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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동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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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일 - 7월 25일(화): 포카라에서 담푸스에 오르다(티베트 네팔 기행문)

* 네팔 포타나에 있는 학교를 방문하여 기념 휘호를 했다. 서예를 전혀 모르는 나라인지라 모두들 신기하게 생각했다. 네팔 선생님들과 함께 포즈를 취했다. 둘째는 한국 약사님, 맨 오른쪽이 소생입니다. * 우리의 60년대 교실과 비슷한 네팔의 콩나물교실 제11일 - 7월 25일(화): 포카라(Pokhara)에서 담푸스(Dhampus)에 오르다  안나푸르나 봉을 오르지는 못할지언정 좀 더 가까이서나마 보려고 길을 나섰다. 택시를 타고 20분 정도 달려, 페디(Phedi)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는 본격적인 등산이다. 북한산 정도 오른다고 생각하면 된단다. 처음부터 깔딱 고갯길이라 미끄럽고 숨이 차올랐다. 연세대 의대를 졸업하고, 레지던트 과정까지 마친 예비 여의사 김송이 선생이 약사인 어머니와 함께 같은 길을 오르게 되었다. 조금씩 오르다가 쉬면서 넓어가는 전망을 굽어보는 재미가 쏠쏠했다. 중간쯤 올랐을까, 김송이양의 발에서 피가 났다. 알고 보니 풀 거머리 탓이었다. 약사인 어머니가 응급처지를 하고 또 올랐다. 어느 정도 올랐을까 대여섯 집이 모여 사는 마을이 나왔다. 네팔 농가는 대개 능선을 따라 소똥처럼 드문드문 널려 있었다. 산비탈은 아마 산사태의 위험 때문이라 생각된다. 모두 대문 없이 오픈된 집들이었다.   길목에 자리한 한 집에 오르자 농부 두 사람이 전판암을 깔아서 만든 마당에 앉아 대삼태기, 대걸망 등을 만들고 있었다. 옆에서 자투리 댓잎을 뜯어 먹는 염소와 함께 놀다가 기념촬영을 하고 또 다시 배낭을 메고 올랐다. 우리 일행은 돌계단을 오르지만, 바람과 구름은 오랜 세월동안 수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을 오르고 있었다.   사람을 별로 의식하지 않는 고추잠자리를 보니 다행히 환경은 다행히 잘 보존되고 있다. 거의 모든 집에서 무소 한두 마리와 염소 몇 마리, 그리고 닭을 놓아기르고 있었다. 소는 존경의 대상이라 잡아먹지 않지만 무소는 잡아서 훈제까지 해 먹는 풍습이 쉬이 이해하기 힘들었다. 한 아주머니는 더러운 마구간의 두엄을 맨손으로 일일이 훑어내고 있었다. 시집갈 때쯤 되어 보이는 딸내미는 애지중지 키운 탓인지 보고만 있었다. 모두 돌을 쌓아 지은 집이라 웬만한 비바람에도 끄떡없으리라 생각된다. 안방과 부엌의 안쪽은 모두 황토로 칠해져 있으며 살림살이는 비교적 깨끗하게 잘 정리되어 있었다. 나무를 적당히 깎아 만든 작은 침대에 모두 모기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어떤 집은 너무 작아 고개를 숙이고 드나들 정도다. 멀리서 볼 때는 다 행복동처럼 보였지만 가까이 대하니 가난한 이웃들이었다. 그래도 얼굴에 미소를 잃지 않는 걸 보니, 우리와는 반대로 물질적으로는 부족 속에 정신적 풍요는 누리고 사는 것 같다.   두 시간 반 정도 오르자 해발 1650m 위에 있는 최종 목적지 담푸스(Dhampus)에 도착했다. 1130m의 페디(Phedi)에서 올라 왔으니 520m 오른 셈이다. 산장이 연이어 기다리고 있었고, 이어서 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중식 시간인지 남학생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여학생은 삼삼오오 모여 수학문제를 풀고 있었다. 덩치로 볼 때 고등학생쯤 되어 보였다. 놀이 방해는 둘째 치고, 다짜고짜로 운동장의 학생들 틈새에 끼어들어 대화를 나누고자 했지만 피하는 눈치였다. 푸른 교복 차림의 여학생 몇 명이 잘 풀리지 않는 수학문제를 우리 팀의 의사 김송이 선생이 쉬이 해결해 주니까 신기한 듯 이방인에 대해 다정하게 다가왔다. 즉석 수학 과외로 한국 수학의 주가가 네팔의 산만큼이나 올라갔다. 이윽고 거부감 없이 교무실에 들러 선생님들과도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양철지붕의 열악하기 짝이 없는 창고 같은 교무실이었다. 