가 아니라 주례(酒禮)가 되었다. 그래도 차례라고 하는 이유는 아마 ‘주례’라 하면 다른 의미와 충돌이 일어나기 쉽지만, ‘차례’라 하면 경건하고 순차적인 느낌마저 들기 때문으로 본다. 순서를 가리키는 ‘차례’는 고어 ‘뎨(次第)’에서 온 말이며, 한자어 차례(次例)는 나중에 음차한 말로 보인다. ‘뎨 > 차례’의 변화는 ‘목단(牧丹) > 모란’, ‘보뎨(菩提) > 보리’의 변화와 같은 맥락이다.
현시점에서 추석이라 하면 어떤 단어가 연상되는가? 보름달, 고향, 친척, 민족 대이동, 귀성객, 벌초, 성묘, 한복, 차례, 보름달, 송편, 연휴, 날씨, 풍요로움, 선물, 상여금, 용돈, 여행, 특선영화, 그리움 등 그 끝이 보이지 않는다.
청소년에게는 아마 뭐니 뭐니 해도 머니(money)가 우선이겠지만, 어른의 경우 나이가 들수록 원시안이 되어서 그런지 몰라도, 먼 고향과 옛 친척을 찾고자 한다. 그리운 불알친구를 만나는 일도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다. 곧 민족 대이동이 시작되리라. 뭍길은 물론 물길, 하늘길까지 만원이 예상된다. 고향길엔 언제나 교통체증이 심하지만 그리움이 이를 거뜬히 감내하게 한다.
‘고향길’엔 뭔가 모르게 ‘고소하고 향기롭고 길(吉)한’ 일만 생길 것 같다. 그래, 길은 길어야 맛이 아닌가? 추석빔 차려입고 고향길을 찾아 떠나는 마음은 가을 하늘처럼 휑하다. 하늘가의 떨기 구름처럼 외로이 타향객지를 떠돌다가 헤어졌던 피붙이와 고향 친구들을 만나 쌓였던 얘기를 황금 들판처럼 나눈다면……. 마음은 이미 취했다.
올 추석에는 갈바람도 쐴 겸 고향에서 추석을 쇠어 볼까. 앞동산에 오메가(Ω)처럼 동그랗게 돋아올 온달이 보고 싶다. 천상병 시인의 시 ‘소릉조(小陵調)’로 종을 칠까나. 땡이로다.
아버지 어머니는 고향 산소에 있고
외톨배기 나는 서울에 있고
형과 누이들은부산에 있는데
여비가 없으니가지 못한다.
저승 가는 데도여비가 든다면
나는 영영가지도 못하나?
생각느니, 아,인생은 얼마나 깊은 것인가.
2013.09.14
〈9〉기(氣)로 여는 가을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9
기(氣)로 여는 가을
긴 여름 끝에 가을이 왔다. 가을과 관련한 일들을 생각해 보면 가을의 어원을 짐작할 수 있다.
첫째, 추운 겨울을 대비하기 위해 가을의 가장 중요한 일은 추수(秋收), 곧 ‘가을걷이’다. ‘걷다, 거두다’의 고어는 ‘갇다, 가도다’인데, 여기에서 가을이라는 말이 생겼다고 본다. 가을은 여름내 여문 곡식을 거두는 계절이다.
둘째, 부유하다는 말의 순우리말은 ‘가멸다’인데, 이 말의 고어는 ‘가ᄋᆞ멸다, 가ᄋᆞᆷ열다’로 가을의 고어 ‘가ᄋᆞᆯ’과 발음은 물론 의미상으로도 서로 통한다. 결실의 계절인 가을은 어느 계절보다도 풍요롭기 때문에 ‘가을’과 ‘가멸다’는 가족 단어라 할 수 있겠다.
셋째, 가을엔 먹을 것은 물론 입을 것도 갖추어 둬야 한다. 여기에서 ‘갖추다, 갖다’ 등의 말도 가을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짐승의 껍질, ‘가죽’과 이로써 만든 ‘갖옷’도 갖추어야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다.
어떤 말의 어원을 찾으려면 반드시 그 말이 생겼을 때의 사회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탐구해 나가야 한다. 알곡을 걷는 계절로서 가을을 생각하면 농경사회를 바탕으로 하고 있는 것 같지만 추위에 대비할 갖옷을 갖추는 계절로서 가을을 생각하면 수렵사회적 배경도 배제할 수 없다.