벽에 걸린 네팔 지도와 마주 붙여 놓은 8개의 교사 책상 가운데에 덩그렇게 놓인 지구본 하나가 교보재의 전부인 것처럼 보였다. 벽에는 여지없이 국왕의 사진이 걸려있고, 동방인과 무척 닮은 사람의 사진이 있어 물어본 즉, 이 학교에 기부금을 희사한 일본인 사업가 사진이란다. 한국인으로서도 뭔가 남겨야 하겠다는 생각에서 준비해간 순지와 먹물을 교장 선생님 자리 위에 펼쳐 놓고 기념 휘호를 했다. ‘한국과 네팔의 우의를 위하여’라고 정음고체(판본체)로 쓰고 정성 드려 낙관한 후에 증정했다. 한 미남형의 물리선생은 내게 바싹 다가와 한국에 유학하고 싶다고 하면서 루트를 알려 달라고 했다. 그런데 어떤 교사는 자기 집이 있는 산에서 내려와 버스를 타고 페디까지 와서 다시 담푸스까지 매일 오르내리며 출퇴근한다는 것이다. 삶이란 나기 마련인 것을. 하기야 나도 중학교 시절 이십오 리나 되는 학교 길을 고추장 단지를 들고 걸어서 나르지 않았던가. 교실 수업도 잠시 참관했다. 우리의 60년대 추억의 콩나물 교실 그대로였다. 교실 뒤에는 의자와 책상이 없는 학생도 10여 명 되는데, 그래도 공부에 열중하는 걸 볼 때, 지금쯤 편안한 개별 의자에 앉아 책상에 머리 떨구고 잠자고 있을 한국 학생들이 오버랩 되어 떠오른다.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선생님의 안내로 모두들 밝게 웃는 낯으로 인사를 나누고 곧, 학교를 뒤로 하고 떠났다. 우리의 경우 이만큼 잘 살게 해준 지도자와 윗세대에게 새삼 감사드린다. 그리고 한 번 더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전심전력으로 노력하여 선진국 대열에 당당히 서도록 노력해야겠다. 빨리 고국에 돌아가 학생들의 가슴에 불을 지피자.   와, 언덕을 오르자 순간 8091m의 안나푸르나(Annapurna) 봉이 구름 속에서 얼굴을 내민다. 감동이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뿐 곧 구름 속에 얼굴을 가리고 다시는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겨울에 오면 자주 대할 수 있지만 여름철에는 거의 볼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트래킹 하러 오는 사람조차 매우 드물었다. 솔직히 우리 네 사람 외에는 현지인들뿐이었던 것 같다. 무거운 곡물을 지고, 산길만큼이나 노년이 힘들어 보이는 할머니를 대하니 안쓰러운 생각이 들었다. 곧 파노라마 포인트라는 이름을 가진 숙소를 정하고, 시장한 배를 함께 달랬다. 다시 산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김송이씨 모녀는 점심 식사를 마치자마자 그길로 급히 페디로 내려갔다. 걱정이 되었지만, 나중에 내 홈피에 올린 안부 글을 보니 잘 내려갔나 보다. 마을의 이집 저집을 돌아다니면 온갖 대화와 사진 촬영으로 오후 시간을 비교적 여유 있게 보냈다. 이성만 선생님은 사진에 열중하고 나는 크로키에 열중했다. 자리에 모인 이웃사람들의 얼굴을 모두 그렸다. 네팔에서는 아라비아 숫자마저 너무나 달리 쓰는 통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그리하여 네팔어로 숫자를 쓰고 읽는 법도 배웠다.   숙소에서 주인의 양해를 얻어 벽에 글씨를 썼다. 안나푸르나 봉 사진 위의 하얀 빈 벽에다가 붓으로 직접 다음과 같이 써 주었더니 무척 고마워했다.  ‘아름다운 휴식처 파노라마 포인트’   산꼭대기 마을이지만 궂은 날씨로 일찌감치 어둑어둑해졌다. 갑자기 엄습해 오는 향수를 달랠 겸, 홰에 오르는 암탉 한 마리를 보고 닭백숙을 해 먹자고 제의했다. 종교적 이유로 이웃에 가서 암탉 한 마리를 숨죽여 왔다. 물론 백숙 요리를 모르는 주인 내외인지라 우리가 직접 요리법을 가르쳐 가면서 함께 해 먹었다. 주인 내외도 대학 공부로 카트만두에 가 있는 자식 자랑에 우쭐하다가도 객지에서 고생할 자식 생각에 또한 울적한 기분도 들었는지, 준비해 둔 네팔 민속주를 내 놓으며 함께 자리했다. 우리와 한 자리에서 끝내 죽마저 맨손으로 먹는 주인 내외의 모습에 관습의 무서움을 새삼 실감했다. 낮에 맨손으로 두엄을 치우던 아주머니도 아마 그 손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있겠지. 저녁 식사 중, 늦게 전기불이 희미하게 들어왔다.
2006.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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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빛!!!

음악 취향은 달라도 라이브 뮤직은 '소리빛'! Future Creator 새로운 카페보다 즐거움을 먼저 생각합니다. 각계 정상급의 아티스트들이 어제와 또 다른 즐거움을 당신께 안겨 드립니다.
2006.09.11

한시 한 수

閏月自適(윤월자적)  閏月鳶飛輕躍魚 (윤월연비경약어) 윤달에 솔개 날고 물고기 가볍게 뛰어노니 明時莫戀市中居 (명시막연시중거) 평화스러운 세상에 시중 삶을 그리워하지 말게나. 絶無車馬過吾宅 (절무거마과오택) 우리 집 찾는 거마 소리는 들리지 않고 磨墨練書名利疎 (마묵연서명리소) 먹 갈아 글씨 쓰니 명리도 부질없군.
2006.09.10

작호 - 硯林

모 서예가의 호이다. 벼루 갈기가 일상이 되고, 또 벼루 수집도 많이 한 분이다. 그래서 벼루 연, 수풀 림으로 작호한다. 硯山도 괜찮을 듯. 고민을 조금 더 하자. 그리고 임솔 정길자(林率 鄭吉子)님여원 최은희(與苑 崔恩僖)님의 전각이 완성되었습니다.갤러리 - 전각 코너에 올려 놓았습니다.
2006.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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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일 - 7월 24일(월): 카트만두에서 포카라로(티베트 네팔 기행문)

* 네팔의 시골 풍경 - 멀리 하얀 점처럼 보이는 것은 모두 집이다.* 전원 도시 포카라의 피와탈 호수  제10일 - 7월 24일(월): 카트만두(Kathmandu)에서 포카라(Pokhara)로     큰 짐은 게스트 하우스에 맡기고 달랑 배낭만 메고 포카라(Pokhara)행 버스를 탔다. 포카라는 그 자체로도 휴양 도시이지만 안타푸르나봉을 보거나 오를 수 있는 마지막 도시이므로 더욱 유명하단다. 버스가 큰 고개를 넘자 네팔의 시골 풍경이 눈앞에 다가왔다.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므로 어디를 보나 계단식논이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길가의 바나나 줄기는 춤으로 환영하고, 계곡의 물소리는 노래로 반긴다. 아열대가 주는 풍성한 자연의 품속을 헤집고 달리는 버스 안에서 일본 아가씨와 네팔 청년 세 쌍이 춘정을 이기지 못하고 삐쳐 나오는 낭만을 즐기며 주위 사람들의 졸음을 방해했다. 산골짜기를 6시간가량 서북쪽으로 달려서 겨우 포카라에 도착했다. 관광객을 서로 유치하기 위한 택시 기사와 가격 흥정으로 한판 소란을 겪은 뒤에 목적지인 ‘장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놀랍게도 주인은 없고, 명상가 분위기의 한 젊고 깨끗한 이미지의 한국 게스트만이 큰 집을 지키고 있었다. 그는 방을 잡아 주고 결코 바쁘지 않은 거동으로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비수기라서 그런지 손님은 없어 보였다.   방을 선택하고 샤워와 빨래를 마친 뒤, 포카라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피와탈(Phewa Tal) 호수에 들렀다. 맑은 날이면 대체로 호수면은 거울처럼 잔잔하여 이 호수 위에 비친 안나푸르나 봉을 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지금은 예상대로 우기 철이라 명경지수는 기대하기 어렵고 호수 위의 잔물결과 공중을 나는 새를 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티베트에서 탈출하고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아주머니의 신세타령을 뒤로 하고 호수 주변을 한 바퀴 돈 후에 저녁을 해결하고 숙소로 돌아왔다.    무료한 저녁을 달래기 위해, 한국에서 온 두 젊은 나그네와 아쉬운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면서 비싼 소주와 맥주 서너 잔 기울이고 붓을 잡았다. 길에서 만난 북경대학원생도 우리 하우스를 찾아왔다. 각자에게 이름을 풀이해 주고, 또 글씨를 써서 한 장씩 선물했다. 특히 북경대학원생은 중국에서 잃어버린 유불도 사상을 한국과 일본에서 찾을 수 있음을 토로하고 돌아갔다.   돌아와 자리에 누웠다. 벽에 굼실굼실 기어 다니는 도마뱀, 개 짖는 소리, 익숙하지 않은 온갖 새들의 소리에 한참 뒤에나 잠에 들었다.
2006.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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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일 - 7월 23일(일): 티베트에서 네팔로(티베트 네팔 기행문)