각설하고, 이쯤에서 가을의 천기(天氣)를 살펴볼까나. 기의 모양을 살피는 곳은 본래 기상대(氣象臺)렷다. 가을이면 여름 내내 내리던 물 기운이 하늘로 올라간다. ‘비 우(雨)’가 ‘물 수(水)’로 떨어져 ‘내 천(川)’으로 흐르다가 모든 걸 받아주는 ‘바다 해(海)’에 머문다는 사실은 앞에서 살펴보았다. ‘해(海)’자를 보면 바다에는 늘[每] 물이 넘실거린다.
그러나 바다에서 물의 여행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바닷물은 다시 기(氣)를 받아 하늘로 올라가며 순환하기 시작한다. 물론 바다에서만 수기가 올라가는 게 아니다. 식물의 광합성작용이나 호흡작용 속에도 기는 포함되어 있다. 액체(液體)가 기체(氣體)로 바뀌는 현상을 ‘기화(氣化)’라고 하는데, 기체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기(氣)의 원형은 수기(水氣)가 올라가는 모습인 ‘기운 기(气)’였다. 나중에 곡기(穀氣)가 있으면 기운을 차리고 곡기를 끊으면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기(气) 안에 곡기를 나타내는 ‘쌀 미(米)’자를 넣었다.
기도하면 기가 올라간다. 오메, 기살어! 기를 모으면 기합(氣合)이요, 기를 나누면 기분(氣分)이다. 기에 감염되는 감기(感氣)만은 주의할 일이다.
‘기가 세다’, ‘기가 죽다’라고 할 때의 ‘기(氣)’는 활동하는 힘이나 뻗어나가는 기운을 가리킨다. 영어로 ‘energy’라 하면 비슷하게 느껴질까. 옳거니, 독일어로 하면 훨씬 이해하기 쉽겠다. energie(에네르氣)!^^ 기는 참 기묘하다.
기(氣)자의 본모습은 수기(水氣)의 모양을 그린 ‘기운 기(气)’였다. 힘이나 기운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문자로 나타내기에는 너무나 힘들었을 것이다. 기는 기인데 텅 빈 기를 ‘공기(空氣)’라 한다. 공기 속에는 비가 내리는 만큼 하늘로 올라가는 수기도 분명히 존재한다. 수기 중에 눈에 보이는 ‘김’의 모습을 나타내기 위하여 ‘김 기(汽)’자를 새로 만들었다. 우리말 ‘김’도 여기에서 나왔으리라.
물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사람이 일어서는 것도 ‘일어날 기(起)’로 같은 발음이다. 이 글자의 모양을 보면 우리는 달리기 위해 일어선다. 그냥 제자리에서 일어서는 것은 ‘설 립(立)’이다.
물 기운이 올라가 만들어진 글자는 기(氣)와 운(雲)으로, 원래는 ‘기(气)’와 ‘운(云)’이었다. 전서에서 기(气)자는 누워 흐르던 ‘내 천(川)’자가 꿈틀거리며 올라가는 모습이다. 갑골문에서는 ‘삼(三)’와 흡사하게 썼으니, 이는 길게 펼쳐진 옅은 구름의 이미지이다. 반면 운(云)의 전서는 뭉게구름 모양이다. 놀랍게도 현대 중국에서는 죽었던 기(气)와 운(云)이 다시 살아나 본래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기(氣)는 가만히 있지 못하고 옮겨다니므로 기운(氣運)이라 한다. 국어사전에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차서, 만물이 나고 자라는 힘의 근원인 ‘기운’을 순우리말로 보고 있다.
기는 죽기도 하고 살기도 한다. 기를 펴고 살아야 하는데, 세상살이 어디 그리 쉬운가. 어메, 기죽어! 뭔가 좀 있다고 기세등등(氣勢騰騰)하거나, 기가 넘쳐서 기고만장(氣高萬丈)하면 걱정이다. 게다가 기가 차거나, 기가 막혀서 기진맥진(氣盡脈盡)하면 큰일이다. 기세(氣勢)가 세상 사람을 압도할 정도면 기개세(氣蓋世)라 한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기절하거나 까무러칠 정도가 되면 기절초풍(氣絕―風)이다. 기절초풍이란 몹시 놀라 질겁할 때 쓰는 말인데, 국어사전에는 ‘초’의 의미에 대하여 공석으로 비워두고 있다. 촛불처럼 금세 꺼지기 쉽다는 뜻에서 ‘촉풍(燭風)’에서 왔을까. 기절의 빠르기가 바람을 초월한다는 뜻에서 ‘초풍(超風)’일까. 아니면 기절과 초풍을 병렬관계로 보아 기절한데다가 설상가상으로 중풍(中風)까지 불렀다는 뜻에서 ‘초풍(招風)’일까. 좀 더 기를 쓰며 연구해 봐야겠다.