* 티베트 부부의 밝은 미소* 도로 위로 내리 꽂히는 히말리아 산중의 폭포. 이런 곳을 여러 개 통과하면 차는 자동세차가 된다. 제9일 - 7월 23일(일): 티베트에서 네팔로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Dingri)의 끝 지점, 定日(정일, 딩르, Dingri)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비교적 일찍 잠에서 깨어났다. 고소증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은 무기력증이다. 의지로 버텨나가야 한다. 내가 선택한 여행지이고, 또 힘들기에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여행인 것이다. 고소에 견디려면 잘 먹어야 한다. 억지로 밥을 뜨거운 국물에 말아 먹었다. 녹차 한잔을 들이킨 후에 저 남쪽에 얼굴을 구름에 가리고 있는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8850m)을 뒤로하고 길을 나선다. 에베레스트 산은 세계 최고란 이유로 끝없는 정복과 기록의 대상이었다. 우리나라는 77년 고상돈의 등정으로 세계 8번째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나라가 되었다.   이제 내리막길이다. 현재는 해발 5천 미터가 넘는 곳이지만 이제 얼마 안 있어 고소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제법 흥이 난다.   교명이 보이지 않는 초등학교에 들렀다. 학교 뒷산에는 흰 돌을 박아서 격문을 써 놓았다.    十年樹木(십년수목) 십년을 내다보고는 나무를 심고,  百年育人(백년육인) 백년을 내다보고는 사람을 기른다.   또한 정문 옆 시멘트벽에는 다음과 같은 붉은 페인트 글귀가 씌어 있었다.   校興我榮(교흥아영) 학교가 부흥하면 나의 영광이요,  校衰我恥(교쇠아치) 학교가 쇠퇴하면 나의 수치이다.   이 전에는 티베트어로 모든 격문이 씌어 있었을 텐데, 중국의 끝자락에도 티베트어 없이 한자로만 커다랗게 격문은 써놓은 것은 티베트 어린이들에게 한족의 문화를 가르치기 위하여 그런가 보다.   교사 벽에도 예외 없이 붉은 글씨로 뒤범벅이 되어 있었다.  胸懷祖國(흉회조국) 가슴에 조국을 품고  振興中華(진흥중화) 중화민국을 진흥시키자.  放眼世界(방안세계) 세계로 시야를 넓혀  展望未來(전망미래) 미래를 전망하자.   30명 정도 되는 저학년 아이들이 운동장 가에 걸터앉아 뭔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글짓기 시간인가 보다. 한 선생님의 안내로 교무실에 들렀다.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Tingri) 崗嘎鎭(강알진, 강가쩐, Ganggazhen)에 있으므로 학교명은 崗嘎鎭中心小學였다. 칙칙한 냄새가 나는 방의 전면에는 마오쩌뚱, 주인라이, 장쩌민, 후친타오 사진이 차례로 걸려 있었고, ‘시짱자치구 성립 40주년’을 경축하는 문구도 보이는 걸 보니, 중국은 1966년에 비로소 티베트를 완전 장악하게 되었나 보다.   교무실 한쪽 벽에는 붉은 五星旗를 중심으로 역시 붉은 교사를 위한 격문이 씌어 있었다.   敬業愛崗(경업애강) 직업을 공경하고 동산을 사랑하며  以身作則(이신작칙) 몸소 본보기를 보이자.   그 밑에도 웬 수칙들이 그리 많은지 교훈 등의 액자에 넣은 글귀가 13개나 나란히 걸려 있었다. 전교생이 조기독서와 조기체조 시간을 갖고 오전 오후 각각 3시간씩 하루 6시간의 수업을 한다는 사실이 놀랍다. 특히 1학년도 영어 시간이 있음은 물론 語文[중국어], 藏文[티베트어], 수학, 思品[사회], 자연, 음악, 미술, 체육 등의 과목을 공부하고 있었다. 깡 시골에도 교육열만은 장난이 아니구나 싶었다. 아직도 방학을 하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내일부터란다.   학교를 나와 네팔을 향해 달린다. 달리는 차창 왼쪽으로 멀리 에베레스트 산의 봉우리들이 이별의 인사라도 하는 듯 구름 깃을 흔들어 준다. 그냥 지나치기가 아쉬워 한적한 토담집 속 살림을 보고 싶어 들렀다. 겉보기에 딸 하나를 둔 신혼 살림집이었다. 생각보다 너무나 정갈하게 차려놓고 있었다. 큰방 한 가운데에는 난로가 있고, 흙바닥의 가장자리로 차례대로 낡은 카펫 석장이 깔려 있었다. 옆방에는 놀랍게도 어릴 때 보았던 베틀이 놓여 있었다. 까만 걸 보니 야크 털로 천을 만드나 보다. 주인과 기념촬영을 하고 조금은 여유 있게 길을 나섰다.   드디어 여행길에서 가장 높은 히말리아 산맥을 넘는다. 노중에 독일인 집시를 만나 함께 타고 갔다. 이 고개에도 어김없이 경번, 곧 타르초(tharcho)가 휘날린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평화와 행복을 바라며, 거친 바람은 부드럽게 흐린 바람은 맑게 해 주고 있다. 