일본의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비를 맞거나 일본 맥주나 해물을 먹을 때면, 기겁(氣怯)을 하곤 한다. 또 있다. 시리아 내전에 화학무기가 사용되었다는 소식에 기도(氣道)와 기공(氣孔)이 막히는 듯하다. 기공(氣功)을 하면 건강을 지킬 수 있으려나?
이쯤에서 온몸으로 기를 모으자. 기를 지는 것이 기지개다. 팔다리를 쭉 펴고 한바탕 늘어지게 기지개를 펴자. 순간 가을하늘의 맑은 천기(天氣), 가을의 대지의 풍요로운 지기(地氣)는 물론 명절을 앞둔 넉넉한 인기(人氣)까지 온몸에 쌓인다. 얼쑤.
* 그림: 가을엔 기(氣)가 상승한다. 수(水), 기(氣), 운(雲) 세 글자를 통하여 물 기운이 하늘로 올라감을 보여주고 있다.
* 글씨: 運氣調息(운기조식) 기(氣)를 잘 운행시켜 호흡을 조절하며 살아간다는 뜻이다.
2013.09.07
〈4〉 비나이다 비나이다
도정 권상호의 국어야 놀자] 비나이다 비나이다
두 손 비비고 빌면 빛과 비를 모두 얻으리니…장맛비 내리는 날 심수봉의 노래 비나리를 들으며 비에 관한 글을 쓴다? 먹탱이 빈말꾼이 무슨 소리 못하리오. 비나이다 비나이다 배려 독자님께 비나이다. 두 손 비비며 비옵나니, 틀리더라도 용서하소서.고인돌 시대의 원시인들은 나무 틈에 쐐기를 박고 두 손으로 열나게 비비면 마찰열에 의하여 불이 붙는다는 이치를 깨달았다. 아, 비비면 불을 피울 수 있구나. 비비면 빛을 얻을 수도 있구나.그러나 불은 그렇다 치고, 농사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비가 제때 내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 그래, 신령한 우물가나 산에 올라가, 하늘을 우러러보며 두 손을 비비며 간절히 빌면 무슨 좋은 수가 생기겠지……. 주문 내용은 무엇으로 할까? 비가 내리기를 바라는 뜻이니 ‘비리다 비리다’로 해야지. 여기에서 ‘비나이다 비나이다’라는 말이 생겼다고 본다. ‘리다’는 ‘내리다’의 고어이다.마을의 대표 무당이 “비나이다 비나이다 비나리길 비나이다”하고 여러 날 주문을 외며 빌었더니 바람이 우수수(雨水水^^) 일기 시작하고 드디어 빗방울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옳거니 비비기만 하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든 소원을 이룰 수 있구나. 뚝뚝 방울져 떨어진 빗방울을 아껴 쓰기 위해서는 ‘뚝(둑)’을 쌓아야지. 그러면 비가 ‘뚝’ 그쳤을 때에 사용할 수 있잖아. 용한 무당은 가뭄이 들면 기웃기웃하지 않고 냉큼 기우제(祈雨祭)를 지냈다. 그는 늘 100%의 적중률을 보였다. 왜냐하면, 비가 내릴 때까지 꾸준히 빌었기 때문이다.^^동네 꼬마들도 “용아 비 내려라 용아 비 내려라. 용이 비 내려야 용이 용이지. 용이 비 내리지 못하면 용일까?[龍雨 龍雨. 龍雨 龍龍. 龍不雨 龍龍?]”이라 노래하며 동네방네 돌아다녔다.비가 어찌하여 내리나 했더니, 땅에서 인간이 손을 비비면 하늘에서는 찬 공기와 더운 공기가 서로 비비며 물방울 집단인 구름을 만들고, 구름은 이리저리 구르다가 몸이 무거워지면 땅에 비로 내리것다. ‘비비다, 빌다, 비나이다, 비, (불)빛’까지도 모두 가족 단어로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용왕님께(천왕님전, 하느님전, 부처님전, 삼신전에, 조왕전에, 신령님께) 비나이다.”