너무나 푸르고 맑은 하늘을 배경으로 펄럭이기 때문에 이를 보는 것만으로도 정화를 맛볼 수 있다.   길 계곡 앞쪽에 8012미터의 希夏邦馬峰(희하방마봉)이 멀리서 흰 머리를 쭉 내밀고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기분이 좋을 만해서 聶拉木縣(섭납목현, 니엘라무시엔, Nyalam) 공안국의 검문이 또 있었다. 티베트 챙기기에 빈틈이 없다고나 할까. 내용으로 봐선 가연성 물건과 폭발물 휴대를 금지한다는 것이다.   한참을 서쪽으로 달리다가 보니 우리 차는 굼실굼실 낮은 곳을 향하여 꼬꾸라지듯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구름이 가까이 드리우기 시작하고, 갑자기 나무들이 나타나 관목에서 중목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회색이 순간 녹색 천지로 바뀌고 도처마다 폭포 천지이다. 이윽고 산굽이를 돌아들자 좁은 골짜기 양측에 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다. 중국의 마지막 도시 樟木(장무)에 도착했다. 놀라운 일은 자신도 모르게 두통이 지극히 짧은 시간 내에 사라졌다. 고산증은 이제 끝이다. 우리와 닮은 중국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고 아슬아슬하게 좁은 길을 좀 더 내려가자 중국 해관을 만났다. 며칠을 함께한 라싸의 랜드 크루저 기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헤어졌다. 무척 피곤해 보이는 그는 오늘 저녁, 장무에서 기분 좋게 자고, 내일 출발할 거란다. 중국 국경 통과 수속 및 네팔 입국 수속을 비교적 쉽게 밟았다.   여성들의 이마의 붉은 점, 소녀들의 뚫은 코와 귀를 보니 분명 티베트와는 전혀 다른 나라 네팔에 온 것이 틀림없다. 흥정을 통하여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까지 가는 택시를 대절하여 다시 질퍽한 길을 천천히 내려가고 있었다. 비와 구름을 뚫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운무와 폭포, 지금까지와는 너무나 다른 풍광에 눈과 귀가 믿어지지 않는다. 잠시 내려서 세차게 몰아치는 계곡 위의 출렁다리에서 포즈를 취해 본다. 출렁다리 한가운데는 번지점프시설이 되어 있었다.   길가의 바나나가 흔한 걸 보니 아열대 기후에 속하는가 보다. 길가의 낯익은 옥수수와 논밭은 순간 고향이 아닌가 하고 착각할 정도이다. 산은 경사가 매우 심하여 계곡물은 모든 걸 삼킬 듯이 하얀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험난한 산골짜기에 쏟아질 듯이 매달린 집들이 너무나 많다. 아니나 다를까 산사태와 차량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는다는 것이다. 오늘도 로컬 버스에 떨어져 27명이 죽었단다. 한곳에는 떨어진 차를 끌어 올리느라 철삭을 감고 있었다. 멀리 산 능선을 따라 자그마한 집들이 작은 구름떨기와 같이 펼쳐져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계단식 논은 인간의 거대한 조각 작품이다.   허름한 인도산 택시를 타고 히말리아 산맥 남쪽 골짜기를 4시간 남짓 달려 내려오자 비로소 넓은 평지를 만났다. 수도 카드만두(Kathmandu City)였다. 차량 매연으로 도시 전체가 뿌옇고 숨이 막힐 지경이다. 차량은 대소에 관계없이 거의 인도산 TATA만 보이는데 기름이 나쁜 탓인지 아니면 여과장치가 잘못된 탓인지, 모든 차종이 시꺼먼 연기를 내뿜으며 느릿느릿 달리고 있었다. 자전거와 오토바이 물결은 퇴근길의 복잡함을 더했다. 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사람도 많았다.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곳곳에 실총을 둘러맨 군인들이 눈에 띄었다. 살벌한 도시 풍경 그 자체였다.   우리 차는 카트만두 시내를 가로질러 국립종합운동장 담을 끼고 돌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왕궁 근처에 있는 ‘빌라 에베레스트’라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러 여장을 풀었다.
2006.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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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ist Cafe '소리빛' 광고 시안

* 카페의 허브 - Artist Cafe '소리빛' *우주의 씨앗, 소리와 빛 - 우리가 만들어 나갑니다. 소리의 향연 라이브 뮤직이 있고, 빛의 제전 라이브 페인팅이 있습니다. - 오늘 하루 당신의 눈과 귀에 보람을 채워드립니다.홀로 만드는 세상이 아니라 함께 만드는 세상이기에 본 라이브카페 '소리빛'은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습니다. - 오늘은 특별히당신이 곁에 있어 참으로 행복합니다.
2006.09.05

창동미술창고

* 창동미술창고(국립현대미술관 소속)을 들렀다.-> 오랜만에 들른 창동예술창고그곳에는 3개월, 6개월, 1년씩 무료 전세로 세든 작가들이 스무 명 정도 있다.작업도 하고, 전시도 하며,다른 나라 작가들과도 교류하며......영상 미디어 아트가 넘 많았다.백남준 이래 세상은 점차 평면, 입체 작업에서 움직이는 영상 미디어 아트로 옮겨가나 보다. 이런 상황에서 서예가 설 수 있는 자리는 있는가? 매스미디어 세계에서 서예가 살아남을 수 방법은 없는가?살아남을 수 있다면 그 존재 양식과 대응전략은?나는 어디에 있는가?그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몇날 몇달 몇년, 그리고 또 몇십년손에서 붓을 떼지 못하다가마침내 건진 붓글씨 한 장......내 손이 붓과 하나될 때,현실은 아름다운 예술이 되리니......오늘도 묵묵히 내 길을 간다.-------> 만난 사람들김재옥(35세)http://www.zencen.com/ 신일 출신 제자, 홍대 미대, 경희대 대학원 졸서울 성북구 삼선5가 219번지 B1층(작업실)Unnur Mjoll S. Leifsdottier(아이슬란드 여류화가)unnsapunns@gmail.comtel: +354-824-1979이진준(화가)
2006.09.04

一浪會(가칭) 창립 모임 - 충주에서

* 일랑회 충주 모임9월 2일 토요일 오후2시간 가량 달려 오후 6시쯤에 충북 충주 초입의 그랜드 호텔에 도착했다.서울 경주 대구에서 각계 지인들이 모였다.호텔 뒤의 보쌈집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찻집 'Jazz와 散調'에서 소생의 사회로 상견례 및 '3분 스피치' 타임을 가지며다방면의 전문적 소양을 나눴다.이튿날은 충주문화회관에서 전시회에 참석하고충주호 주변의 경관을 관광했다.* 물심양면으로 특별히 도움을 주신 김문수 하트스켄 병원장님께 모든 참석자 이름으로 감사드립니다.  일조를 해 주신 윤여준 장관님, 홍석일 원자력병원장님께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또한 이 모임이 성사되도록 주선해 주시고, 시종일관 덕담으로 시종 즐거운 자리를 만들어 주신 박영호 교수님과 문형은 중원미술가협회장님께도 감사드립니다.   무엇보다 멋진 음악으로 즐거움을 배가시켜 준 해파 강성세 선생님의 대금 연주, 사초 송형익님의 기타 연주는 천하일품이었습니다. 이구동성으로 '入神(진입신)'이라며 칭송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참석자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 만년을 충주에...박영호 경주 서라벌대 교수박문호 천문학 박사(위의 제씨)홍석일 원자력병원장 - 충주 고향김문수 서울 삼성동 하트스켄 병원장김세환 경주 오대한의원 원장김창환 위의 형님 (주)오대가업 대표이사도명국 대구경북연구원 지역경제교육센터장/ 011-207-0169한민족의 뿌리를 영상미디어로 찾는 한화백송형익 기타리스트강성세 대금 명인어양우 숭실대 대학원 교수문형은 예원예술대학교 미술디자인학부 교수, 중원미술가협회 회장죽현(붓재) 서동형 충북대 교수 - 괴산 고향고일두 산업대 교수 그 외 ...
2006.09.04

하룻밤에 연이은 지방 문상

9월 1일이노근 노원구청장님께서 부친상(향년 84세)을 당하여화가 어양우 교수, 김윤호 노원문인협회 회장, 노원음악협회를 대표하여 송형익, 강성세 두 분, 그리고 나까지 5명이 송형익 교수의 차편을 이용하여 카풀로 충북 청주 도립참사랑병원에 다녀왔다. 정기호 미술협회 회장님은 장인의 병간으로김용기 음학협회 회장님은 지방 심사로 인하여동행하지는 못했으나 부의의 뜻은 대신했다. 그 자리에서 통일부 박갑수 교수의 부친상(목사, 향년 96세) 소식을 접하고, 한밤중길을 달려 안양 사랑의병원을 다녀왔다.상주 박교수님의 역사 이야기로 밤을 새다시피 하고서울에 돌아왔을 때에는 새벽 6시였다.만난 사람김주성 노원구청 비서실장 우원식 국회의원양시모 보좌관박남규 노원구의회 부의장 방위협의회 회장, 동경일식 사장임송 씨채널 공릉점 안경사 전우대 예천군 개포면장
2006.09.04