“비나이다 비나이다 부귀영화(국태민안, 소원성취, 남북통일, 복을 달라, 남산수를, 무병장수, 건투를) 비나이다.“비나이다 비나이다 두 손 모아(무릎 꿇고, 엎드려, 지성으로, 간절히, 하나같이, 손이 발이 되도록) 비나이다.”비는 대상도 많고, 비는 사연도 많고, 비는 방법도 많기도 하다. 민속에서 여러 사람이 패를 이루어 이 집 저 집 집적거리며 풍물을 치고 재주를 부리며 곡식이나 돈을 구하는 일을 ‘걸립(乞粒)’이라 한다. ‘빌 걸(乞)’에 ‘낟알 립(粒)’ 자를 쓴 걸 보면 요란스레 노는 짓치고는 제법 유식을 떨고 있다. 걸립신(乞粒神)까지 모시고 걸립굿을 하며 놀이를 하는 걸 보고서는 ‘빌어먹을 세상이로구나!’ 하고 빈정대며 비웃음 치다가도, 어느새 걸립패의 재주와 익살을 보고나면 good! 하며 너털웃음을 터트린다. 어라?걸립을 업으로 삼는 사람을 ‘비나리’라 한다. 이들이 하는 말을 ‘비나리하다’라고 하는데, 이 말은 앞날의 행복을 빈다는 좋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비나리치다’라고 하면 아첨을 해가며 환심을 산다는 뜻이니 조심할 일.올해는 비 내림이 많은 걸 보니 많은 사람이 푸지게도 빌었나 보다. 이처럼 오랫동안 계속하여 내리는 비를 ‘장맛비’라 하나니, 장맛비에 대한 어원은 구구하다. ‘훈몽자회’(1527)의 ‘霖 오란비 림’이란 기록으로 볼 때 장맛비 대신에 ‘오랜비’를 사용함도 좋을 성싶다.그런데 ‘댱마>쟝마>장마’의 변천으로 볼 때, 장마는 ‘長(길 장)+마’의 형태로 분석할 수 있는데, 문제는 ‘마’에 대한 해석이다. 고려의 낱말을 보여주는 송나라 학자 손목의 ‘계림유사’에서 ‘雨曰◆微[우왈비미(비)]’라 한 것으로 보면 당시나 지금이나 ‘비[雨]’에 대한 발음은 일치한다. 그렇다면 ‘마’와 ‘비’는 분명히 의미상 차이가 있으리라. 윤선도의 ‘고산유고’(1798)에는 장마를 ‘마ㅎ’로 표기하고 있다. 흔히 ‘마ㅎ’를 ‘물’의 뜻으로 보지만, ‘막다, 막히다’의 의미로 해석할 수도 있다. ‘마ㅎ’의 어감으로 볼 때, ‘(출입이) 막힐 정도의 많은 비’로 해석하면 지나친 억측일까? 좋은 예가 있다. 사전에 ‘마파람’을 ‘남풍(여름바람)’으로 간단히 풀이하고 있는데, 이는 ‘마ㅎ바람’으로 분석할 수 있으니, 곧 ‘(출입이) 막힐 정도의 강한 비바람’ 정도의 뜻이 된다. 그럼 태풍이네? 장마를 한자어로 ‘매우(梅雨)’라 하는데, 이것도 매실이 영글 때 내리는 비의 뜻이 아니라, 당시의 발음은 /마이우/로서 ‘마ㅎ우(장맛비)’의 음차로 본다.그래. 비비고 빌면 빛은 물론 비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비벼서 안 되는 일이 없음도 깨달았나. 비빌 언덕이 없어서 걱정하는 놈은 불쌍하다. 제 손이나 비비면 되지. 쪽팔림은 순간, 깨달음은 영원하다. 빚지고 비는 놈한테는 져야 한다. 장수도 빌면 목을 벨 수 없다. 빌면 무쇠도 녹일 수 있다는데……. 돈도 먹을거리도 사랑도 용서도 잘못도 잘 빌기만 하면 요술방망이처럼 쉽게 얻어진다. 하늘도 땅도 인간도 모두 빌면 마음을 비우고 소원을 들어주나 보다.오늘 저녁에는 학대해 온 내 육신을 위하여 비빔밥을 먹어야겠다. 잘헌다.도정 권상호 라이브 서예가·수원대 겸임교수
2013.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