출판기념회 - 황재국 교수님

8월 23일 늦은 6시춘천 동쪽 외곽 만천리 옛날옛집에서강원대학교 중관 황재국 교수님의 정년퇴임식을 기념하는중관한묵집 출판기념회가 열렸습니다.초당 이무호 선생님(세계서법문화예술대전 이사장), 초민 박용설 선생님(평창거주, 노원서예협회 이승우님 스승), 김대원 교수님(경기대, 안동 경안고), 범여 정양화 선생님(한국미술협회 서예분과 운영위원)과 함께 다녀왔습니다.훌륭한 정년 기념 작품집에 제 전각 작품이 실려 있어 기쁩니다.오랜만에 이백 리 경춘가도를 달렸지요.북한강변을 스치며 드라이브해 보는 기분은 전설의 보물섬을 찾아 나서는 듯한 기분입니다. 마석을 거쳐 한참 달리다가 보면 의암터널을 통과하게 됩니다.의암터널을 지나 춘천으로 들어가는 것은 마치 자궁 속으로 회귀하는 느낌이 듭니다.의암댐은 마치 자궁경부와 같습니다.춘천의 지도를 보면자궁 속에 다섯 쌍둥이가 자라고 있습니다.위도, 상중도, 중도, 하중도, 붕어섬. 황재국 교수님,믿음과 학문에다가좋아하시는 취미가 일가를 이루셨으니모든 서예가들의 귀감이십니다.더욱 건강하시고더 좋은 작품 많이 보여주세요.자리를 빛내 주신 분들 --------최현섭 강원대 총장,이상우 한림대 총장,한상진 한림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아리랑 박사,김진선 3선 강원도지사 부인,조정강(趙靜江) 한국전통음식문화체험관(평창군 장평 백옥포리) 과장, 강원도민일보 사장,박미현 강원도민일보 편집국 부국장 010-4353-8633,안병윤 (주)인버스 대표이사 사장,김창묵 남대문시장 회장,등 많은 강원도 명사들의 말씀을 들었습니다.시백 안종중 선생님(춘천에서 가장 맛깔나게 그림 그리는 문인화가)을 비롯한강원서학회 식구들도 만나서 즐거웠습니다. * 가족황재우 영남대 명예교수(형),노영식 사모님(화가)아들 황석중(신일고, 연대, LS전선 주임연구원)***** 이삭줍기 ****** 소질 없는 글씨가 탁 트이면 기교 있는 글씨보다 운치가 더하다.(일중 김충현)* 기교가 없어 오히려 더 좋다. 구수하고 무던하고 어리숙해서 재주 있는 글씨보다 얼마나 더 좋으냐.(화가 임희숙) * retiring - 타이어 갈아끼우기 - 정년퇴임
2006.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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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일 - 7월 22일(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 조망(티베트 네팔 기행문)

* 티베트의 원시 평원* 1140km 티베트 평원을 달린 4500cc 랜드 크루저 제8일 - 7월 22일(토):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 산 조망   日喀則(르카치, Shigatse)에서 하룻밤을 보내고 아침 햇살을 받으며 일찌감치 길을 나섰다. 산을 등지고 도시의 반을 차지하고 있는 白居寺를 향해 오체투지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도시를 벗어나자 여전히 시야를 가득 채우는 보리밭과 유체꽃밭이 이제 낯설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난 수백 마리의 양 떼들이 흑색 회색 백색의 조화를 이루며 빈틈없이 새로 돋아난 풀밭을 찾아 아침 식사를 하러 길을 나선다. 짐승의 똥을 줍는 열 댓 살 쯤 되어 보이는 청소년이 똥 망태기를 목에 걸러 카메라 앞에서 포즈를 취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도 역시 팁이다. 산 구비 돌아 외딴 길에서 무거운 물레를 들고 가는 부부의 표정에서 환경의 아픔을 극복한 풋풋한 부부의 정을 느낄 수 있다. 그들은 조건 없이 포즈를 취해 주었다. 강가에 무소, 야크, 말, 양 등을 풀어 놓고 온 가족이 모여 중식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유목민의 참모습을 볼 수 있었다. 주름살 많은 늙은 할머니는 우리의 방문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불을 지피기에 여념이 없다. 아이들은 개울가에서 발가벗은 채로 놀다가 카메라를 든 우리를 발견하고 코를 흘리며 ‘스위트, 스위트’ 하고 사탕을 달라는 것을 보니, 우리와 같은 사람을 자주 접했나 보다. 강가에서는 스무 살쯤 되어 보이는 처녀가 성숙할 대로 성숙한 가슴을 그대로 내놓고 이쪽으로 와서 윗도리를 걸친다. 모두 스무 명이 넘는 걸 보니 대가족인가 보다. 무리 중에 한두 사람은 중국어가 통하는데 이곳에서는 아무와도 대화가 되지 않는다.   또 달린다. 곳곳이 도로 포장 공사로 한창이다. 현대적인 큰 차가 있는가 하면, 경운기로 시멘트를 나르기도 하고, 더러는 너덧 명이 곡굉이로 돌을 파기도 한다. 점심때 쯤 되었을까? 경번이 펄럭이는 큰 문을 만났다. 문루에는 국가급 자연보호지구인 세계 최고봉 珠穆郞瑪峰(주목랑마봉, 8848m)에 다시 오길 환영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Tingri) 인민정부에서 세운 간판이다. 그래, 왼쪽 저 산 너머에 만년설 산봉우리가 조금 보이는 저 산이 에베레스트 산인가 보다. 그냥 엄숙해질 뿐이다. 저것을 보러 지금까지 달려왔단 말인가? 한 여름에도 장엄하게 눈으로 속살을 가리고, 그것도 부족하여 옅은 구름으로 자신을 감싸고 있다니……. 저 산은 세상의 모든 진실을 보고 있지만 말하지 않는다.   조금 더 가니 법으로 변방을 다스린다는 依法治邊(의법치변)이란 아치형 간판을 달고, 검문을 한다. 매번 여권까지 꼭 제시해야 한다. 재수 없으면 벌금에다가 통과하지도 못한단다. 애써 태연한 듯 미소를 지어 보이니 웃으며 통과시켜 준다. 질척한 갯벌이 많은 걸 보니 한때는 빙하였나 보다.   두 시간쯤 달렸을까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험상궂은 산들은 이빨을 드러내며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기 시작했다. 제법 큰 마을 어귀에 들어섰다. 길가에 시골 학교만한 큰 찻집인 茶館(다관)이 있는데 벽에 페인트로 써 놓은 글씨가 인상 깊었다.     人在路上 路在心中(인재노상 노재심중): 사람은 길 위에 있고, 길은 심중에 있다.   길은 심중에 있으니 너무 재촉하지 말고 이 찻집에 들러 쉬었다 가라는 문구였다. 그러나 쉬고 말고 하는 것은 기사의 마음이다. 차를 마실 겨를도 없이, 지는 햇살에 담벼락의 아낙네들은 온통 양털로 실을 잣느라 여념이 없고 우리는 그 모습을 카메라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비교적 젊은 짙은 밤색의 남정네들은 하루 일을 보람 있게 마친 양 한결같이 밝은 표정이다. 이성만 여행 사진작가님은 아침이나 해질녘이 자연 조명이라 사진 찍기에 매우 좋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지 아침저녁으로 찍은 모든 사진들은 콘트라스트를 준 것처럼 매우 선명한 이미지이다.   또 먼지를 풍기며 한 시간쯤 달렸다. 해 끝이다. 땅거미가 내리자 길가 밑자락에 입구자로 깔려 있는 게스트 하우스에 들어갔다. 珠峰雪豹客棧(주봉설표객잔, SNOW LEOPARD GUEST HOUSE)이다. 히말라야 산맥의 주봉 에베레스트 등정 매표소이기도 하다. 짐을 던져 놓고 언덕에 올라 에베레스트 산을 바라본다. 주봉에 햇살은 아직 남아 있으나 구름 때문에 좀처럼 얼굴을 내밀지 않는다. 길 위에서 카메라를 들고 한참을 기다렸으나 옹근 사진은 찍을 수 없었다. 신들의 거처 히말라야, 신은 곧 자연이다.   다시 사무실 겸 식당에 들어왔다. 사무실 벽에는 1998년에 定日縣(정일현, 딩르시엔, Tingri) 재정국과 세무국에서 붉은 천에다가 크게 인쇄하여 붙여 놓은 글귀가 보인다.     發展旅遊事業(발전여유사업) 여행 사업을 발전시켜   促進經濟建設(촉진경제건설) 경제 건설을 촉진시키자.   관광 사업이 경제에 큰 소득원임을 개혁개방을 표방하는 중국은 일찌감치 깨닫고 있었다.   아이들과 젊은 부부가 많다 싶어 물어 보니, 다섯 가족이 함께 살며 공동 경영을 하고 있단다. 어슴푸레한 전깃불 아래에서 비교적 비싼 메뉴로 저녁을 때우고 피곤한 하루를 접었다. 꾀나 멀리 있는 공동 샤워장과 집 밖에 있는 화장실, 가물가물하는 불빛에 오줌 누러 나갔다가 내 그림자에 스스로 놀랐다. 높은 지대라 꾀나 춥다. 이불을 옴팍 덮어쓰고 몇 차례 뒤척이다가 잠을 청했으나 잠이 잘 오질 않는다. 바람이 일고 비는 줄곧 부슬부슬 흩뿌린다. 을씨년스런 날씨가 꼭 늦가을밤 같다.  
2006.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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